지법 부장판사 "판사가 바보냐, 법원행정처가 문건 내용과 작성과정 확인하라"
검찰 출신 변호사 "판사 사찰 자꾸 거론, 소송 과정에서 법원 자극하려는 의도"
로스쿨 형법 교수 "법조인명록과 판결 보도 내용 정리한 것이 불법 사찰인가"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2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2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률방송뉴스]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배제를 놓고 평검사부터 고검장에 이르기까지 "재고하라"는 성명 발표 등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지만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27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추 장관은 이날 법무부 대변인실을 통해 발표한 입장문에서 "검사들의 여러 입장 표명은 검찰조직 수장의 갑작스런 공백에 대한 상실감과 검찰조직을 아끼는 마음에 기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대내외의 다양한 의견들을 충분히 참고하여 법과 절차에 따라 징계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특히 추 장관은 잇따르는 검사들의 성명 내용에 대해서도 "'판사 불법사찰 문건'에 대해서는 당연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고 너무나 큰 인식의 간극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추 장관은 입장문에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이 검찰총장의 지시에 따라 특정 판결만 분류해 이념적 낙인을 찍고, 모욕적 인격을 부여하며, 비공개 개인정보 등을 담은 사찰 문서를 작성·관리·배포하였다는 것은 이미 역사 속에 사라진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정보기관의 불법 사찰과 아무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조치(윤 총장 직무배제)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나누고 입장을 발표하는 가운데 판사 불법사찰 문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고 당연시하는 듯한 태도"라며 "그동안 국민들과 함께 해 온 검찰개혁 노력이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특정 수사 목적을 위해서 검찰은 판사 사찰을 포함해 그 무엇도 할 수 있다는 무서운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같은 추 장관의 지적은 검사들이 낸 성명서의 맥락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상철 서울고검장 등 6명의 일선 고검장들은 전날 성명을 내고 "고검장들은 검찰의 과거 업무에 대한 공과 과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시대의 변화에 걸맞게 검찰도 변해야 한다는 점에 이견이 없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추 장관의 윤 총장에 대한) 일련의 조치들은 총장 임기제를 무력화하고 궁극적으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다는 우려가 있다"며 "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신중함과 절제가 요구되고, 절차와 법령에 부합하며 상당성을 갖춰야 한다"고 차분하게 지적했다.

김후곤 서울북부지검장 등 17명의 검사장들도 성명에서 "(법무부장관이) 법적 절차와 내용에 있어서 성급하고 무리하다고 평가되는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청구하고 곧바로 그 직무까지 정지하도록 한 조치에 대해 대다수 검사들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의 제도개혁이 안착돼 인권이 보장되고 범죄로부터 자유로운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소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명시적으로 '판사 사찰' 의혹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검찰의 과오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함께 검찰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다는 뜻을 함께 내비친 것이다.

오히려 법조계에서는 추 장관이 윤석열 총장과의 앞으로 예상되는 쟁송(爭訟) 과정에서 유리한 포석을 차지하기 위해 '판사 사찰' 의혹을 들고 나온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추 장관이 윤 총장 직무배제 사유로 거론한 6가지 의혹 중 유난히 '판사 사찰'을 자꾸만 거론하는 것은 행정소송 과정에서 법원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며 "판사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사찰했다는 의혹을 받는 당사자를 공평한 시각으로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추 장관이 판사 사찰 의혹을 제기한 직후인 지난 25일 장창국 제주지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판사는 바보입니까'라는 글을 올려 "판사 뒷조사 문건이 무슨 내용이고, 어떻게 작성됐는지 법원행정처가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총장 측은 그러자 판사 사찰 의혹을 받고 있는 문건 일부를 언론에 공개했다. 해당 문건에는 재판부 판사들의 출신 학교와 경력, 주요 판결들이 간략히 소개돼 있다. 이 문건의 불법성 여부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문건의 내용이 언론 등에서 이미 공개된 내용을 수집한 것이라 사찰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수사와 관련 없는 연고와 성향 등을 담은 문건을 수사정보담당관실이 작성하는게 맞는지는 따져봐야 한다"며 "법리를 통해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검사가 법리와 관련 없는 요소를 끌어들여 재판에 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반면 한 로스쿨 형법 교수는 "전체적인 문건을 다 보지 않아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공개된 내용만 보면 '법조인대관'이나 '법조인명록'의 인물정보에 언론을 통해 소개된 판결을 적어 놓은 것"이라며 "부당한 목적을 위해, 미행·도청 등 위법한 수단으로 확보한 정보가 아니어서 이것만으로 불법 사찰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설명했다.

한편 추 장관은 이날 입장문 발표에 앞서 전날 윤 총장 측이 판사 사찰 의혹 관련 문건 일부를 공개한 지 약 2시간 만에 윤 총장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대검에 수사 의뢰했다. 추 장관은 대검의 관련 문건은 `범죄행위로서의 사찰'이며 `중대한 불법의 결과물'이라고 날을 세웠다.

검찰 내부에서는 추 장관이 판사 사찰을 문제삼으며 대검에 수사 의뢰까지 한 데 대해서도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이복현 대전지검 부장검사는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법무부장관은 오로지 검찰총장만을 통해 개별 사건의 수사를 지휘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수사의뢰건 고발이건 그 이외 것들로 포장을 해도 결국 검찰의 개별 사건에 대한 장관의 의견 표명·지시의 본질은 수사지휘로, 법에 따르지 않은 수사지휘는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추 장관의 수사의뢰 행위가 불법이라는 것이다.

차호동 대구지검 검사는 미국에서도 공판 전략을 위해 판사의 스타일을 파악한다는 예시를 검찰 내부망에 올렸다. 차 검사는 또 법무부가 지난 2013년 투자자-국가소송 분야에서 활동하는 중재인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해 국내 로펌에 용역을 의뢰했다는 언론보도를 첨부하면서, 의혹을 받는 문건 내용은 재판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이지 불법 사찰이 아니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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