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파기환송심 재판부 "삼성 준법감시위 활동 양형에 반영"
전문심리위원 평가 앞두고, 준법감시위 8시간 마라톤 대책회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냐... 결론 정해놓은 요식적 재판" 비판

[법률방송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선고를 앞두고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열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법원과 삼성 안팎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발을 깎아 신발에 맞추다, 오늘(6일) ‘뉴스 사자성어’는 삭족적리(削足適履) 얘기 해보겠습니다.

삭족적리(削足適履). 깎을 삭(削), 발 족(足), 맞을 적(適), 신발 리(履), 발을 깎아 신발에 맞춘다는 끔찍한 사자성어입니다.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손자인 회남왕 유안(劉安)의 저서 회남자(淮南子) ‘설림훈’(說林訓) 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문을 부수어 땔나무를 만들고 우물을 막아 절구로 쓴다.”

유안이 앞뒤 선후도 모르고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인과도 모르는 어리석은 일을 하면 안된다는 얘기를 하면서 나오는 말입니다.

비유삭족이적리(譬猶削足而適履) 살두이편관(殺頭而便冠), 비유컨대 발을 깎아 신발에 맞추고, 머리를 깎아 갓에 맞추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삭족적리(削足適履)나 살두편관(殺頭便冠)은 불합리한 방법이나 수단을 억지로 적용하거나 부적합한 수단으로 일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을 비웃거나 경계하는 말로 쓰이게 됐습니다.

서양에도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가 그것입니다.

침대 길이에 맞춰 크면 발을 자르고 작으면 잡아 늘립니다. 어떤 경우든 당사자는 죽습니다.

자기가 세운 일방적인 기준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억지로 맞추거나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요식적으로 끼워 맞추는 것을 말합니다.

국정농단 뇌물 혐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이 지난달 말 재개된 가운데 양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삼성 준법감시위가 어제 정기회의를 개최했다고 합니다.

삼성생명 서초타워 사무실에서 위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8시간 넘게 마라톤으로 진행된 회의에선 이 부회장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 필요한 전문심리위원 자료 관련 검토 등이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전문심리위원, 이게 뭔지를 보려면 이재용 부회장 재판과정을 잠깐 복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영권 승계의 편의를 위해 최순실에 수백억원대의 뇌물을 주거나 주려한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지난 2017년 8월 1심 재판부는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그런데 2018년 2월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혐의들 가운데 일부를 무죄로 판단해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습니다.

2017년 2월 특검에 구속돼 1년가량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이 부회장은 2심 집행유예로 석방돼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작년 8월 2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사안 일부를 다시 유죄로 판단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 부회장 입장에선 다시 징역형 실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한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파기환송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는 삼성그룹에 대한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하라고 주문하고 이를 양형 사유에 참작하겠다고 밝힙니다.

이에 삼성은 지난 2월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삼성 준법감시위를 공식 출범했고, 이재용 부회장에 경영권 승계 논란 등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권고했습니다.

이 권고를 수용해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무노조 폐기와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내용 등이 포함된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특검은 준법감시위를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재판부 결정에 반발해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 편파적이라며 재판부 기피 신청을 했지만 법원은 특검 주장을 기각하고 계속 정준영 부장판사가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을 맡게 했습니다.

이에 특검 입장에선 어쩔 수 없이 삼성 준법감시위 활동을 양형에 반영하는 걸 받아들입니다.

문제는 준법감시위 활동을 어떻게 평가해서 양형에 반영하느냐인데, 이 작업을 맡은 사람들이 바로 앞서 언급된 '전문심리위원'으로 재판부와 이 부회장, 특검이 각각 한 명씩 추전했습니다.

올해 말이나 늦어도 내년 1월 법원 정기인사 전에 파기환송심 결론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준법감시위가 정기회의를 열고 전문심리위원 자료 관련 검토를 진행한 겁니다.

준법감시위는 또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화재 등 핵심 계열사 7곳의 최고 경영진과 내년 초 준법감시 관련한 간담회도 열기로 했습니다.

재판부는 지난달 9개월만에 재개된 재판에서 이달 18~20일 사이에 전문심리위원과의 면담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 이달 30일로 예정된 6차 공판기일에선 전문심리위원들의 삼성 준법감시위 평가를 듣는 자리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삼성 안팎에선 “준법위원회가 출범 이후 이재용 부회장 대국민 사과 등 삼성에 여러 변화를 이끌어 왔다”며 “준법위가 반부패나 투명 경영 등에서 진전을 끌어냈다고 평가받을 경우 집행유예를 유지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이재용 부회장에게 꼭 실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취지는 절대 아닙니다.

다만 앞으로 바르고 착하게 살면, 무언가를 잘하면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식의 재판을 이재용 부회장 말고 다른 어떤 사람들도 받아봤다는 얘기는 과문해서인지 몰라도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하는 재판 아닌가, 거칠게 얘기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학벌 좋고 돈 많은 사람들이 한판 '인형극'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발을 깎아 신발에 맞추다, 결론에 재판을 맞추다, '삭족적리'(削足適履) 같은 말들이 머릿속을 뱅뱅 맴돕니다. '뉴스 사자성어'였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