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노모 "술만 마시고 희망도 없고 진짜로 너무 불쌍해서 범행"
재판부 "범죄동기 설명 부족... 제3자가 있었을 가능성 배제 못해"

[법률방송뉴스] 70대 노모가 날이면 날마다 술에 취해 사는 아들을 더 두고 볼 수 없어 수건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자백’했지만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몇 마디 말로 일의 시시비비를 가린다, 오늘 ‘뉴스 사자성어’는 편언절옥(片言折獄) 얘기 해보겠습니다.

편언절옥(片言折獄), 조각 편(片), 말씀 언(言), 꺾을 절(折) 감옥 옥(獄), 직역하면 한두 마디 말로 감옥을 꺾는다, 몇 마디 말을 듣고 송사의 시시비비를 가린다는 뜻입니다.

논어 ‘안연’(顔淵) 편에 나오는 말로 공자가 제자 자로(子路)를 평가하며 한 말입니다.

노나라 사람인 자로의 이름은 중유(仲由)이고 계로(季路)로도 불렸습니다.

불같은 성격의 무뢰배 출신이었지만 공자의 가르침을 받아 강직하면서도 용맹과 신용을 갖춘 인물로 거듭났습니다.

그런 자로를 공자는 ‘편언가이절옥자 기유야여 자로무숙낙’(片言可以折獄者 其由也與 子路無宿諾), "한두 마디 말로 송사를 판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자로일 것이다. 자로는 한 번 답한 일을 이행 안 하고 묵혀두는 일이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여기서 편언절옥(片言折獄)이라는 말이 나왔고 명판결 또는 명판결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하게 됐습니다.

몇 마디 말로 사리분별을 분명하게 해 옥살이 여부를 결정한다는 뜻에서 편언가결(片言可決), 편언결옥(片言決獄)이라는 단어로 쓰이기도 합니다.

매일 술만 마시고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이유로 51살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76살 노모가 1심 재판에서 살인죄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이 노모는 지난달 20일 열린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아들이 술만 마시면 제정신일 때가 거의 없었다”며 “희망도 없고 진짜로 너무 불쌍해서 범행했다”고 자신이 아들을 죽였다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인천지법 형사15부 표극창 부장판사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검찰 공소내용과 판결문으로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이렇습니다.

4월 20일 0시를 전후해 인천 미추홀구의 한 주택에서 76살 A씨의 아들과 딸이 술문제로 심하게 말다툼을 했다고 합니다.

딸이 동생인데 “엄마 좀 그만 잡으라”는 식으로 오빠를 심하게 타박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 딸은 재판에서 “오빠가 평소에도 만만한 엄마를 때렸다. 이혼하고 양육비도 보내주지 못해 아들을 못 보고 돈벌이도 못 하니 엄마만 잡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오빠에 대한 미움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묻어나는 진술입니다.

그렇게 오빠와의 말다툼 이후 딸은 집을 떠났고, 만취한 상태에서 계속 술을 먹겠다고 성화와 행패를 부리는 아들을 노모가 수건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것이 검찰 공소내용입니다.

노모는 재판에서 “뒤에서 소주병으로 머리를 내리쳤는데 정신이 있었고 수건으로 돌려서 목을 졸랐다”고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검찰은 징역 20년을 구형했습니다.

노모의 자백만 있고 다른 증거는 없는 재판에서 재판부는 “제3자가 범행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근거는 크게 2가지입니다.

우선 76살의 노모가 100kg 넘는 건장한 아들을 수건으로 목을 졸라 살해하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하냐는 점입니다.

이와 관련 딸은 재판에서 “오빠가 진짜 양심이 있었다면 그날 엄마가 그렇게 했을 때 혹시 자기도 죽고 싶어서 가만히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건데, 재판부는 “엉뚱한 답변”이라며 신빙성을 배척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아들을 살해한 노모가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경찰이 오기 3분 남짓한 시간동안 깨진 병을 치우고 바닥까지 깨끗이 닦았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 그런 정신적 여유가 있을지, 아들이 사망한 후 새삼스레 거실 바닥을 청소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게 재판부 의심입니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인이 진술한 사유만으로는 범죄 동기를 설명하기에 많이 부족한 느낌이 든다. 자백의 진실과 신빙성에 합리적 의심이 발생한 이상 피고인의 자백을 유죄 증거로 삼을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장인 표극창 부장판사는 가로 40cm, 세로 70cm 수건으로 목을 졸라 살해하는 게 가능한지 여성 실무관에게 직접 자신의 목을 졸라보라며 당시 상황을 재연해봤다고 합니다.

피가 안 통하긴 했지만 숨은 쉬어졌다는 게 표 부장판사의 말인데, 검찰은 현장에서 즉사한 게 아니고 저산소증으로 병원으로 옮겨진 뒤 숨진 것이고 제3자 개입 가능성도 조사했다며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죽은 사람은 있고 죽였다는 사람도 있는데 살인죄는 무죄라는 판결.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 ‘형전’(刑典)에서 몇 마디 말로 시시비비를 가려 귀신처럼 판결을 내리는 편언절옥(片言折獄)의 어려움과 중요함을 설파했는데,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판결입니다. ‘뉴스 사자성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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