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침해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이제 그만 역사의 뒤안길로
표현의 자유 침해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이제 그만 역사의 뒤안길로
  • 이호영 법무법인 폴라리스 변호사
  • 승인 2017.05.2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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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문제 제기, 약자의 외침을 너무 엄격하게 벌하는 문제점 있어
이호영 법무법인 폴라리스 변호사

'억울한 일을 당했다’

저 놈이 행한 악행을 '있는 그대로' 만천하에 호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만천하에 알리면?

상대방으로부터 명예훼손죄로 고소가 들어올 것이고 대개는 '억울함을 호소한 사람'이 처벌된다. 있는 그대로 호소했다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허위가 개입됐다면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가중처벌을 당한다.

허위사실을 들어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욕한 사람을 처벌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공개 비판한 경우'도 처벌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 대해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는 것이다.

우리 형법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307조 1항)라고 하여,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시한 사람을 이른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처벌하고 있다.

다만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라고 하여, 예외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일 때 처벌을 면할 수 있는 좁은 길을 터놨다.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 아니면,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구린 구석을 발설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조항은 억울한 사람의 입을 막는 도구로 악용된다. '어디 한번 말해보기만 해봐, 바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테니까!' 하는 으름장은 실제 대개의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상황을 초래하고, 그 결과 약자의 '표현'의 자유, '공론화'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

서울 강남경찰서 민원실에서 봉사 상담을 하던 필자에게, 한 여성이 씩씩거리며 들어와서, 들려준 사연 역시 한 예이다.

그녀는 강남의 모 성형외과에서 성형수술을 받았는데, 수술이 심각하게 잘못됐지만, 병원장은 6개월 후에 재수술해줄테니 그때 찾아오라며 그 전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태도였다.

그 여성은 눈 밑이 심하게 처져서 한 눈에 보기에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보였다. 그녀는 내게 병원에 찾아가서 1인 피켓시위를 하면 명예훼손으로 처벌받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결론적으로 그녀의 걱정은 일리 있는 걱정이다. 병원(의사)은 그녀를 명예훼손, 나아가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할 것이 뻔했다. 여성이 피켓에 적은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 하더라도, 의사의 사회적 가치를 저하시키는 내용이 들어간다면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결국 나는 그 여성에게 '억울한 사정은 알겠으나 병원에 찾아가서 1인 시위를 하는 것은 일을 키우는 것으로 보이니 가급적 하지 마시라'고 조언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모친이 병원에서 주사를 맞다 죽었으니 살인병원이라는 내용을 쓴 나무판자를 목에 걸고 시위를 벌인 경우', 명예훼손으로 처벌한 원심이 타당하다고 판시한 대법원 판례가 있다.

나아가, 이런 억울한(?) 사례도 있다. 상가 관리단에서 해임된 관리인이, 상가 관리단에 새롭게 선출된 관리인이 뇌물공여죄, 횡령죄 등 전과 13범이어서 선량한 관리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내용을 관리단 감사에게 팩스로 전송한 사례가 있는데, 이처럼 나름 정당해보이는 문제 제기 역시도 명예훼손죄로 처벌을 받았다.

이처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정당한 문제 제기, 약자의 외침을 너무 엄격하게 벌하는 문제가 있다.

이에 19대 국회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고, 같은 내용의 법안이 20대 국회에도 또 발의돼있지만 아직 통과는 요원하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면 안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문제가 되었던 '강남패치' 사례가 대표적이다. '강남패치'라는 신원미상의 SNS 계정에, 수많은 여성들이 과거에 술집 등에서 일했다는 정보들이 폭로된 적이 있는데, 이처럼 숨기고 싶은 개인사를 무차별하게 폭로하는 행위를 근절하려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사례는 극히 예외적일 뿐더러, 비방 목적 등 불법행위성의 입증이 용이하기 때문에, 피해 여성들은 얼마든지 가해자에게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강남패치 사례가 정 걱정된다면, 적어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이라도 손을 봐야 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처벌 범위를 좁혀야 한다는 말이다.

현행법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처벌한다고 규정하여, 공익 목적이 인정되지 않는 개인 간의 분쟁에서 비롯된 명예훼손은 원칙적으로 처벌할 수밖에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이 이러하기에, 대법원은 "명예훼손죄의 주관적 구성요건으로서의 범의는 행위자가 피해자의 명예가 훼손되는 결과를 발생케 하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족하며 특히 비방의 목적이 있음을 요하는 것은 아니다"(99도5143)라는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장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면, 기존 명예훼손 조항에,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라는 '비방 목적' 요건을 추가하기라도 해야 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성립에 '비방 목적' 요건을 추가한다면, 단순히 타인의 명예가 훼손된다는 것을 인식하기만 하면 처벌하는 현행법과 비교하여, 다소나마 억울한 명예훼손 범죄자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궁극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 생각한다.

역사는 개인의 자유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음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표현의 자유', '알 권리'를 침해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것은 역사 발전의 방향성에 부합하는 또 한 걸음이 아닐까. /이호영 · 법무법인 폴라리스 변호사

이호영 법무법인 폴라리스 변호사 ltn@law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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