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醫)로운 법률] 의료사고를 당한 피해자는 막막합니다. 의료사고 관련 법률이 무엇인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정현석 변호사(법무법인 다우)가 의료법·약사법 등 의료관계 법률, 의료사고 유형별 대응방법 등을 생생한 현장 경험과 함께 '의(醫)로운 법률' 코너를 통해 설명해 드립니다. 정현석 변호사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감정위원,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기획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정현석 법무법인 다우 변호사

 의료사고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은 악결과가 발생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악결과에 더하여 의료인에게 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인정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만 무엇을 일컬어 ‘의료상의 과실’이라 할 것인지에 관하여는 많은 해석과 논란이 있을 뿐 아니라, 의료분쟁 실무상 환자와 의료인의 입장이 극명하게 대립하는 영역이기도 하기에 이에 대한 상호이해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가령 심장이식 수술에 관하여 대한민국 최고의 권위자로 평가되는 의료인의 술기 수준을 100점이라 가정하였을 때, 99점에 상응하는 술기로 환자에게 악결과를 유발하였다면 이를 일컬어 의료상의 과실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는가? 직관적으로 보건대 아니라고 대답할 사람이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90점짜리 술기였을 경우는? 더 나아가 만일 80점짜리 술기였다면?

개별 사안에서 의료인의 술기를 점수로 계량화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가사 계량화할 수 있다 하더라도 과실과 무과실을 구분하는 기준을 찾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결국 의료상의 과실이 있었는지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과실과 무과실을 구분하는 기준선을 획정한 뒤 그 기준에 따라 과실 유무를 평가해야 한다 할 것인바, 현행 사법구조에 의할 때 이에 대한 판단 권한을 보유한 자는 법관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의료인들이 의료소송에 관하여 의료인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 관련 기사를 보고 의료지식이 없는 법관이 어떻게 의료상의 과실을 평가할 수 있냐며 해당 판결을 선고한 법관에 대한 부정적 의사를 표시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별 사안의 담당 재판부는 의료상의 과실을 자의적 또는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진료분야의 전문가(일반적으로 의과대학 교수)에게 상세한 진료기록감정 및 신체감정을 촉탁한 뒤 해당 감정서를 통하여 확보한 의료전문가의 견해를 최대한 존중하여 의료상의 과실 및 인과관계 등에 대하여 판단하고 있는 바, 의료소송을 심리함에 있어 담당 법관의 자의가 반영될 수 있다는 우려는 기우(杞憂)라 할 것이다.

결국 현행 사법구조에 따르면 의료상의 과실 여부에 대한 판단에 해당 사건 감정인(의료인)의 견해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할 것인 바, 넓게 보면 의료인(감정인)에 의하여 개별 의료인(당사자) 술기의 적정성 여부가 평가되고 있으며, 이는 결국 의료계의 자정작용에 의하여 의료상의 과실 여부가 판단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환자 입장에서는 과연 의료인(감정인)이 의료상의 과실 여부를 공정하게 판단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으나, 의료분쟁 실무를 담당하는 변호사의 입장에서 보건대 일부 진료과목의 경우 지나치게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없지는 않으나, 전반적으로 감정서는 공정성과 합리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나아가 만일 모자란 부분이 있다면 환자와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의견을 교류하고 설득의 노력을 지속함으로써 서로의 입장에 접근할 수 있다 할 것인 바, 이러한 노력을 선행하지 않은 채 막연히 상대방을 비윤리적인 집단으로 비난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라 보기 어렵다.

사회의 본질은 구성원의 끊임없는 교류와 견제를 통하여 유지되는 상대적 균형상태에 있다 할 것인 바, 주관적 기준에 의거하여 상대방에게 절대적 정의를 강요하는 것은 개인 뿐 아니라 사회에도 위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