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가사·행정 상고사건 70% 이상 '심리불속행 기각'... “재판받을 권리 침해”

[법률방송뉴스] 우리 소송법에는 ‘심리불속행’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한자를 직역을 하면 ‘심리를 속행하지 않는다’는 뜻인데요.

대법원 상고사건에서 법이 규정한 특정한 사유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면 본안 내용에 대한 판단 없이 사건을 종료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심 패소 판결에 불복해 상고한 당사자들 입장에선 사실상 대법원 판단을 받아보지 못하고 그대로 패소가 확정되는 건데요.

이는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관련해서 어제 서울지방변호사회 주최로 ‘대법원 심리불속행 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 방안에 대한 정책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오늘(23일) ‘LAW 투데이’는 심리불속행 얘기 집중적으로 전해드리겠습니다. 먼저 어제 토론회 현장에서 어떤 말들이 나왔는지 신새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어제 오후 열린 ‘심리불속행 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 방안 토론회’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주최했고, 대한변협이 후원했습니다.

토론회를 주최한 서울변회 박종우 회장은 인사말에서 심리불속행 결정으로 상고를 기각하는 경우 판결문에 구체적인 판결 사유도 기재하지 않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재판 당사자 입장에선 마지막 3심인 대법원에서 왜, 무슨 이유로 상고가 기각됐는지조차 알 수 없어 불합리하다는 겁니다.

[박종우 회장 / 서울지방변호사회]

“최종 단계에 해당하는 대법원이 상고심 재판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공정한 판단을 해줄 것이란 기대를 하지만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문에는 ‘상고인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에 해당하여 이유가 없다고 인정됨으로 같은 법 제5조에 입각해 상고인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는 형식적인 문구가 짤막하게 적혀있을 뿐입니다. 소송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선고이유를 미리 알 수도 없고 어떤 이유로 기각됐는지 확인도 되지 않아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심리불속행 제도는 일단 형사재판에는 적용되지 않고 민사와 가사, 행정소송 상고에만 해당하는데,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법적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특례법 제4조는 원심 판결이 헌법에 위반되거나 헌법을 부당하게 해석한 경우, 명령·규칙 또는 처분의 법률위반 여부에 대하여 부당하게 판단한 경우가 아니면 심리불속행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원심 판단이 헌법이나 법률 등을 잘못 해석했다고 볼 만한 여지가 없는 경우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도록 하고 있는 겁니다.

특례법은 나아가 원심 판결이 법률·명령·규칙 또는 처분에 대하여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게 해석한 경우가 아닌 때도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법률·명령·규칙 또는 처분에 대한 해석에 관하여 대법원 판례가 없거나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아닌 때에도 심리불속행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상고 주장이 자체로 보아 이유가 없는 때 등에도 상고를 기각할 수 있습니다.

법률심인 대법원에서 마지막 법적인 판단을 받아보기 위해 상고를 했는데, 본안 심리를 하지도 않고 심리를 할 이유가 없다며 패소 판결을 확정하는 겁니다.

나아가 특례법 5조 '판결의 특례' 1항은 "심리불속행 결정의 경우 판결문에 판결 이유를 적지 않을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같은 조 2항은 "심리불속행은 판결 선고가 필요하지 아니하며, 상고인에게 송달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선고도 없고 판결 사유도 없는 판결문, 법조계 내부에서 대법원 심리불속행 결정을 두고 ‘10초 재판’이라는 자조 섞인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찬희 회장 / 대한변호사협회]

“헌법에 3심제도가 규정돼 있는데 과연 심리불속행 제도가 3심의 본래적 취지와 맞는지 여부에 대해서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10초 재판’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이 심리불속행 제도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현실상 이것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면 어떤 식으로 국민의 실질적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런 지적과 비판에도 민사와 가사, 행정소송 대법원 상고사건 심리불속행 결정 비율은 2016년 71.2%, 2017년 77.4%, 2018년 76.7% 등 70%를 웃돌고 있습니다.

대법원에 상고해봐야 10건 중 7건 이상은 본안 심리도 못 받아보고 심리불속행으로 상고 기각, 패소 판결을 확정 받고 있는 겁니다.

이는 대법원에서 처리해야 할 사건이 연간 4만여건에, 대법관 1명이 담당해야 하는 사건이 4천건이 넘는다는 현실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토론회 주제 발표를 맡은 박종현 국민대 법대 교수는 심리불속행 제도는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등 위헌적 요소가 다분하다며 제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종현 교수 / 국민대 법대]

“국민의 재판청구권에 대한 보장 요구가 이렇게 증대하는 그러한 상황에서 상고허가제라든지 고등법원 상고부, 상고법원, 대법관 증원론이 여러 대안으로 제시되어 있고, 여기서 이제 중요한 건 모든 안들이 사실은 장단점이 다 있죠. 그 점을 명심하면서 제도개혁의 안을 앞으로 기획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관련해서 이찬희 대한변협 회장은 국민의 재판청구권 보장과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구현을 위해 변협 내에 ‘상고심 제도개선 TF‘와 ’심리불속행 제도 폐지 연구TF‘를 꾸려 상고심 제도 전반에 대한 제도개선 연구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법률방송 신새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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