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상규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
이기택·민효숙 대법관 "다른 구직희망자들 희생에 기반... 위법" 소수의견

[법률방송뉴스] 산업재해 관련한 소식 하나 더 전해드리겠습니다. 산재 사망자 유족을 특별채용할 수 있도록 한 현대·기아차의 노사 단체협약 규정은 유효하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습니다. 계속해서 유재광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기아차에서 현대차로 옮겨 근무하던 이모씨는 지난 2008년 8월 백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유족들은 벤젠에 노출된 작업 환경 등을 근거로 업무상 재해 판정을 받았고, 이씨의 자녀를 특별채용해 줄 것을 현대차 측에 요청했습니다.

‘조합원이 산업재해로 사망할 경우 결격사유가 없는 직계가족 1명을 특별채용’ 하도록 한 단체협약 규정에 따른 요청입니다.

하지만 사측이 채용을 거부하자 유족들은 채용 의무이행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습니다.

재판 쟁점은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유족을 특별채용하도록 한 단체협약 조항이 민법 제103조 반사회질서 법률행위에 해당하느냐 여부였습니다.

민법 제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1심과 2심은 모두 “해당 단체협약 조항은 민법 제103조가 정하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돼 무효”라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해당 단체협약 규정은 사용자의 채용 자유를 현저히 제한하고, ‘일자리 대물림’ 등 사회 정의 관념과 취업기회 제공의 평등에 반하며, 산재 유족 생계보장은 금전 지급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 1·2심 재판부 판단입니다.

사건을 넘겨받은 대법원은 많은 기업들이 산재로 사망하거나 장해를 입은 경우 그 유족이나 가족을 특별채용하는 내용의 단체협약 조항을 두고 있는 점을 감안해 사회적 파급력이 크다고 보고 사건을 대법관 13명이 전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습니다.

그리고 사건을 접수한지 3년 11개월만인 오늘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조항이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상규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먼저 해당 조항이 회사의 채용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원심 판단에 대해 “회사가 스스로 의사에 따라 해당 조항에 합의한 점, 특별채용 숫자가 매우 적은 점 등을 감안하면 채용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구직자의 취직 기회를 제한한다는 원심 판단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공개채용에서 유족이 우선 채용되는 게 아니라 별도의 절차를 통해 특별채용 되어 구직자의 채용 기회에 중대한 영향도 없다”며 원심 판단을 기각했습니다.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중요한 근로조건으로 사망자의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고 가족 생계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약자를 보호 또는 배려하는 목적이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단체교섭권의 결과물인 단체협약에 대한 법원의 후견적 개입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대법원 판단입니다.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한 노사가 자율적으로 합의한 단체협약의 효력을 법원이 부정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판결입니다.

반면 이기택·민효숙 대법관은 “현대·기아차는 공정한 방식으로 채용절차를 수행할 사회적 책임을 부담한다”며 “해당 조항은 구직희망자의 희생에 기반한 것으로 위법해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구직희망자의 지위를 거래 대상으로 삼은 것과 다를 바 없다. 1인 가구나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늘어나는 현실에 비춰봐도 특별채용 조항은 부적절하고 불공평하다“는 것이 이기택·민효숙 두 대법관의 소수의견입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오늘 판결에 대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민법 제103조에 의해 무효가 될 수 있는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향후 유사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지침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판결 의의를 설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이 사건에서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우선채용하는 단체협약에 대해 판단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으며 “그에 대한 소송이 제기된다면 효력에 다툼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법률방송 유재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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