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지 변호사 인터뷰 "구두 문제 넘어 '불합리한 차별에 대한 저항'으로"

[법률방송뉴스] 법률방송에서는 이번 주 한국판 '구투 운동'에 대해 집중 보도해 드리고 있는데요.

아직은 좀 생소하기도 한데, '구투'(KuToo)는 구두를 뜻하는 일본 말 '쿠츠'(皮靴)와 고통을 뜻하는 '쿠츠으'(苦痛), 그리고 나도 당했다는 '미투'(Me Too) 운동을 합쳐 만든 용어입니다.

성차별적인 복장 강요에 대한 문제제기와 개선을 요구하는 운동인데, 우리나라에서도 백화점 발레파킹 여성 직원이 남성과 똑같이 운동화를 신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인권위 진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관련해서 오늘(27일)은 구투 운동이 처음 시작된 일본의 사례와 진행 경과, 그것들이 우리 한국사회에 갖는 의미를 전문가들의 얘기를 통해 짚어 보겠습니다. 장한지 기자입니다.

[리포트]

일본에서 구투 운동은 지난해 초 여배우이자 프리랜서 작가인 이시카와 유미가 직장 여성에게 이른바 '뾰족구두'를 강요하는 데 문제를 제기하며 촉발됐습니다.

[임상훈 국제문제평론가 / 인문결연구소 소장]
"그분이 아르바이트로 아마 장례식장인가 거기에서 일을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뾰족구두 그것을 신고 일을 하도록 통념상 여성들이 전부 신어야 한다는 강요 아닌 강요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일의 특성상 높은 구두를 신고 일을 하기가 어려운데 그것을 강요를 받으니까 거기서 문제제기를..."

내친김에 이시카와는 "직장 내 하이힐 착용을 강제하는 규정을 폐지해달라"는 운동을 벌여 1만 8천여명의 서명을 받아 지난해 6월 일본 정부에 청원을 냈습니다.

이후 청원 동참 인원은 3만 3천명 넘게 늘어났고, 하이힐 착용 강제 규정 폐지가 전국적인 이슈로 번졌습니다.

이에 후생노동성이 답변을 내놨는데, 이게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습니다.

후생노동성 장관이 야당 의원의 질의에 "여성이 하이힐을 신어야 하는 것은 '사회통념'"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내놓은 겁니다.

[임상훈 국제문제평론가 / 인문결연구소 소장]
"후생노동성이 답변하기를 여성이 높은 구두를 신는 것은 사회통념이다, 라는 그런 취지의 답변을 했었죠. 실제 '사회통념'이라는 말도 했었고요. 네모토 타쿠미 후생노동상이었는데, 그렇게 얘기를 하면서 정부의 공식적인 답변이 되니까 이것이 일본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문제화되기 시작한 것이었고..."

여성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비판과 논란이 거세지며, 하이힐 착용 강제 폐지 '구투 운동'은 권력을 이용한 직장 내 괴롭힘 문제로까지 확산됐습니다.

[이탁규 일본 변호사 / 일본 변호사법인 J&T파트너즈]
"파워 허래스먼트(Power Harassment)는 일본에서 '파워하라'라고 하는데요. 권력을 이용해서 괴롭힌다는 의미의 영어입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여성에게 하이힐이나 단화의 착용을 지시한다든지 의무화하는 게 사회통념에 비춰서 업무상 필요하고 또 적절한 범위인지가 문제가 된다, 이런 식으로 말을 했는데요."

거세지는 구투 운동 물결과 악화되는 여론에 급기야 지난 3월 아베 총리가 직접 여론 무마와 사태 진화에 나섰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여성들에게 복장에 있어 고통을 강요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해, 여성 구두 착용 강제가 성차별임을 사실상 인정한 겁니다.

[이탁규 일본 변호사 / 일본 변호사법인 J&T파트너즈]
"직장 복장 규정에 대해서 남녀 간 차별은 지양해야 한다, 다만 각 기업들의 규정을 정부가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관계법령의 취지를 고려하면서 노사 간 대화가 중요하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부가 민간 기업이나 사업장의 여성 구두 착용 강제 규정 폐지에 직접 나설 수는 없다고 선을 긋긴 했지만, 총리가 구두 착용 강제가 성차별임을 인정한 것 자체가 진일보한 발전이라는 평가입니다.

[임상훈 국제문제평론가 / 인문결연구소 소장]
"'사회통념이니까 바꿀 수 없다'는 그런 취지에서 '여성에게 그것을 강요할 수 없다'는 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정부 입장이 진일보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고, 총리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은 이게 기업체 실제로 여성이 일을 해야 하는 그런 일선에서는 아무래도 경영진에게 압력이..."

실제 아베 총리 발언 한 달 뒤인 지난 4월 일본항공은 여성 승무원의 굽 3~4cm의 하이힐 의무 착용 규정을 폐지했습니다.

이에 따라 남녀를 불문하고 승무원은 모두 굽이 0cm인 신발부터 착용할 수 있게 규정이 개정됐고, 치마만 허용됐던 여승무원 유니폼에 바지 스타일도 도입됐습니다.

한 여배우의 하이힐 거부 투쟁이 수십 년 동안 견고하게 유지돼 왔던 일본의 기존 사회통념을 깨고, 총리의 성차별 인정 발언과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임상훈 국제문제평론가 / 인문결연구소 소장]
"일본항공에서도 스튜어디스 근무자들이 높은 구두를 신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게 실질적인 조치가 이뤄지기도 했었고요. 그러니까 '사실상 변화가 이뤄졌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이겠죠. 일단 상징적으로 스튜어디스의 신발이 높은 구두에서 낮은 신발을 신어도 괜찮은 것으로 변했다는 것은 앞으로 파급효과가 있다고 얘기할 수 있겠죠."

이런 변화는 단순히 직장 여성들이 뾰족구두를 신어야 하는지, 안 신어도 되는지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특유의 '안전 배려 의무' 이슈로 더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 이탁규 변호사의 설명입니다.

[이탁규 일본 변호사 / 일본 변호사법인 J&T파트너즈]
"(일본에서는) 안전 배려 의무라는 게 있습니다. 이것은 종업원을 고용해서 일을 하게 할 때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기업 측의 의무입니다. 그랬을 때 구두를 신게 지시를 했는데 거기에서 합리성이 없었다고 해서 피해를 봤다고 하면 이 안전배려의무에 위반했다고 해서 민사 관련해서는 소송도 걸 수 있겠죠."

단순히 구두 문제를 넘어 사회통념이라는 이름으로 당연시돼왔던 다른 많은 불합리한 것들에 대한 문제제기와 개선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데 더 큰 의의가 있습니다.

[이탁규 일본 변호사 / 일본 변호사법인 J&T파트너즈]
"기업에서는 업무지시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구투 운동이 일어나서 실제로 사회적 운동으로서 '나는 이 지시에 대해서 거부하겠다' 했을 때 그때 이 업무지시 자체가 사회통념상의 필요성이라든지 합리적인지를 판단하게 되는데 그때 그런 '합리성이 없었다' '업무지시상의 필요성이 없었다'고 되면 그때는 그 징계 자체도 위법이 되는 것이죠."

다만 고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듯, 미투 운동과 마찬가지로 구투 운동도 계급 갈등이나 진영논리, 성 대결로 변질되는 것은 엄중히 경계해야 한다고 임상훈 소장은 지적합니다.    

[임상훈 국제문제평론가 / 인문결연구소 소장]
"이것이 정치적 진영논리로 변질이 됐죠. 그렇기 때문에 미투, 그러니까 '내가 어떤 불이익을 당했다' 혹은 어떤 성적 문제와 관련해서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 것이 여성 운동으로서보다는 정치적인 공격의 대상으로, 혹은 그것에서 방어의 대상으로 그것은 미투가 아니다, 이런 식의 논리가 전개되는..."

일부 논란과 부작용에도 미투 운동이 미투 운동 이전의 한국 사회로 돌아갈 수 없게 발전시켰듯, 구투 운동도 그 이름을 떠나 불합리와 차별 시정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사회를 다시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임상훈 소장은 강조합니다.

[임상훈 국제문제평론가 / 인문결연구소 소장]
"우리나라에서도 분명히 사실은 '구투'라고 우리가 명칭을 부르지만 구두 문제뿐만이 아니죠. 예를 들어서 방송 종사자들이라든가 안내데스크에서도 아마 안경 쓰신 여성분은 거의 없을 거예요. 그런 것들을 그냥 구투라는 말 안으로 포함시킨다면 이런 것들이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도 전개가 돼야 하고..."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 백화점 발레파킹 여직원 구두 착용 강요 '인권위 진정' 참여 문의 (→바로가기)

* '한국판 구투 운동' 참여 문의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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