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 사이...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피해 안 돼"

[법률방송뉴스] UN 인권이사회 여러 국제 인권기구들이 우리나라에 지속적으로 형사적 처벌을 폐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 형법상 죄가 있습니다.

바로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인데요. 오늘(30일) LAW 투데이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폐지 관련 보도 전해드리겠습니다.

먼저 국회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는데, 왜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개정 또는 폐지해야 하는지, 그 근거와 논리를 전해드립니다. 장한지 기자입니다.

[리포트]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규정하고 있는 법률은 형법 제307조 및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제70조입니다.

해당 조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습니다.

가짜뉴스나 허위사실이 아닌 '사실'을 적시해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당했다는 '미투 폭로'를 해도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처벌당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 지난 4월 서울동부지법에선 미투 폭로의 일환으로 온라인 영상제작 콘텐츠업체 대표의 갑질을 페이스북에 폭로한 전 직원이 명예훼손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습니다.

대법원도 임금체불 사실을 피켓에 적어 행인들에게 알린 노동자에 대해 지난 2004년 유죄판결을 확정하는 등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광범위하게 처벌하고 있습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미투를 포함해 공익적 목적의 사회적 고발마저 가로막는 일종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여기에 최근엔 성범죄자나 살인범 등 흉악범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이른바 '디지털교도소' 사이트 운영자에 대해 경찰이 명예훼손 혐의 수사에 착수하면서 또 다른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제 국회에서 대한변협과 판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 주최로 열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개정방향' 토론회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열렸습니다.

프라이버시 보호와 표현의 자유, 공익적 고발 사이 합리적인 접점과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입니다.

[김한규 변호사 / 대한변호사협회]
"변호사들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해서 폐지 내지 개정 여부에 대해서 설문조사를 했었는데 사회 법제도 개정에 있어서 변호사들, 소위 말해서 법조인들이 가장 보수적인 색채를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해서 개정의 필요성이 있다' 이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제 시대적으로 환경 변화의 필요성이 있다, 이렇게 인식이 됐고요."

발제를 맡은 사단법인 오픈넷 손지원 변호사는 "그 형벌조항의 존재 자체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엄청난 위축효과가 발생한다"며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개정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일단 명예훼손 고소를 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적시된 사실이 '허위'인지 '사실'인지 입증할 필요 없이, '무고'에 대한 아무 부담 없이 고소를 남발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피고소인은 사실을 말했더라도 피의자, 수사 대상이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습니다.

진실을 고발한 사람들이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를 당하고 형사범죄의 피의자가 되어 또 다른 피해와 고통을 겪게 되고, 사람들은 이런 위험이 부담스러워 진실을 말하는 걸 스스로 억제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는 "증거와 증인이 충분해 진실로 쉽게 증명될 수 있는 성폭력의 경우에도 진실을 말하는 피해자를 협박·위축하게 만들어 2차 가해를 더욱 손쉽게 해주는 요인으로까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손지원 변호사의 지적입니다.

[손지원 변호사 / 사단법인 오픈넷]
"진실한 사실을 고발한 사람들이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를 당하는 사례, 그래서 형사범죄 피의자, 수사대상이 돼서 또 다른 피해와 고초를 겪게 되고 사람들은 이와 같은 위험이 부담스러워서 진실한 사실을 말하는 것을 스스로 억제하게 됩니다. 성폭력 가해자들도 최종적으로 어떤 고발자들이 명예훼손으로 처벌받기를 바란다기보다는 본인들에 대한 폭로를 초기에 진화하는 수단으로 이런 형사범죄를 남용하고..."

꼭 미투에 국한하는 게 아니고 기업의 비리나 상사의 갑질, 권력자의 부정행위 등을 내부고발하고 공론화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폐해입니다.

이런 일종의 자기검열과 이로 인한 침묵을 깨려면 어떤 식으로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손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에 토론회 참석자들은 인식을 같이했습니다.

[정성민 판사 / 사법정책연구원 기획연구위원]
"명예훼손죄, 그중에서도 특히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관련해서는 개정 논의가 꾸준히 있었습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통해 보호하려는 법적 영역과 그 처벌조항의 존재 자체로 인해 위축되거나 침해될 수 있는 법적 영역이 상충한다고 볼 수가 있는데 두 영역이 균형을 이룰 수 있기를 바라고..."

많은 폐단에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쉬이 폐지되지 못한 것은 이를 폐지하면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행위를 제재하기 위한 수단이 사실상 없어지게 된다는 유력한 반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질병이나 성적 취향 등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사실을 무차별적으로 퍼트려도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 상황이 온다면 그 부작용과 폐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반론입니다.

이와 관련 손 변호사는 "아무리 사실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숨기고 싶은 성 이력 등의 과거, 전과기록, 질병, 성적 취향 등 내밀한 정보의 공개로 인격권을 심대하게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선 형사적 제재의 영역에 남겨둬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사생활의 비밀을 균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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