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상 처벌 영역으로 들어가면 '직장 내 괴롭힘' 엄격하게 해석될 우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실효성 담보하려면 그래도 처벌규정 있어야" 우세

▲유재광 앵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얘기 더 해보겠습니다. ‘이슈 플러스,’ 신새아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그동안 경과부터 살펴볼까요. 

▲기자= 직장 내 괴롭힘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게 인격권 침해나 노동자 권익 보호 차원에서 다뤄진 건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한진그룹 대한항공의 '땅콩회항'이나 '물컵 갑질'이 엄청난 공분과 여론의 뭇매를 맞긴 했지만 재벌 오너 일가의 일탈 정도로 치부된 경향도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18년 서울아산병원 박선욱 간호사와 2019년 서울의료원 서지윤 간호사 사망 사건으로 병원 내 극단적 괴롭힘, 이른바 ‘태움’이라는 문화 아닌 문화가 알려지며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 높아졌습니다. 

이런 배경과 맥락 속에 문재인 정부는 국정 과제에 ‘직장 내 괴롭힘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 마련을 포함시켰고, 이후 국회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 규율을 담은 다수의 입법안이 발의가 됐습니다. 

여러 입법안이 제출됐는데, 그 중 근로기준법 개정안 형태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2018년 9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습니다. 그런데 직장 내 괴롭힘 정의 규정의 불명확하다는 등의 이유로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렸는데요. 

그러다 양진호 사건이 터지면서 국민적 공분과 함께 2018년 12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유예기간을 거쳐 꼭 1년 전인 지난해 7월 16일부터 시행됐습니다. 

▲앵커= 보건의료 분야 관련해서도 별도의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나요. 

▲기자= 그렇습니다. 박선욱 간호사에 이어 서지윤 간호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특히 서지윤 간호사의 경우에 유서에 “병원 사람들은 조문 받지 말아 달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극도의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는데요. 

당국은 보건의료 인력부족으로 인한 격무와 과로가 태움 괴롭힘 문화의 구조적 요인이 된다는 인식 하에 보건의료 인력지원도 함께 논의했습니다. 이에 보건의료 인력법안이 2019년 4월 23일 제정돼 같은 해 10월 24일부터 시행되게 됐습니다. 

▲앵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내용 살펴볼까요. 

▲기자= 일단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중심으로 설명하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정의와 그 금지, 그리고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 이렇게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직장 내 괴롭힘을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하며 이를 금지하고 있는데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로는 사실확인 조사, 피해자 보호조치, 가해자 징계, 신고자나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처우 하지 않을 의무 등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들은 모두 사업장에서 자율적으로 해결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설계가 됐습니다. 

▲앵커=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은 어떤 내용인가요. 

▲기자= 이 두 법안에도 ‘직장 내 괴롭힘’ 조항이 들어갔습니다. 

먼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업무상 재해의 인정 기준에 직장 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등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이 추가됐고요.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을 위한 조치기준을 마련하고 지도 및 지원을 정부의 책무로 규정 해놨습니다. 

이와 함께 고용보험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경우’를 실업급여 수급자격이 제한되지 않는 정당한 이직 사유로 추가했는데요. 

통상 회사를 자진해서 그만두는 경우는 실업급여가 나오지 않는데, 직장 내 괴롭힘을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는 실업급여를 지급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앵커= 간호사 태움 관련한 보건의료 인력지원법은 어떤 내용인가요. 

▲기자=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등 보건의료인력의 원활한 인력수급과 함께 이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환경 조성 및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했습니다. 

이를 위해 법안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권침해로 피해를 입은 보건의료인력에 대해 상담 및 지원이나 이를 전문기관에 위탁해 처리할 수 있는 근거규정을 마련했는데요. 

법안은 또 보건의료기관의 장에게 보건의료인력 인권침해 대응지침과 인권침해가 발생한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안내 의무도 부과했습니다. 

▲앵커= 언뜻 듣기에 갖출 건 웬만하면 얼추 갖춘 건 같은데 어떤 문제가 있는 건가요. 

▲기자= 일단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법률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이 허용되지 않는 행위임을 명시하고 이를 규율했다는 점에선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내 절차를 통한 자율적 해결로 인한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이를 남녀고용평등법상 직장 내 성희롱과 비교하면 예방교육이나 사고 시 조사, 피해자 보호조치, 가해자 징계, 비밀 누설 금지 등에 대해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엔 이를 위반하면 일정한 과태료를 부과하는데 직장 내 괴롭힘은 아무런 제재 규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도 의무위반에 대한 과태료가 미미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마당에 직장 내 괴롭힘은 그것마저도 없다는 비판인 겁니다. 

쉽게 말해 이런저런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만 “난 모르겠다”하고 나 몰라라 하면 더 취할 조치가 사실상 없다는 것이죠. 특히 소규모 사업장이나 괴롭힘 가해자가 사용자일 경우 ‘자율적 해결’이나 ‘개선’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됩니다. 

오늘 토론회 발제를 맡은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이종희 변호사 말을 직접 들어보시죠.

[이종희 변호사 /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취업규칙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 규정을 하고 자율적인 사업장내, 자율적인 규범형성을 유도하고 있지만 사업장에서 많은 경우에 취업규칙에서 본문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오는 경우가 많아서 사업장의 특성에 맞춘 규범형성은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판단기준이라든지 신고라든지 그 다음 조사절차, 처분 기준에 대해서 취업규칙에서 정하고 또 그것에 대해서 교육을 하도록 하는 식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변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앵커= 다른 문제가 또 있나요. 

▲기자= 적용범위로 인한 한계도 지적됐습니다. 현재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조항은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는데요. 

직장 내 괴롭힘 금지가 들어있는 취업규칙 작성·신고 의무도 1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이 됩니다. 이에 10인 미만 사업장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범 만들 필요도 없는 건데요. 

실제 해결 가능성을 떠나서 지레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 적용의 예외를 둘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게 이종희 변호사의 설명인 겁니다. 

나아가 원청과 하청은 엄연한 갑을 관계인데도 고용노동부는 같은 직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법상의 직장 내 괴롭힘 적용이 어렵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점도 문제와 한계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앵커= 어떡해야 하나요. 개선 방안은 뭐가 제시됐죠. 

▲기자= 업종별 특성에 맞는 법제도와 정책 논의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관련해서 2019년 국제노동기구, ILO에서 채택된 폭력과 괴롭힘 제190호 협약이 기준점으로 제시됐는데요. 

190호 협약은 인잔의 존엄에 협약의 기초를 두고 좁은 의미의 사용종속 관계로만 괴롭힘 문제를 축소하지 않고 일의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협약이 적용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협약은 그러면서 사업장에서 폭력과 괴롭힘에 대한 정책을 채택하고 실행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법령을 도입해야 하고, 분쟁해결기구와 절차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이를 한국에 적용하면 관련기구 설치 등 사업장 내 해결을 담보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하고, 사업장 내에서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 인권위나 고용노동부 시정명령, 노동위원회 구제절차 등 외부적 구제절차에 관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 겁니다. 

지금처럼 선언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하지 말자’하는 선에서 끝날 게 아니라 실질적이고 실효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근절할 수 있도록 처벌 규정이 포함된 법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참가자들은 강조했습니다. 

다만 형법상 처벌의 영역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끌고 들어가면 법원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좁게 판단할 여지가 있는 점은 양날의 검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결국 법제도 마련과 운영의 묘, 두 축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데도 참가자들이 인식을 같이 했습니다. 

▲앵커= 어렵네요. 그럼에도 확실히 회사나 사용주의 선의에만 맡겨 둘 일은 아닌 것 같네요. 오늘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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