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상고 사건 4만 8천여건... 대법관 1명당 365일 내내 하루 10건 이상 맡아야
법률방송, 8일 개최 법원행정처 '상고제도 개선 위한 전문가 세미나' 단독 방송 예정

[법률방송뉴스] 상고법원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 거래' 논란을 불사하고도 도입을 추진했을 만큼 뜨겁고도 시급한 화두인데요.

오늘(9일) 'LAW 투데이'는 상고제도 관련한 얘기 집중 보도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상고심이 1·2심 재판과 무엇이 다른지, 현재 대법원 상고심 실태가 어떤지, 왜 상고제도 개선이 필요한지 등을 장한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2018년 11월 대법원은 대법관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합의체를 열어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종교적 신념이 병역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고, 대책복무 등 대안 없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무조건 처벌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 대법원 전합 판결입니다. 

2004년 종교를 이유로 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 대법원이 14년 만에 전원합의체를 통해 판례를 바꾼 겁니다.

이후 1심과 2심 법원은 대법원의 변경된 판례에 따라 종교적 신념의 진실성 여부를 따져, 진실성이 인정되는 경우 무죄 판결을 내립니다.

이는 대법원이 법령 해석과 기준을 마련하는 이른바 ‘법률심’ 역할을 하고, 대법원 판례가 하급심 판결에 기본적으로 기속력을 갖기 때문입니다.

[최승호 / 법률사무소 저스트 변호사]
"우리가 1심과 2심을 '사실심'이라고 그러고요. 3심을 '법률심'이라고 부르는데, 사실관계에 대한 존부에 대한 확정은 사실심만이 할 수 있습니다. 법률심은 법률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 법규의 해석 적용을 잘못 적용한 것을 판단한 것을 법률심이라고 하고요."

덧붙여 설명하면 재판은 크게 사실관계를 다투는 것과, 나타난 사실관계를 법률적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할지 크게 두 과정입니다.

전자를 사실심이라고 하고 후자를 법률심이라고 하는데, 통상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은 1·2심에서 끝내고 상고심인 대법원은 1·2심에서 인정한 사실관계에 대한 법률적 판단만 합니다.

대법원 상고심이 법률심이라고 불리면서 1·2심 재판에 대법원 판례가 기속력을 갖는 배경입니다.

실제 법원 종합법률정보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대법원 판결을 보면 '행정청의 행위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 '매매계약의 성립을 위한 매매 목적물과 대금의 특정 정도', '행정청의 행위가 처분에 해당하는지 불분명한 경우' 등 법령 해석과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황도수 / 건국대 법학과 교수]
"대법원은 정책사법기관이라고 한다고요. 일반 하급심 법원하고 달리 사건을 해결하는 것의 역할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정책결정을 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고요. 재판에서 국민들에게 우리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제시하는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에요."

그만큼 대법원, 특히 전원합의체 역할이 중요한데 문제는 대법원으로 넘어오는 상고심 사건이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최근 5년간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 수는 2014년 3만 7천652건, 2015년 4만 1천850건, 2016년 4만 3천694건 2017년 4만 6천412건, 2018년 4만 7천979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대법원장을 포함해 13명의 대법관 중 재판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이 대법관 1명당 1년에 약 4천건의 사건을 맡아야 한다는 계산입니다.

산술적으로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대법관 1명이 하루 10건 이상씩은 처리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 때문에 법원 안팎에선 '대법관은 임명되는 날 딱 하루만 좋고, 나머지는 생고생의 연속'이라는 우스갯소리 아닌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승재현 /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현실적으로 그 사건을 담당할 수 있는 개수가 인간의 능력을 벗어날 수 있다, 그러면 결국 사건이 제대로 된 충실된 심리가 아니라 조금 제대로 안된 불충분한 심리가 이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있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대법원 상고심이 그나마 굴러가는 건 재판연구관들의 도움과 심리불속행 제도에 의존하고 있는 측면이 큽니다.

심리불속행은 형사사건을 제외한 상고사건 가운데 상고 이유에 관한 주장이 법이 규정한 특정 사유를 포함하지 않으면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대법원에서 재판받을 요건을 갖추지 못했으니, 본안 내용을 들여다볼 필요도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겁니다.

이렇게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이 나는 경우가 보통 60~70% 정도 됩니다.

계속 늘기만 하는 상고심 사건과 70% 가까이 심리불속행 기각이 나는 현실, 그 이면엔 '1·2심 판결을 수긍할 수 없다', '일단 대법원까지 가고 보자' 하는 심리, 어떻게 보면 판결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황도수 / 건국대 법학과 교수]
"법률심은 그 똑같은 사실에 대해서 어떠한 법적 판단이 있을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관이라고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삼세번, 또 내지는 3심, 이런 개념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대법원 스스로가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고요."

때문에 법령 해석과 기준 마련이 대법원 본연의 역할이지만, 상고인의 권리구제를 외면할 수도 없어 다시 사실관계와 법률적 판단을 함께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지는 겁니다.

실제 익명을 요구한 고법 부장판사 출신 A 변호사는 "사실관계가 달라지면 유무죄와 양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대법원에서도 증거의 신빙성과 증거능력 등 사실관계 인정 여부에 대해서 엄격하게 본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또 다른 고법 부장판사 출신 B 변호사는 "법리 문제에 대해서 판단을 받아보자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이라며 "법리 오해라는 타이틀 하에 사실 오인도 자연스럽게 녹여서 판단 받아보려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대법원이 상고인의 개별 권리구제에도 신경을 쓰는 걸 뭐라 할 순 없지만, 문제는 상고심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2018년 이뤄진 전합 판결은 단 21건, 대법원 전체 판결의 0.04%에 불과합니다.

대법관들은 대법관대로 소부 주심을 맡은 각 개별 재판 처리에 허덕대고 있고, 법률 기준을 세울 전원합의체는 또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일종의 딜레마에 빠진 겁니다.

[승재현 /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결국 재판청구권 침해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에 있는 대법관의 상고, 대법관들께서 핸들링하는 사건을 처리하는 방법은 어떤 형태로든지 변화를 가지고 와야 한다..."

법률방송은 이런 딜레마에 처한 상고제도의 개선방안을 모색해보기 위해 법원행정처와 함께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이와 관련 "올 1월 발족돼 활동 중인 대법원 상고제도개선특별위원회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상고제도 개선의 필요성과 쟁점 및 개선방안 등을 국민 여러분께 알려드리기 위해서 세미나를 열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코로나19 상황에서 오프라인 세미나는 개최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법률방송이 세미나를 촬영해 방송하는 형식으로 세미나가 이루어지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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