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면죄부 주는 것 결코 아냐... 한국이 주권국가로 주도적 처벌권한 행사해야"
손정우 서울구치소서 곧바로 석방, 고개 숙여.... 아버지 "아들 죗값 받게 하겠다"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한 손정우씨가 법원의 미국 송환 불허 결정으로 6일 오후 석방돼 서울구치소를 나서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한 손정우씨가 법원의 미국 송환 불허 결정으로 6일 오후 석방돼 서울구치소를 나서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법률방송뉴스]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한 손정우(24)씨가 미국 송환을 피했다.

서울고법 형사20부(강영수 정문경 이재찬 부장판사)는 6일 검찰이 청구한 손씨의 범죄인 인도 여부에 대해 3번째 심문을 열고 손씨의 미국 송환을 불허하기로 결정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손씨는 이날 오후 곧바로 석방됐다. 범죄인인도법상 검찰은 법원의 인도 거절 결정이 나올 경우 지체없이 구속 중인 범죄인을 석방해야 한다.

재판부는 손씨에 대한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관련 수사가 아직도 국내에서 진행 중인 만큼 미국으로 송환되면 수사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고, 한국이 주권국가로서 주도적으로 형사처벌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아동청소년 음란물 범죄를 근절하려면 음란물 소비자나 사이트 회원을 발본색원하는 철저한 수사가 필요한데, 웰컴 투 비디오에서 음란물을 다운로드한 이들 가운데 국제 공조수사를 통해서 신원이 확인된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손씨를 미국으로 인도하면 한국이 이들의 신상을 확보하지 못하고 수사에 지장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범죄인을 더 엄중하게 처벌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는 것이 범죄인 인도 제도의 취지가 아니다"라며 "이 사건에서는 한국이 주권 국가로서 주도적으로 형사처벌 권한을 행사할 수 있으며, 범죄인 인도 조약과 법률의 해석에 비춰볼 때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또 재판부는 "손씨와 변호인이 '국내에서 중형을 선고받더라도 죗값을 달게 받겠다'는 취지로 거듭 진술했다"며 "이번 결정이 면죄부를 주는 것이 결코 아니며, 손씨는 앞으로 수사와 재판에 협조하고 정당한 처벌을 받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손씨는 특수한 브라우저를 이용해야 접속할 수 있는 다크웹(Dark Web)에서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하며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유포한 혐의로 지난 2018년 3월 구속 기소됐다. 그는 2015년 7월부터 구속 전까지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유료회원 4천여명에게 수억원에 달하는 암호화폐를 받고 음란물 22만여건을 유포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손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으나 2심은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고 손씨는 지난 4월 27일 만기 출소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미국 법무부가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라 손씨의 강제 송환을 요구하면서 그의 석방은 미뤄졌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해 4월부터 손씨의 강제 송환을 요구해왔다. 미국 연방대배심은 지난 2018년 8월 손씨를 아동 음란물 배포 등 6개 죄명, 9개 혐의로 기소한 상태다.

◆ 아동 성범죄 미국에서 처벌 '공포'... 아버지가 아들 고소하기도

법무부는 미국이 범죄인 인도 조약 및 범죄인인도법에 따라 요청한 손씨의 인도 대상 범죄 중 국내 법률로 처벌할 수 있으면서 국내 법원의 유죄 판결과 중복되지 않는 '국제 자금세탁' 부분에 대해 범죄인 인도 절차를 진행했고, 서울고검은 법원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다. 법원은 범죄인 인도 여부에 대해 이날까지 총 3차례 심문을 진행한 끝에 인도 불허 결정을 했다.

손씨 범죄인 인도 여부의 핵심 쟁점이 된 것은 미국으로 송환될 경우 손씨가 한국에서 처벌받은 아동청소년 성범죄에 대해 미국에서 훨씬 엄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미국은 아동 성착취 범죄를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하게 처벌한다. 아동 음란물을 업로드한 경우 징역 22년, 이를 다운로드 받은 데 징역 15년을 선고한 판례가 있다.

이 때문에 한국 법원이 손씨의 성범죄에 대해 '솜방망이 판결'을 내렸다는 지적과 함께, 손씨의 미국 강제 송환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돼 참여자가 답변 기준인 20만명을 넘기기도 했다.

손씨가 한국 법원에서 아동 성범죄에 대해 이미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미국에서 다시 처벌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은 강력한 반론에 부딪쳤다. 손씨의 범죄는 사이버상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웰컴 투 비디오를 통해 배포된 영상을 한국인뿐만 아니라 미국인들도 다운을 받았고, 이 경우 한국에서 이미 처벌한 것과는 별개로 미국법을 어긴 다른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또 설사 손씨가 미국으로 인도돼 아동 성범죄 혐의가 적용되지 않고 국제 자금세탁 관련 혐의로만 처벌되더라도 자금세탁 규모가 50만 달러 이상이면 최대 징역 20년, 50만 달러 미만이면 최대 징역 10년이 법정권고형인 등 엄격한 처벌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의 경우 자금세탁 범죄를 테러 등 국가안보와 직결시키고 있어 이 역시 한국보다 엄벌을 기조로 한다.

손씨의 아버지 손모(54)씨는 이런 우려 때문에 아들의 미국 송환을 막기 위해 검찰이 과거 손씨를 음란물 제작·배포 등 혐의로 수사할 때 범죄수익 은닉 관련 수사를 하고도 기소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아들을 고소하기까지 했다. 이 혐의에 대한 수사가 다시 진행돼 아들이 기소되면 한국에서 처벌을 받아 미국으로 송환되지 않는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손씨의 아버지는 이날 법원 결정이 나온 직후 취재진에 "재판장이 현명한 판단을 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를 본 분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아들을 두둔하고 싶지 않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국민의 정서와 같게 수사를 잘 받아서 죗값을 치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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