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도색작업 중 사망, 관련 단체·지자체 책임 회피... 지난한 법정 싸움

[법률방송뉴스] 법률방송에서는 사람 목숨값이 목숨값이 아닌 허망한 죽음, 산업재해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보도해 드리고 있는데요.

오늘(18일) 'LAW 투데이'는 오페라 프리마돈나를 꿈꾸었던 23살 성악도의 죽음을 통해 산업재해 문제, 특히 예술인 비정규직의 열악한 환경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먼저 23살 꽃다운 나이에 어이없는 죽음을 맞은 고 박송희 양 사연을 장한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 속에 연보랏빛 환한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무대에 올라 인사를 합니다.

경쾌한 피아노 반주에 맞춰 시작되는 아리아.

[2016 서울 장신대학교 교회음악과 졸업연주회]
"Saper vorreste di che si veste?"(그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알고 싶죠?)

이 여성이 부르는 노래는 베르디 오페라 ‘가면무도회’에 나오는 아리아로, 가면무도회는 18세기 스웨덴의 계몽군주 구스타프 3세의 암살 사건을 소재로 한 오페라입니다.

이 여성이 부르는 아리아는 오페라의 클라이맥스인 3막 3장에 나오는 곡으로, 가면무도회에 참석한 암살범이 왕의 시종인 오스카에게 왕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를 물어보는 부분입니다.

아리아 제목은 '그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알고 싶죠?'입니다. 

왕의 암살 계획을 알지 못한 채, 경쾌한 고음과 익살스런 동작으로 극에 흥미진진함을 불어넣는 오스카 역을 완벽히 소화해 내는 여성.

절정으로 치닫는 고음과 함께 아리아가 끝나자 '브라보'라는 환호와 함께 박수갈채가 터져 나옵니다.

[2016 서울 장신대학교 교회음악과 졸업연주회]
"와! 브라보!"

해당 동영상은 지난 2016년 서울의 한 대학 성악전공 졸업연주회 당시 촬영된 것으로, 동영상의 주인공은 당시 만 21살이었던 박송희 양입니다.

그런데 동영상이 올라있는 유튜브에 달린 댓글들이 심상치 않습니다.

"너무 예쁜 소리네요. 보석 같은 소리네요"라는 상찬 아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라는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그 아래로 박송희 양의 명복을 비는 댓글들이 줄을 이어 달려있는 가운데 "송희야, 천국에서 마음껏 노래하렴. 이제 볼 수 없으니 가슴이 아프구나" 하는 댓글이 가슴을 두드립니다.

21살 대학 졸업연주회 당시 촬영됐던 동영상이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유작이 되어버린 고 박송희 양. 송희 양에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 대학원에 진학해 성악을 계속 공부하던 송희 양은 독일 유학을 계획하고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집안 부담을 덜고 유학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송희 양은 대학원을 다니며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했고, 지난 2018년엔 호남 오페라단에서 조연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습니다.

[박원한씨 / 고 박송희 양 아버지]
"제가 딸을 먼저 보낸 박송희 양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제 딸아이는 책임감도 강하고 또 아래 위 사람들에게 예의가 바른 그런 딸아이였습니다."

말이 좋아 '조연출'이지, 송희 양은 오페라단에서 시키는 온갖 궂은일과 허드렛일을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였습니다.

그러던 2018년 9월 6일 경북 김천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리는 '달하, 비취오시라' 오페라 공연을 하루 앞두고 사단이 났습니다.

무대 페인트칠 작업을 하던 송희 양이 6.5m 아래 지하 바닥으로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친 겁니다.

[박원한씨 / 고 박송희 양 아버지]
"갑자기 사고 소식을 듣고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달려갔는지 저는 기억에도 없습니다."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던 딸은, 씩씩하고 책임감이 강했던 딸은, 그러나 나흘 뒤 결국 뇌출혈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김천에 내려가기 전날 아침 본 딸의 모습이 송희 양의 아버지에겐 의식이 있던 딸의 마지막 모습이 됐습니다.

[박원한씨 / 고 박송희 양 아버지]
"저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송희 방을 들여다보고 잠결에 뒤척이는 아이를 보고 '김천 연주 잘 하고 와' 이렇게 인사를... 부스스 눈 뜨고 흔들어주는 손, 그것이 의식 있는 딸의 마지막 모습일 줄은 꿈에도..."

아버지를 더욱 황망하고 어이없게 만든 것은 딸의 죽음을 가져온 추락 원인이었습니다.

연주자나 배우들이 타고 올라오는 리프트가 송희 양이 무대세트 도색 작업을 하던 2~3m 뒤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송희 양이 작업을 하는 동안 리프트를 지하로 내렸고, 그 사실을 송희 양에게 알리지 않아 뒷걸음을 치다 그대로 6.5m 아래 지하 바닥으로 떨어져 숨진 겁니다.

리프트를 내리는 동안 경보음 같은 것은 울리지 않았고, 리프트 하강을 알리는 경고등은 고장 난 채 방치돼 있었습니다.

송희 양의 아버지는 그렇게 허망하게 23살 딸을 잃었습니다.

[박원한씨 / 고 박송희 양 아버지]
"결국은 우리 아이는 중환자실에서 4일을 버티다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딸을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이 어떤지..."

누가 보더라도 어이없을 정도의 명백한 인재.

하지만 김천시청 등 송희 양의 죽음과 연관된 단체나 사람들은 책임 회피에만 급급했고, 송희 양의 아버지는 딸의 죽음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책임을 묻겠다며 지난한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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