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조현병 따른 우발적 행위, 여성혐오 무차별 범죄 아냐... 도주·증거인멸 우려 없다"
첫번째 영장 기각에 "국민으로 살기 싫다"던 피해자 가족... "분노해 달라" SNS 글 올려

'서울역 묻지마 폭행 사건' 피해자 가족이 SNS에 올린 글. /트위터 캡처
'서울역 묻지마 폭행 사건' 피해자 가족이 SNS에 올린 글. /트위터 캡처

[법률방송뉴스] 서울역에서 처음 보는 여성을 폭행하고 달아난 30대 남성에 대한 2번째 구속영장이 "조현병에 따른 우발적 행위라고 보아 도망과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또다시 기각되자, 피해자 측이 국민들에게 “분노해 달라”며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김성수,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 안인득의 경우를 예로 들며 영장 기각 사유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김태균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상해 등 혐의를 받는 이모(32)씨에 대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영장을 기각했다. 앞서 지난 4일 법원은 철도경찰이 신청한 이씨에 대한 첫번째 구속영장은 "긴급체포의 요건을 갖추지 않고 이씨를 위법하게 체포했다"는 이유로 기각한 바 있다.

김 부장판사는 영장 기각 사유를 "수집된 증거자료의 정도, 수사의 진행경과 및 수사에 임하는 태도 등에 비춰보면 이씨가 새삼 도망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범죄 혐의 사실이 소명되고, 본건 범행으로 인한 피해 내용과 정도 등에 비춰 사안이 중대하다"면서도 "범죄 혐의 사실의 입증에 필요한 증거 대부분이 이미 충분히 수집된 것으로 보이고, 피의자 역시 객관적인 사실관계 자체에 대하여는 다투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 부장판사는 또 "이씨는 사건 발생 후 가족들이 있는 지방으로 내려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고, 이씨와 그 가족들은 재범 방지와 치료를 위해 충분한 기간 동안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며 “이씨도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면서 앞으로 피해자에 대한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함과 아울러 수사 및 재판절차에 충실히 임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김 부장판사는 "본건 범행은 이른바 여성 혐오에 기인한 무차별적 범죄라기보다 피의자가 평소 앓고 있던 조현병 등에 따른 우발적, 돌출적 행위로 보인다"며 재범 방지는 '정신건강 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의 관련 규정에 따른 조치를 통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조현병은 과거에는 정신분열증으로 불렸던 정신질환의 일종이다. 의학계는 사고, 감정, 지각, 행동 등 인격의 여러 측면에서 조현병을 뇌의 이상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 뇌장애로 보고 있다.

조현병 자체가 범죄의 원인은 아니지만, 조현병 환자의 경우 감정 제어가 쉽지 않아 일반인들에 비해 살인이나 폭행 등 강력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법원도 조현병을 감형 사유로 보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8년 발생한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범인 김성수는 조현병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범행 당시 분별력이 있는 상태였다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감형 없이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지난해 4월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 범인 안인득은 2011년 1월부터 2016년 7월까지 68차례 조현병 진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 하지만 그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피해자 가족은 이날 밤 SNS에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많은 분들의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며 “더 많이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해주시고 분노해 달라” 게시물을 올렸다.

피해자 가족은 앞서 이씨에 대한 첫번째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때 "어떻게 또 정신질환을 핑계로 어떤 범죄를 벌일지 모른다"며 "너무 화가 나고 참담하고,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살기가 싫어질 정도"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철도경찰은 이씨의 첫번째 영장이 기각된 후 보강 수사를 벌여 이씨가 서울역과 집 근처 등에서 5명의 피해자에게 묻지마 폭행을 한 것으로 파악하고 이를 2번째 영장 신청 내용에 포함시켰다.

이씨는 당초 지난달 26일 오후 1시 50분쯤 공항철도 서울역 1층에서 30대 여성 행인의 왼쪽 광대뼈 부위 등을 가격해 부상을 입히고 도주한 혐의로 체포돼 영장이 청구됐다. 철도경찰이 이씨를 긴급체포하기 위해 집으로 들어갔을 때 이씨는 정신질환 관련 약물을 복용 중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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