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 사고 나도 대부분 벌금 또는 집행유예 그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범 재범률 97%... 사고 되풀이

[법률방송뉴스] 솜방망이 처벌 때문에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끊이지 않고 되풀이되고 있다고 전해드렸는데요. 실제 우리 검찰이나 법원은 노동자들이 참혹하게 숨지는 중대한 산업재해 사건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이어서 장한지 기자의 리포트 보시겠습니다.

[리포트]

지난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고장난 스크린도어를 혼자서 수리하던 19살의 청년이 열차에 끼어 숨지는 참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른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입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희생자 어머니 / 2016년 5월]
"우리 아이를 확인하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머리카락이 피로 떡이 져 있고 얼굴이 퉁퉁 부어있고 뒷머리가 날아간 시체가 누워있었습니다. 20년을 키운 엄마가 그 아들을 알아볼 수가 없어요."

2호선 운영사인 서울메트로에서 하청을 받은 업체가 비용을 줄이기 위해 2인 1조 작업 수칙 등을 지키지 않은 인재였습니다. 

업무상과실시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업체 대표 이모씨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으며 실형은 피했습니다.

"인력 부족 및 조직 구성의 문제가 사고의 근본 원인이었다. 경제적 요인으로 (안전한 작업환경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게 법원이 밝힌 양형사유입니다.

회사 차원의 문제여서 대표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강하게 지울 순 없다는 게 우리 법원 판단입니다.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청인 이정원 전 서울메트로 대표도 비슷한 취지로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벌금 1천만원이 확정됐습니다.

19살 꽃 같은 청년이 열차에 치어 숨지는 참혹한 일을 당했는데, 하청이든 원청이든 실형을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겁니다.

그나마 원청 대표의 관리와 지휘·감독 책임을 인정해 유죄를 선고한 자체가 전향적이라면 전향적인 판결입니다.

구의역 사고 1년 전인 지난 2015년 강남역 스크린도어 수리 하청업체 소속 28살 노동자가 도어에 끼어 숨지는 사고를 당했지만 법원은 하청업체 대표와 본부장에 징역형도 아닌 벌금 2천만원과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원청인 서울메트로 관계자들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하청업체의 종업원이 업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한 것까지 서울메트로의 주의 의무 위반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우리 법원의 판시입니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은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을 겪고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지난 2018년 12월 연말의 달뜬 분위기 속에 24살의 고 김용균씨가 혼자 작업을 하다 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쓸쓸하고도 참혹한 죽음을 맞은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은 한국발전기술에 하청을 줬고, 한국발전기술은 다시 고 김용균씨 소속 회사에 재하청을 준, 말 그대로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였습니다.

[조영선 /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지옥과 같은 어두컴컴한 공사현장에다가 그리고 계속적으로 들리는 높은 소음, 그리고 분진 이런 것들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노동 현장이 있다는 것들에 대한 당혹감을..."

당시 원청과 하청을 포함한 수사 대상 18명 가운데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된 사람은 모두 11명, 이 가운데 기소가 이뤄진 사람은 단 4명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대부분 실무 관리자들이고,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사장과 하청인 한국발전기술 백남호 사장 등 핵심 경영진 7명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아 기소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 6명이 숨지고 25명 다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붕괴 사건도 원청이든 하청이든 다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았을 뿐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수십명의 노동자가 다치거나 숨졌는데, 이에 책임을 지고 징역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겁니다.

[권동희 노무사 / 법률사무소 일과 사람]
"검찰이나 법원에서도 대표이사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인식을 했었겠냐, 알았겠냐, 대표이사까지 안전주의의무 위반을 묻기는 어려운 구조거든요, 현행법상..."

검찰과 법원 모두 중대재해에 대해 원청이나 회사 대표의 책임을 물어 강하게 처벌하는데 인색하다는 비판과 함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이제는 반드시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권동희 노무사 / 법률사무소 일과 사람]
"밑에 말단에 소장이라든지 공장장이라든지 이런 사람들만 처벌되고, 처벌수준 굉장히 약했었고, 그래봤자 어쨌든 이러한 참사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고 대표이사를 직접적으로 또는 중대재해가 일어났을 때 처벌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담긴 법안이 제정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진일보 한 것이죠."

이런 가운데 최근엔 재활용 업체에서 일하는 정신지체 장애인 20대 청년노동자 고 김재순씨가 파쇄기에 끼어 숨지는 참변을 당하는 등 중대재해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해당 재활용 업체에서는 지난 2014년에도 60대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지만, 업체 대표 박모씨가 받은 처벌은 벌금 8백만원이 전부였습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07년부터 10년간 안전주의 의무 위반 등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범의 재범률은 97%에 이릅니다. 그 기저엔 솜방망이 처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관계자]
"입법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반드시 제정해서 모든 노동자, 시민, 국민을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노동자들의 산재만, 산업재해만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재난재해, 시민재해 등 모든 재해를 보호하기 위한 이런 법안입니다. 그래서 현장에 현장소장, 안전관리자만 처벌받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인해서 회사의 최고경영자, 법인까지 그리고 중대재해가 나오면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줄긴 했어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한 해 2천명 이상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고, 산재로 다치는 사람은 연간 10만명이 넘습니다.

OECD 국가 가운데 산재 사망률 압도적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게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또 다른 민낯입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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