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의사·병원 공개 보험업법 개정 표류... 법조계 "업계 불법적 관행 막아야"

 

롯데손해보험이 '유령 의사'의 자문소견서를 내세워 보험금 지급을 회피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소비자연맹 제공
롯데손해보험이 '유령 의사'의 자문소견서를 내세워 보험금 지급을 회피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소비자연맹 제공

[법률방송뉴스] 43세 김모씨는 2007년과 2009년 롯데손해보험 보험상품에 가입했다. 2018년 9월 21일 경북 경주시에서 운전 중 교통사고를 당해 뇌출혈 등 중상을 입고 영남대병원 등에서 총 164일간 입원해 수술과 재활치료 등을 받았다. 김씨는 2019년 8월 손해사정 결과에 따라 후유장해율 56%로 장해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롯데손보는 '자문 의사' 소견에 따라 장해율이 16%라며 보험금을 깎아서 지급했다. 3차 병원인 영남대병원도 장해율을 40%로 판정했지만, 롯데손보는 역시 장해율 16%를 주장하면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보험사와 환자 사이에 보험금을 놓고 다툼이 벌어질 경우 제3의 의사에게 소견을 묻는 ‘의료자문 제도’가 보험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6일 "롯데손보의 행태는 보험가입자에게 정당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기 위해 벌이는 전형적인 횡포"라며 “보험사들이 환자를 직접 치료한 주치의의 진단서마저 부인하고, 환자를 보지도 않은 '유령 의사'의 불법적 자문 소견을 내세워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악행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소비자들이 금융감독원 등에 민원을 제기하면 철회를 요구하거나, 보험사기 혐의로 고발하는 일도 다반사라는 것이 금융소비자연맹 측의 설명이다. 먼저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해놓고, 소비자들을 압박하면서 보험금 삭감이나 지급 거부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보험사들의 관행처럼 됐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보험사들의 전횡을 막고 소비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의료자문 실명제’를 도입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의료자문 실명제는 보험사가 보험금 책정 등을 위해 자문의로부터 의료자문을 받은 경우 피보험자에게 자문 의사의 실명 등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행 보험업법상으로는 보험사가 자문 의사 관련 정보를 공개할 의무는 없다.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8월 의료자문 실명제 도입을 골자로 한 보험업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의 적정성 평가를 위해 별도로 진행하는 의료자문위원의 성명, 소속기관, 의료자문 결과를 공개하도록 했다. 하지만 개정안은 20대 국회 회기 만료로 자동폐기됐다.

보험업계와 의료계는 보험업법 개정을 강력 반대하고 있다. 한 의료업계 관계자는 “의료자문 실명제가 도입돼 자문의의 이름이나 기관 등이 공개되면 보험계약자들이 직접 의사나 병원에 불만을 제기할 수 있고, 이들을 상대로 소송이 남발되는 상황이 벌어질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보험업법 개정을 통해 의료자문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만큼 보험사들의 자문의사를 '동원'한 불법적 관행이 뿌리깊다는 지적이다.

신유진 변호사(법무법인 화담)는 “자문 소견을 작성한 의사의 실명을 공개, 적정한 자문이었는지에 대해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보험사의 적정한 보험금 지급 여부가 문제가 될 때는 최종적으로 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특정 보험사 자문의의 편파성이 지속적으로 문제가 될 경우, 의료인 자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조치까지 만들어놔야 보험사의 불법적 관행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료소송 전문 엄태섭 변호사(법무법인 오킴스)는 ”실제 환자를 직접 관찰하지 않은 의사의 자문의견이 환자를 직접 관찰하고 진료를 행한 의사의 진단서보다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전제했다. 엄 변호사는 “따라서 보험사의 의료자문으로 인해 보험금이 감액되거나 부지급된 경우 그 자문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자문의료기관 정도는 공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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