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불법 승계' 관련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심의 신청
삼성과 검찰에 각각 역풍 불러오는 '양날의 칼' 될 수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 6일 경영권 승계 및 노조 문제 등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사옥 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 6일 경영권 승계 및 노조 문제 등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사옥 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률방송뉴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 측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이하 수사심의위) 심의를 신청했다. 최근 승계 의혹과 관련해 2차례 검찰에 소환조사를 받은 이 부회장 측이 자신에 대한 검찰의 신병처리를 앞두고, 기소 여부 등에 대한 판단을 검찰 외부 전문가들에게 먼저 받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과 삼성 임원들은 전날 서울중앙지검에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서를 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 부회장 사건을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에 넘기기에 앞서 검찰시민위원회(이하 시민위)를 개최해 논의할 계획이다. 수사심의위 운영지침에 따르면 사건 관계인이 관할 검찰청 시민위에 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하면, 신청서를 접수한 검찰청은 대검 정책기획과에 즉시 접수 사실을 보고하고 시민위를 열어야 한다. 시민위는 수사심의위 소집 여부와 관련해 해당 안건을 심의하게 된다.  

서울중앙지검 시민위는 자영업자, 택시기사 등 9명의 시민으로 구성돼 있으며, 시민위가 수사심의위 소집 요청을 할 경우 검찰총장은 반드시 소집해야 한다.  

 무작위 추첨 외부 전문가 15명, 영장 청구 및 기소 여부 등 심의

수사심의위는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공정성 시비를 낳을 수 있는 사건의 수사 과정을 변호사, 교수, 기자, 시민활동가 등 외부 전문가들이 심의해 수사 결과의 적법성을 평가하는 제도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검찰의 과거 수사 폐해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수사 적성성 확보를 위한 견제장치의 하나로 도입했다. 

수사심의위는 150명 이상 250명 이하의 위원들로 비공개 풀로 운영되며, 심의 안건이 올라오게 되면 해당 사건 검토에 참여할 위원 15명이 무작위 추첨으로 선정된다.

수사심의위는 수사의 계속 여부, 기소 또는 불기소 처분 여부, 구속영장 청구 및 재청구 여부, 기소 또는 불기소 처분된 사건의 수사 적정성·적법성 여부 등을 심의한다.

지금까지 수사심의위는 총 8차례 열렸다. 수사심의위 결정에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검찰은 지금까지 대체로 수사심의위 의견을 수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심의위 심의 결과는 비공개가 원칙이지만 공식적으로 공개된 적도 있다.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 등에서 불이익을 준 혐의로 구속 기소됐던 안태근 전 검사장의 경우, 심의위는 기소는 물론 구속영장 청구도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첫 수사심의위는 기아차의 2015, 2016년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고소당한 노조 간부들의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열렸다. 수사심의위는 불기소 결정을 내렸고 검찰은 이에 따랐다.

울산지검이 경찰간부 2명을 상대로 진행한 피의사실 공표 혐의 수사와 관련해 '수사 계속 여부'에 대한 심의안건이 올라왔을 때 수사심의위는 "계속 수사 필요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 진압에 소홀했다는 혐의를 받은 소방관들에 대해서는 "화재 진압에 집중한 소방관들에게 인명 구조 지연으로 인한 형사상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불기소 처분을 권고했다.

◆ "검찰 수사에 앞서 삼성에 대한 '여론의 판단'을 받아보자는 것"

이재용 부회장 측이 검찰에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을 한 데 대해 법조계와 재계에서는 첫번째로 "삼성이 이 부회장 구속과 기소를 막기 위해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수사심의위가 어떤 위원들로 구성될지 어떤 결론을 내릴지 가늠하기 힘든 상태에서 소집 요청을 한 것은, 검찰 수사팀이 내부적으로 이 부회장 구속 기소 방침을 정했다는 전제 하에 그것을 피하기 위해 배수진을 치는 전략적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당초 검찰은 이달 중 승계 의혹 관련 수사를 마무리하고, 이 부회장과 삼성 전현직 임원 등 관련자들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 등 신병처리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승계 관련 수사팀인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는 최지성(69) 옛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64) 옛 미전실 전략팀장(사장), 최치훈(63)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 이영호(61) 삼성물산 사장, 정현호(60) 삼성전자 사업지원TF장(사장), 김태한(63) 삼성바이오 사장 등 전현직 삼성 수뇌부와 삼성물산 등 계열사 고위임원들을 줄줄이 불러 조사했다.

검찰이 이후 지난달 26일과 29일 이 부회장을 2차례 소환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과 관련한 승계 의혹을 직접 조사하면서 1년 6개월여에 걸친 수사가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풀이됐다. 

두번째로는 검찰이 장기간의 방대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이 부회장의 승계 관련 혐의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전제 하에, 자칫 이 부회장이 무리하게 기소될 가능성을 우려한 삼성 측이 수사심의위에서 최종적인 '여론의 판단'을 받아보려는 시도라는 분석이다.

삼성이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이미 국정농단 사건 등으로 구속됐다 풀려나 지금도 파기환송심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부회장의 처지를 고려한다면, 이번에는 검찰 판단에 앞서 전문가들의 판단이 과연 어떠한지를 고려해달라는 삼성 측의 호소라고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 미중 갈등 등 악재가 겹치면서 한국 경제가 엄중한 위기에 있는 상황에서 삼성 총수가 각종 수사·재판으로 붙잡혀 있으면 정상적 경영이 가능하겠느냐"며 "검찰의 기소와 구속 여부에 따라 경영활동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로 이런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삼성이 던진 승부수가 오히려 수사심의위를 통해 검찰의 이 부회장 기소 방침에 힘을 실어주는 역효과가 날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수사심의위가 한쪽으로는 이 부회장과 삼성, 다른 한쪽으로는 검찰에 치명상을 입히는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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