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그림 대작(代作)' 공개변론 열려.... 검찰 "사기" vs 변호인 "기망 의사 없어"

[법률방송뉴스] 다른 화가가 그린 그림에 살짝 마무리 붓 터치만 해서 자신의 서명을 달아 그림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애초 "해당 그림을 이렇게 이렇게 그려달라"는 주문은, 서명을 해서 판 사람이 화가에 주문했습니다.

이 그림은 다른 사람이 그린 이른바 '대작(代作)'일까요, '창작(創作)'일까요.

가수 조영남의 그림 대작 논란 얘기인데, 사기죄로 기소돼 1·2심에서 유무죄 판결이 엇갈린 조영남에 대한 대법원 공개변론이 오늘(28일) 오후 열렸습니다.

대작인가, 창작인가. 장한지 기자가 공개변론 현장을 들여다봤습니다.

[리포트]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사기 혐의로 기소된 가수 조영남에 대한 공개변론. 주심은 1부 권순일 대법관이 맡았습니다.

[권순일 대법관 / 대법원 1부 주심]
"오늘 변론을 진행하는 사건은 조영남 등 피고인의 미술작품 판매사건입니다. 검사는 조영남, 장OO(조영남 매니저) 피고인을 사기죄로 기소했습니다. 1심은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했고, 반면에 항소심은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화투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 조영남은 조수 화가들이 거의 완성된 그림을 넘기면, 가벼운 덧칠을 하고 자신의 서명을 남겨 그림을 팔았습니다.

수십 점의 그림을 이렇게 팔았는데, 검찰은 피해액을 1억 8천만원으로 특정해 사기죄로 조영남을 기소했습니다.

1심은 사기죄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반면 2심은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대법원은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점 등을 감안해 공개변론을 열고 검찰 측과 조영남 측, 미술가들의 의견 등을 두루 청취했습니다.

[권순일 대법관 / 대법원 1부 주심]
"재판부는 미술작품의 창작 과정, 미술작품의 거래 관행과 관련해 전문가의 의견을 법정에서 직접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 대법정에 나와 피고인석에 앉은 조영남은 검은 재킷을 입고 마스크를 쓴 채 재판 과정을 묵묵히 지켜봤습니다.

 

▶ '조영남 그림 대작 사건' 재판 쟁점 1. 창작자는 누구? ◀

먼저 가장 큰 재판 쟁점은 창작자를 누구로 봐야 하는지, 조수의 역할은 어디까지인지입니다.

검찰은 대부분의 그림을 직접 그린 조수 화가들이 실제 창작자이지, 조영남을 창작자로 볼 순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조영남은 추상적인 아이디어만 제공했을 뿐 구체적으로 지시·감독을 한 사실이 없고, 조수 화가들이 각자 알아서 도구와 재료를 판단하고 선택해 그렸고, 조영남은 돈 지불만 했다"는 겁니다.

반면 조영남의 국선 변호인은 일련의 화투 시리즈엔 조영남의 사상과 철학이 담겼다며 조영남이 창작자라고 맞섰습니다.

"조영남이 자신의 사상·철학에 따라 작품 콘셉트를 구상하고 이를 실현할 방법을 조수들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조영남은 조수들이 그린 밑그림에 추가 작업을 하는 등 창작 행위를 했다"는 주장입니다.

 

▶ '조영남 그림 대작 사건' 재판 쟁점 2. 조수 사용은 팝아트 관행? ◀

조수 화가 사용이 이른바 팝아트의 관행인지 여부를 두고도 조영남 측과 검찰은 부딪쳤습니다.

"팝아트 제작에 조수를 고용하는 것은 관행이고, 저작물의 완성에 기여했더라도 그 기여행위에 창작성이 없으면 저작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법원의 일관된 판례"라는 게 조영남 측의 주장입니다.

검찰은 이에 "조수 사용이 팝아트의 관행이라고 하는데, 앤디워홀 등은 다수의 조수를 고용했지만 이용 사실을 알렸고, 세부적인 지시·감독 내용을 모두 공개한다"고 반박했습니다.

 

▶ '조영남 그림 대작 사건' 재판 쟁점 3. 그림 구매동기는 무엇? ◀

사기죄 성립에 있어 재판의 또 다른 핵심쟁점은 조영남이 그림을 그렸는지 여부가 그림 구입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쳤느냐입니다.

검찰은 "유명 가수인 조영남이 직접 그린 게 아니라면 구매자들이 높은 가격으로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검찰은 "거액을 주고 그림을 구입하는 이유는 그가 유명 연예인이고 그가 직접 그렸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라며 "대신 그린 그림을 자신이 직접 그린 것처럼 판 것은 명백한 사기"라고 강조했습니다.

조영남의 변호인은 작가에게 조수 사용 사실을 일일이 고지해야 할 의무까지 부담 지울 순 없다며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맞섰습니다.

 

미술계 관행인가, 대국민 사기극인가.

1심은 "조씨가 제작했다는 작품들이 자신의 창작적 표현물로 온전히 삼을 수 없고, 이를 구매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며 사기죄를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반면 2심은 "조수를 통한 작품 제작 방식이 미술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방식이고, 구매자들의 주관적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사기 혐의를 인정할 수는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조영남은 오늘 공개변론에서 "앤디 워홀의 코카콜라 병 팝아트 성공에 착안해 화투를 그리기 시작했다"며 "저의 작업방식을 누구에게나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조수와 함께 작업하는 모습을 틈틈이 TV로도 보여줬다"면서 결백을 호소했습니다.

[조영남 / 대법원 공개변론]
"대법관님, 저는 남은 인생을 갈고 다듬어 많은 겸양을... 사회에 보탬 되는 참된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살펴주시기를... 옛날부터 어르신들이 화투를 가지고 놀면 패가망신한다고 그랬는데 제가 너무 오랫동안 화투를 가지고 놀았나 봅니다. 부디 제 결백을 가려주십시오."

하급심의 판단이 엇갈리고,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대법원이 어떤 최종판단을 내릴지 주목됩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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