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마라톤 연습하면서 역주행으로 달려올 것까지 예상할 의무 없다"

[법률방송뉴스] 도로에서 마라톤 연습을 하며 역주행해 오던 사람을 자동차로 치어 숨지게 했습니다. 운전자는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요. ‘판결로 보는 세상’입니다.

제주에 사는 64살 남성 A씨는 지난해 9월 5일 청천벽력 같은 일을 당했습니다.

오전 5시 20분쯤 자신의 전기차를 운전해 제주시 애조로 동샘교차로 인근 도로를 가던 A씨는 피할 새도 없이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사람과 충돌했습니다.

마라톤을 연습하던 당시 55살 여성 B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치어 숨지게 한 겁니다.

A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검찰은"사고 당시 어둡고 안개가 끼는 등 시야가 좋지 않아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고 전방을 살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며 “이를 소홀히 한 과실로 사고를 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A씨를 질타했습니다. 

A씨는 이에 대해 “사고 발생 구간이 평소 보행자가 드물고, 자동차 앞으로 피해자가 뛰어올 것도 예상할 수 없었다”며 “사고 당시 오른쪽 도로로 빠져나가기 위해 속도를 줄이며 전방을 주시했는데도 충돌 직전까지 피해자 일행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차 대 사람의 교통사고에서는 차량 운전자에게 높은 주의 의무가 적용되기 때문에 운전자의 과실이 높게 책정됩니다. 사망 사고의 경우 형법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공히 5년 이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A씨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예상을 뒤엎는 ‘무죄’였습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자동차전용도로와 유사한 상황의 도로에서 야간에 사람이 마라톤 연습을 하면서 역주행으로 달려올 것까지 예상해야 하는 등의 전방주시 의무를 태만히 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게 1심 재판부(제주지법 형사4단독 서근찬 부장판사)의 무죄 선고 이유입니다.

법원은 직접 사고 현장을 검증하고 해당 도로가 자동차전용도로와 유사한 상황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제주도 내에 자동차전용도로로 지정된 곳은 없지만, 이 사건이 발생한 도로는 실질적으로 자동차전용도로처럼 운용되고 있는 점을 고려한 겁니다.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분석 결과, 안개가 옅게 낀 사고 당일 제한속도가 시속 80㎞인 이 도로에서 A씨는 50㎞ 이하 속도로 운전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에 재판부는 "자동차 전조등의 조사 거리와 범위, A씨의 피해자 발견 시 반응 및 제동거리 등을 볼 때 즉시 감속하거나 급정지 등의 조치를 했다면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에 대한 교통사고에서 운전자의 형사책임을 일반적으로 부정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이 사건은 그보다 더 피하기 어려운, 자동차 정면에서 역주행해 오는 마라톤 연습하는 사람에 대한 교통사고인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1심 판결에 불복한 검찰은 항소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도로를 역주행해 달려오는 사람을 치어 숨지게 한 사고. 내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 하더라도 교통사고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데요.

최근 스쿨존 내 교통사고 처벌을 대폭 강화한 이른바 ‘민식이법’을 두고 “잘못이 없는 운전자도 처벌받아야 하는 악법”이라는 등의 반발도 나오고 있습니다.

교통사고 과실 여부에 대한 판단은 논란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어떤 경우든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하는 운전 습관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습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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