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최루탄 가슴에 직격으로 맞아 사망... 진상규명 노무현 변호사 제3자개입 등 혐의 구속도
지난해 고 이석규씨 유족들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 청구... 법원 "소멸시효 지나 배상 안 돼"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경찰 최루탄에 가슴을 직격으로 맞아 숨진 대우조선 노동자  고(故) 이석규씨의 운구 장면./ 연합뉴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경찰 최루탄에 가슴을 직격으로 맞아 숨진 대우조선 노동자 고(故) 이석규씨의 운구 장면./ 연합뉴스

[법률방송뉴스] 1987년 여름 6.29 선언 이후 터져 나온 이른바 ‘노동자 대투쟁’ 당시 경찰이 쏜 최루탄에 가슴을 맞아 숨진 고(故) 이석규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패소했습니다. ‘앵커 브리핑’입니다.

이석규씨는 1987년 6월 항쟁에 이은 노동자 대투쟁 당시 거제도에 위치한 대우조선 노조 소속으로 파업에 참여했습니다.

같은 해 8월 22일 노사간 마지막 협상이 결렬 되자 노조원들은 가두행진을 벌였고, 경찰은 노조원을 포위한 채 최루탄을 난사했습니다.

이씨는 이때 경찰이 쏜 최루탄을 가슴에 직격으로 맞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했습니다.

당시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우조선 노동자들로부터 사체 부검 입회 및 진상조사 요청을 받고 거제도로 달려가 이석규씨 사망 사인규명 및 진상조사 활동에 나섰다가 장례식 방해와 제3자 개입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고 이석규씨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2003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씨의 유족들은 지난해 "경찰 공무원들의 과잉 진압 과정에서 이씨가 사망했으므로 국가가 이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며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소송을 냈습니다.

이씨가 사망한지 22년 만에 국가를 상대로 민사책임을 묻는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이씨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 김병철 부장판사는 이씨의 아버지와 형제들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먼저 "이석규씨가 경찰 등에 의해 자행된 기본권 침해행위에 의해 희생된 사실은 분명하다"고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다만 "이씨가 사망한 1987년 8월 22일에 유족들이 손해와 가해자를 알았을 것이므로, 그로부터 3년이 넘어 소송을 제기해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유족들의 손해배상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

우리 민법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 불법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10년 이내에 행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해당 기간이 지나면 청구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돼 소멸합니다..

이석규씨의 경우 1987년 당시 국가의 불법행위에 숨졌다는 사실을 유족들이 알고 있었던 만큼 소멸시효 내에 청구권을 행사 했어야 했는데, 소멸시효를 넘겨 소송을 제기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입니다.

국가의 불법행위 배상책임 관련 법원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보다 훨씬 이전인 박정희 정권 시절 긴급조치 위반 사건 피해자 등에게도 최근까지 국가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긴급조치 위반 사건 등 국가배상 책임이 받아들여진 판결들은 재심을 통해 형사사건에서 무죄를 확정받은 경우입니다.

관련해서 헌법재판소는 2018년 8월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 등에 대해서는 일반 사건에서처럼 민법상 소멸시효 제도를 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씨의 유족 측도 재판에서 박정희 정권 시절 국가의 위법한 행위에 대한 일련의 배상 판결들과 헌재의 해당 위헌 결정을 들어 소멸시효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석규씨 사건은 긴급조치 위반 등 국가배상이 받아들여진 다른 과거사 사건들과 달리 따로 재심 절차가 없었으므로 청구권 소멸시효가 이미 지났다고 판단했습니다.

"긴급조치 사건 등은 모두 유죄 확정판결에 대해 재심 판결이 확정된 사안으로 이씨의 경우와 다르다”는 것이 재판부 판시입니다. .

재판부는 "긴급조치 사건 등은 과거 유죄판결이 고문 등으로 조작된 증거에 의해 잘못 내려졌다는 사실이 재심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유족들이 공무원의 불법행위를 이유로 국가 배상을 청구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씨의 사건과 구분된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또 “헌재의 위헌결정 전까지 이씨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볼 수도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석규 사건'에 대해 당시 노무현 변호사는 ‘고 이석규 장례관계 사건일지’라는 제목의 기록에서 당시 언론과 검찰, 법원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내가 거제 있는 동안 우리가 한 일에 관하여는 우리가 그곳에 있을 때부터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기 시작하였고 그 이후 내가 부산으로 돌아오고 난 이후에도 계속 정부나 언론의 공격을 받아왔다”는 것이 노무현 변호사의 기록입니다. .

부산 해운대 경찰서 유치장에서 쓴 일지에서 노무현 변호사는 “나는 이후에도 이 문제에 관하여 수사 과정에서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며 검찰과 법원을 “독재집단의 장단에 춤추는” 집단으로 적고 있습니다.

87년 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으로부터 23년이 흘렀습니다. 세상이 민주화 되고 촛불을 든 시민들은 '국정농단'을 저지른 현직 대통령을 탄핵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법원과 검찰, 언론에 대한 인식은 당시 노무현 변호사의 인식에서 얼마나 달라지고 나아졌을까요.

외피적으로 정권이나 청와대로부터의 독립성은 그때와 비교도 안 되게 확립됐지만, '사법행정권 남용'이나 '정치검찰', '기레기' 논란 등 우리 법원과 검찰, 언론이 새로운 비판, 새로운 숙제를 안고 있는 것도 분명한 '현실'입니다.  

각설하고, 소멸시효는 이른바 법적 안정성을 위한 제도입니다. 재판부의 이번 판결은 소멸시효의 테두리 안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해선 단순히 개인간의 채권 채무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역사 바로세우기나 정의 구현 차원에서 소멸시효를 없애는 특별법을 만들어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순리 아닌가 합니다. ‘앵커 브리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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