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 합격률 문제 지적하니까 '합격부터 하고 말하라'고?... 그래서 나섰다"

박은선 변호사가 지난 22일 대한변호사협회 앞에서 "변호사 배출 수를 통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법률방송
박은선 변호사가 지난 22일 대한변호사협회 앞에서 "변호사 배출 수를 통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법률방송

[법률방송뉴스] 제9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 이후 24일로 꼭 한 달이 지났다. 합격자들은 치열한 로스쿨 3년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변호사가 됐다는 기쁨에 아직 젖어있을 시기다. 그런데 시험을 통과하자마자 청와대와 대한변호사협회 앞 등에서 '법무부의 변호사 수 통제의 부당함'을 외치기 시작한 이들이 있다.  

이들은 “변호사시험 제도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지적이 '불합격자들의 붙여달라는 떼쓰기'로 치부되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합격한 뒤에도 꼭 목소리를 내겠노라고 마음먹고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까지 변호사시험 합격률 등 관련 시위는 로스쿨 재학생이나 졸업생이 주축이 돼 진행됐다. 변호사들이 시위를 주도하는 것은 처음이다.

◆ “합격률 통제는 위헌... 법조계가 침묵하는 것이 부끄럽다”

지난해 지방의 한 로스쿨을 졸업하고 재시 끝에 변호사시험 합격의 기쁨을 맛본 박은선(42)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 공동대표는 지난달 28일부터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는 “문제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결국 합격자들이 나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장소를 바꿔가며 릴레이 형식으로 매주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 변호사는 “로스쿨은 도입 취지와 달리 자격시험이 아닌 선발시험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그런데 이런 문제를 로스쿨 관련자들이 모두 알고 있는데도 왜 개선되지 않고 있을까 고민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통상 합격률 관련 시위는 매년 변시가 끝난 뒤부터 합격자 발표 전까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며 “발표가 나면 합격자들은 시험제도 문제에 무관심해지고, 불합격자들은 치열한 수험생활에 묶이면서 시위는 잠잠해졌다”고 말했다. 매번 반짝 이슈로만 다뤄지는 것이 문제가 개선되기 힘든 이유라는 분석이다.

그는 “나 붙여달라고 시위하는 것이 아니다. '평생 응시금지' 제도나, 합격률 통제는 위헌이다. 지금의 로스쿨은 교육기관이라 할 수 없다"며 "로스쿨 설립이 사법개혁의 한 모습임을 생각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들이다. 그런데도 법조계가 알면서 침묵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가 매주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인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동참하고 싶다는 합격생들이 그에게 연락을 해오고 있다.   

◆ “나는 합격했지만, 변시 합격률은 지금보다 높아져야 한다”

지방의 한 로스쿨 9기로 이번에 첫 응시에서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김모씨는 “그동안 학업 압박으로 문제제기를 할 수가 없었다”며 “로스쿨 제도가 산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시위에 참여하고 싶다고 박은선 변호사에게 연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8일부터 시위에 참가했다.

김씨는 “로스쿨 도입 취지가 여러 전문영역에 관심있는 인재를 길러 변호사들이 진출하는 영역을 넓히고, 사법시험 과목 위주로 운영되던 학교 교육을 정상화시키겠다는 것 아니었나”라며 “결과적으로 지금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법무부의 합격자 수 통제로 수험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현행 로스쿨 교육은 오로지 시험 중심으로 파행 운영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위 ‘5탈 제도’라고 불리는 응시 제한·금지에 대해 김씨는 “응시자 대비 합격률 80%를 전제로 만들어진 제도”라며 “합격률이 50%인데 이런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찬희 변협 회장과 윤석열 검찰총장도 모두 사법시험에 10번 가까이 떨어졌던 사람들”이라며 “외국의 경우 재교육을 통해 재응시 기회를 준다. 평생 절대적으로 응시 기회를 박탈하는 경우는 전례가 없다”고 강조했다.

◆ “하위권의 붙여달라는 떼쓰기?... 지긋지긋한 프레임 씌우기"

또 다른 지방대 출신으로 재시 끝에 이번에 합격한 장모씨는 “변호사시험 합격률 통제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면 ‘실력이 부족한 하위권들의 떼쓰기다’, ‘합격부터 하고 말해라’는 식의 비난이 쏟아지는 것이 지긋지긋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6일 시위에 참여했다.

장씨는 “합격률이 올라간다고 바로 로스쿨 교육이 정상화되지는 않겠지만, 합격률 조정 없이 교육 정상화는 불가능하다”고 시위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의전원생 친구와 함께 독서실에서 공부했는데, 의전원은 합격률이 95%쯤 되니 사교육이 거의 없고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듣더라”며 "시험과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최신 기술 이야기에도 집중한다"고 말했다. "반면 로스쿨에서는 거의 100% 사교육에 의존한다"며 "교수들도 최신 실무에 무관심하지만, 학생들도 시험에 나오지 않는 수업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장씨는 또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낮아질수록 기계적인 암기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토론식 수업은 허상"이라며 현행 로스쿨 교육이 파행으로 운영될수 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응시금지 제도에 대해 “법무부가 합격률 논란을 피하기 위해 5탈 제도를 악용하는 것 같다”고 성토했다. “5탈 제도로 매년 500명씩 응시금지자가되고, 그 인원만큼 경쟁이 낮아지는 것처럼 포장된다"며 "5탈 제도가 없다면 변시 합격률은 현재보다 15%가량 하락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번 9회 변시의 응시자 대비 합격률은 53.5%다.

◆ "변호사시험 합격률 올려라"... 변협 앞에서 1인시위 하는 변호사들

선배 변호사들도 나섰다. 다섯번 도전 끝에 제8회 변시에 합격한 방효경 변호사는 "로스쿨 도입 취지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지금 제도 그대로 유지된다면, 로스쿨과 사법시험의 단점만 모아둔 제도가 될 것"이라며 시위에 나선 이유를 말했다.

방 변호사는 지난 22일 대한변협 회관 앞에서 박 변호사와 차례로 1인 시위를 벌였다. 변호사가 대한변협 앞에서 변호사시험 합격률 정상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은 이들이 처음이다. 변협은 그동안 "변시 합격자 수가 너무 많다"는 입장을 계속 유지해 왔다.

재시 끝에 제8회 변시에 합격한 이희범 변호사는 "로스쿨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모두 이 제도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을 것"이라며 "후배들을 위해 나서겠다"고 말했다. 그는 26일 변협 앞에서 진행되는 시위에 참가할 예정이다.

제7회 변시에 합격하고 응시금지제도와 변호사 시험에 관한 10여개의 소송 담당으로 활동하는 김정환 변호사 역시 시위 참가 예정이다. 그는 다음달 4일 평생응시금지자가 되어 그 제도를 규탄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최강수씨와 헌법재판소 앞에서 시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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