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의 산하Law] 화제의 드라마, 영화 등 문화 콘텐츠를 통해 시청자와 독자들이 궁금증을 가질 만한 법적 쟁점을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들이 칼럼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편집자 주

 

정지숙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정지숙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필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데요. 5월 18일에 즈음해서, 20년 전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세계에 알린 독일인 기자(위르겐 힌츠페터)와 그와 함께 한 택시운전사(김사복)의 실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택시운전사’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 속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지만 법적으로 쟁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택시운전사 만섭(배우 송강호)은 식당에서 다른 택시운전사가 ‘10만원을 택시비로 내고 광주에 가겠다는 외국인 호구를 태운다’는 말을 우연히 듣고는, 그 택시운전사인 것처럼 행세하여 영어를 잘한다며 외국인 기자 피터를 속여 그를 태우고 광주로 향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피터를 속인 만섭의 행위가 형법상 ‘사기죄’에 해당될까요.

형법 제347조 제1항에는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사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기망행위 및 이로 인한 피해자의 재산적 처분행위,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취득, 고의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기망행위는 ‘허위의 의사표시에 의하여 타인을 착오에 빠트리는 일체의 행위’로서, 쉽게 말해 타인을 속이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만섭은 택시비를 얻고자 고의로 다른 택시운전기사인 것처럼, 또한 영어를 잘 하는 것처럼 피터를 속였고, 이로 인해 착오에 빠진 피터는 만섭의 택시에 승차하여 결국 만섭에게 택시비까지 지불하였습니다. 이에 언뜻 만섭은 택시비 상당의 이익을 얻었기 때문에 ‘사기죄’가 성립되는 것으로 보여지나, 엄밀히 말해 피터는 거짓말에 속아 만섭의 택시에 승차하였지만, 만섭이 광주까지 피터를 태우고 간 ‘운송행위’에 대한 대가로서 택시비를 지급한 것입니다. 따라서 만섭의 기망행위와 피터의 재산 처분행위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 결국 사기죄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는, 만섭이 혼자 있을 딸을 생각하여 홀로 서울로 돌아가려 하자, 태술은 서울 택시는 군인들이 모조리 잡아들인다며, 다른 택시에 붙어있던 전라남도 번호판을 주고 고쳐 달게 합니다. 이에 만섭은 바뀐 번호판의 자동차를 타고 광주 시내를 달리다 지프차를 탄 공수부대 무리와 마주치지만 전남 번호판을 보고 지프차가 그냥 지나쳐 감으로써 무사히 광주 밖으로 빠져나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영화상으로는 차량 번호판을 바꾸는 행위가 필요해 보이지만, 실제로 이 같은 행위를 한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즉, 형법 제238조 제1항에서는 ‘행사할 목적으로 공무원 또는 공무소의 인장, 서명, 기명 또는 기호를 위조 또는 부정사용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2항에서는 ‘위조 또는 부정사용한 공무원 또는 공무소의 인장, 서명, 기명 또는 기호를 행사한 자도 제1항과 동일하게 처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 번호판은 그 자체가 위 형법 제238조에서 말하는 ‘공기호’(공적인 기호)이기 때문에 임의로 자동차 번호판을 바꾸어 부착한 행위는 ‘공기호 부정 사용죄’에 해당되며, 또한 이를 부착하고 운전한 행위는 ‘부정사용 공기호 행사죄’에도 해당됩니다.

이처럼 영화를 보다 보면, 시나리오상 법적으로 문제될 수 있는 장면들을 종종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런 점까지 고려하여 영화를 보는 것은 상당히 재미없는 일이 되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영화 속 사소한 장면이 현실에서는 불법행위로서 처벌될 수도 있으므로, 이 점에 주의하며 영화 감상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