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아빠들' 형사처벌 등 법안 내용 다 빠져... "국가가 아이·여성 생존 외면"

[법률방송뉴스] 법률방송은 지난 6일 '말기암 싱글맘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이혼 뒤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전 남편에게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싱글맘의 사연을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싱글맘이 11살, 9살 두 아이를 남겨두고 지난 12일 끝내 남겨질 아이들 생각에 감겨지지 않았을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양육비 문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장한지 기자가 말기암으로 숨진 싱글맘, 고 김지혜씨의 어머니를 만나고 왔습니다.

[리포트]

지난 6일 국회 앞에서 열린 '양육비 지급 이행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양육비해결총연합회(양해연)의 기자회견.

현장에선 11살, 9살 두 아들을 키우는 '투준맘'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말기암 싱글맘이 양해연에 보내온 편지가 공개됐습니다.

[손민희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부대표/ '투준맘' 편지 대독] 
"아빠 없이 자랐다는 소리 듣지 않게 하려고 아빠들이 하는 일도 다 했어요. 톱질, 못질, 드릴까지도요. 근데 남자아이는 아빠를 찾더라고요. 더 열심히 했어요. 운동도 잘했으니 인라인도 보드도 스키도 다 같이 타려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요."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고 안타까워하던 싱글맘은 지난 12일 오후 4시 55분 끝내 사망했습니다.

이제는 가고 없는 딸, 고생한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 엄마는 미안할 뿐입니다.

[박선혜씨(가명) / 고 김지혜씨 어머니]
"살다 살다 지치니까 못 살고 나온 거예요. 술 먹으면 구타하고 소리 지르고, 몸도 아프니까 힘들죠. 아이가 암 앓은 지가 지금 7~8년 되는데, 그러기 전에서부터 직장 다니고 뭐하고 해서 병들었는데도 항암 해가면서도 직장 다니면서 그랬는데..."

법원은 "한 아이 당 매달 50만원씩, 100만원을 아이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양육비로 주라"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5년 전 이혼한 남편은 단 한 번, 그것도 고작 50만원 준 게 그동안 준 양육비의 전부였고, 아이들 양육은 오롯이 지혜씨의 몫이었습니다.

그래도 지혜씨는 아이들 기죽지 않게 하려고 암 판정을 받은 와중에도 수영장으로 스키장으로, 남들 다니는 데 다 데리고 다니며 몸이 부서져라 이를 악물고 키웠습니다.

[박선혜씨(가명) / 고 김지혜씨 어머니]
"나는 그때 뭐라고 했어요. '네 몸도 안 좋은데 그냥 쉬지 애들 데리고 다니냐, 추운데...'. 지금에 와서 보면 아이들한테 많이 끝까지 해주려고 한 것으로 생각돼요. 자기가 그렇게 떠날지 알고 미리 많이 데리고 다녔던 것 같아요."

지혜씨의 어머니는 지금은 가고 없는 숨진 딸의 전 남편만 생각하면 속에서 천불이 납니다.

[박선혜씨(가명) / 고 김지혜씨 어머니]
"인간도 아닌 것이지. 어떻게 자기 자식을 둘씩이나 있는데도, 아이가 그렇게 암으로 해서 그런 상태에서 키우는데도 한 푼도 안 주고, 사람이에요? 그거 사람도 아닌 것이지. 괘씸 이상이에요, 그것은."

지혜씨는 숨을 거두며 어머니한테 "이제 아이들을 아빠한테 보내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아이들 커가는데 옷 한 벌 안 사준, 짜장면 한 번 사준 적 없는 사람에게 지혜씨의 분신인 아이들을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박선혜씨(가명) / 고 김지혜씨 어머니]
"마지막에 아이가 그런 얘기는 하더라고요, 가기 전에. '엄마 이제 엄마 나이도 있고 힘드니까 아이들 (남편에게) 보내라'고 그러더라고요. 내가 그랬죠. '네가 여태껏 키우고 엄마랑 같이 키우고 그랬는데 너도 못 주는 것을 내가 어떻게 주니. 그걸 어떻게 주니.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키울게...'"

다행히 이제 11살, 9살 난 두 손자가 할머니를 잘 따르는 게 지혜씨 어머니의 기쁨이라면 유일한 기쁨입니다.

[박희수(가명·11)·박희철(가명·9) / 고 김지혜씨 아들]
"(요즘 뭐가 제일 재밌어?) 할머니랑 노는 거요. (형은?) 할머니랑 장난하는 거요."

이혼한 뒤 주기로 한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아빠들'이 비단 고 김지혜씨 얘기만은 아닙니다.

지혜씨 어머니는 이에 대해 "지혜 전 남편이 법원에서 얼마를 주라고 판결했는데도 준다고 하고 안 준다"며 "줘야 주는 거지, 우리나라 현 법률이 그렇게 돼 있다"고 씁쓸하면서도 허탈해했습니다.

[국회의사당 앞 / 18일 오전]
"양육비는 아동의 생존권이다. 양육비 이행을 강화하라!"

"강화하라! 강화하라! 강화하라!"

오늘(18일) 국회 앞에선 모레 20일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앞두고 양육비 미지급 피해를 받고 있는 지혜씨와 같은 싱글맘들이 "양육비 이행 법안을 처리하라"고 힘껏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영 /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
"양육비 (미지급) 피해 아동은 100만명이 넘습니다. 아이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 아이들을 지켜보며 건강하게 잘 키우려고 고군분투하는 양육 부모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양육비를 안 주고 잠적하거나 재산을 숨기면 양육비 이행을 강제할 방법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미 20대 국회에는 양육비 미지급시 형사처벌, 명단공개, 운전면허 정지 등을 할 수 있도록 한 ‘양육비 이행 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여러 건 발의됐습니다.

하지만 개정안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를 통과하면서 형사처벌이나 출국금지, 명단공개 등의 내용은 빠졌습니다.

애초 발의됐던 법안들에서 상당 부분 후퇴한 겁니다.

[김진아 / 여성의당 공동대표] 
"아이에게 필요한 보육과 의식주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렇게 이미 태어난 아이들의 문제를 국가가 나 몰라라 하면서 출산 장려에만 예산을 쏟아붓는다고 저출산이 해결될 것 같습니까."

그나마 양육비 미지급자에 운전면허를 정지·취소시키는 내용도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에서 유지될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경찰청에서 "교통과 상관없는 이유로 운전면허를 정지·취소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혀왔기 때문입니다.

양육비 이행 강제를 위해선 운전면허 정지는 물론 출국금지, 양육비 악성 미지급자 명단 공개, 형사처벌 등 조항을 다시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 여성단체들의 요구입니다.

[김진아 / 여성의당 공동대표]
"미국, 캐나다, 독일 등 다른 국가들처럼 양육비 지급을 피하는 양육비 채무자를 형사처벌해야 합니다. 국가는 더 이상 여성과 아이의 생존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나쁜 아빠들'의 편에 서지 마십시오."

국회 법사위는 내일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양육비 이행 강제 법안 등 민생법안들을 심리한 뒤, 모레 전체회의를 열어 처리할 예정입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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