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없이 낮은 의료사고 소송 원고 승소율... "입증책임 병원으로 전환해야"

[법률방송뉴스] 법률방송에서는 어제와 그제 장염 증세로 종합병원에 입원했다가 입원 당일 심정지로 숨진 11살 지환이 사례를 전해드리며 의료소송의 문제점을 짚어보는 기획보도를 하고 있는데요.

최근 5년간 의료소송 사건을 보니 원고, 즉 피해자나 그 가족들이 의료사고 소송에서 전부승소한 경우는 1% 안팎밖에 안 될 정도로 의료소송의 벽은 높았습니다.

정말 억울하지 않으면 소송까지 가지도 않았을 텐데, 소송을 가도 완전히 이기는 경우는 100에 1명 정도밖에 안 되는 의료소송,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장한지 기자가 의료전문 변호사들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지환이 부모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 건 오전 10시반에 종합병원 응급실에 입원해, 저녁 7시20분 더 큰 대학병원으로 이송될 때까지 어쨌든 9시간 가까이 병원에 있었는데 아이가 왜 숨졌냐는 겁니다.

병원에서 제때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병원 측의 과실로 숨진 게 아니냐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곽재헌(41)·서지현(가명·41) / 지환이 부모]
"사고가 나서 애가 피를 흘리고 있는 상황에서 가는데 수술이 늦어졌다든가 이런 것도 아니고, 본인이 혼자 병실에서 대소변까지 다 보고 혼자서 다 움직이고 하던 아이가 갑자기 심정지가 와서 죽은 것이잖아요. 그러면 병원에서 뭔가 왜 이렇게...“

하지만 병원 측은 최선을 다했고, 안타깝지만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는 입장입니다.

병원 측은 그러면서 지환이 부모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허위사실을 유포할 경우 명예훼손 등 법적 대응을 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A종합병원 관계자]
“안타깝게 사망을 했습니다. 자, 그 장소가 병원이에요. 만약에 지환이가 조금 상태가 괜찮아서 집에 있었다고 하면 집에서 사망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런 것으로 생각을 해주셨으면 좋겠고요.”

해당 종합병원 관계자의 말은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부모 입장에서는 대못이 박힐 수밖에 없는 냉정한 발언입니다.

부모가 이런 병원을 상대로 과실이 있었는지 잘잘못을 다투려면 소송을 내 재판을 하는 수밖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의료사고 소송을 냈을 경우 승소율, 이길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지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최근 5년간 대법원 '사법연감'입니다. 

1심 판결을 기준으로 의료사고 소송의 경우 원고가 전부 승소한 경우는 비율로 보면 2015년 1.15%, 2016년 1.37%, 2017년 0.64%, 2018년 1.22%, 2019년 0.86%로 나타났습니다.

100명이 의료사고 소송을 내면 평균해서 1명 안팎밖에는 승소하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일부 승소한 경우까지 포함하면 원고 패소 비율과 비슷하긴 하지만, 통상의 다른 민사재판에 비춰보면 승소율이 한참 떨어집니다.

부동산 소유권이나 공사대금, 구상금, 대여금 청구소송 등의 경우엔 원고 전부승소가 패소에 비해 최소 2배 이상에서 10배, 20배 이상 많은 경우도 있습니다.

같은 손해배상소송의 경우에도 자동차사고는 원고 일부 또는 전부 승소를 더하면 패소의 10배가량 되고, 산업재해나 건설·건축 등의 경우에도 원고 일부 또는 전부 승소가 패소에 비해 2~3배 정도 됩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민사소송의 경우 정말 억울하고, 관련 자료나 증거가 있는 사람들이 원고로 나서기 때문인 측면이 큽니다. 

그런데 유독 의료사고 경우만 일부 승소를 포함해도 패소와 엇비슷하고 전부 승소는 100명에 하나밖에는 안 되는 겁니다.  

[이인재 의료전문 변호사 /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
"왜냐하면 전문가는 의사이기 때문에 의사가 법정에 나와서 이 환자가 이랬다고 하면 판사는 그 의사의 말을 믿지만 환자가 이랬다고 하면 그것은 객관적이지 않다고 보는 것이죠."

의학지식이 사실상 전무한 일반인이 의사나 병원을 상대해야 하는 것  자체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인데, 과실 입증책임을 오롯이 원고가 져야 하는 건 승소 확률을 더욱 희박하게 합니다.   

[정현석 의료전문 변호사 / 법무법인 다우]
"의료기관 같은 경우에는 그냥 모르쇠로 일관해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난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입증책임 분배의 원칙에 따라서 환자가 이런 수술에서는 이러이러한 의료행위가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 이 사건에서는 그것에 못 미치는 이런 수준의 의료행위를 했기 때문에 너에게 과실이 인정돼야 한다, 라고 이야기하는 게 굉장히 어렵단 말이죠."

가장 흔한 의료사고 가운데 하나인 분만 중 태아 사망을 예로 들면, 이름도 생소한 ‘태아곤란증’이 아이에게 있어 응급제왕절개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식으로 병원 과실을 입증해야 하는 겁니다.   

[신현호 의료전문 변호사 / 법률사무소 해울]
"환자 입장에서는 태아곤란증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굉장히 어렵잖아요. 애는 뇌성마비로 태어났고, 그런데 의사들 입장에서는 '태아곤란증이 이때 없었다. 나는 경과 관찰했다' 이러고 '배 째라'라고 하면, 판사 입장에서는 의사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어요."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으려면 원고의 병원 과실 입증책임 완화가 절대적으로 선행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환자가 병원의 과실을 입증하는 것이 아닌, 병원 측에서 과실이 없었음을 입증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의료전문 변호사들의 한결같은 지적입니다.   

[신현호 의료전문 변호사 / 법률사무소 해울]
"전략을 바꿔서 태아가 안녕하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 '태아 안녕'이라는 진단이 안 됐으면 역으로 태아곤란증이 추정되는 거 아니냐, 태아 안녕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사가 입증을 해라, 태아곤란증까지는 우리가 안 바라겠는데 그래도 애가 아직까지 안녕한 상태다, 스트레스 안 받고 있는 상태다, 이런 점은 의사가 입증할 수 있거든요."

현실적으로 입증책임 일괄 전환이 어렵다면, 피해자나 가족은 관련 정황을 전혀 알 수 없는 중환자실이나 수술실 등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진 의료사고에 대한 입증책임부터 전환하자는 대안이 제시됩니다.

[이인재 의료전문 변호사 /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
"중환자실, 수술실, 시술실, 보호자가 도저히 사고내용을 알 수가 없는 '밀실성'이 전제된 곳에서 의료사고가 났을 때는, 그 의사들이 진료기록을 쓰잖아요 의사들이 작성한 진료기록 기재만 갖고는 환자의 경과를 도저히 파악할 수 없을 때, 그럴 때는 입증책임을 (병원에) 전환하는 게 맞죠."

그리고 병원은 물론 법원도 성범죄 사건의 경우 ‘피해자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성인지 감수성처럼, 의료사고의 경우에도 적극적으로 ‘환자 인지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의료전문 변호사들의 호소입니다.   

[신현호 의료전문 변호사 / 법률사무소 해울]
"결국 법원이 '피해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의사도 치료하거나 환자 상태가 나빠지거나 하면 충분히 얘기해줘가면서 상황 설명도 해주고 치료방법을 같이 상의해서 결정해야 하지 않느냐. '환자 치료 인지 감수성'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하는데 결국 판사가 얼마나 인식의 전환을 하느냐가 중요한 거 같아요."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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