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록 입수... 부모 "우리가 병원 잘못 선택해서 아이를 죽인 거잖아요..."

[법률방송뉴스] 지난 2월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에서 장염 증세를 보여 입원한 11살 아이가 입원 당일 심정지로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이 부모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병원 측의 안일한 대응을 성토하며 의료사고를 수사하는 전담부서와 관련 법을 제정해 달라는 청원(바로가기)을 지난 8일 올렸습니다.

법률방송은 이번 사건의 경과와 내용을 자세히 전하며, 피해자들이 의료사고를 입증해야 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불리는 의료사고 소송에 대한 개선 방안을 모색해 보는 기획보도를 준비했습니다.

첫 보도로 사망한 아이의 진료기록부 등을 단독 입수한 장한지 기자가 아이가 허망하게 숨지게 된 경위를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수도권의 한 납골당.

40대 초반의 젊은 부부가 손을 뻗어 유골함을 만져봅니다.

2009년 1월 13일생, 세상을 떠난 날짜는 2020년 2월 19일.

유골함의 주인은 11살의 짧은 생을 살다 떠난 곽지환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순한 성격에 이제 8살 된 어린 남동생을 잘 돌봐주던 지환이를 그렇게 허망하게 보낸 부모는 그저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곽재헌(41)·서지현(가명·41) / 지환이 부모]
"아이를 그렇게 장례를 치르면서 제일 부모로서 아이한테 미안했던 게 저희가 병원 선택을 잘못했잖아요, 저희가 병원 선택을... 그 병원을 안 갔었더라면 살릴 수 있었는데 그게 너무나 아이한테 미안한 거예요. 부모로서 병원을 잘못 선택해서 아이를 죽인 거잖아요."

"우리가 병원을 잘못 선택해서 아이가 죽은 것"이라는 뼈아픈 자책과 영원히 씻겨지지 않을 미안함. 

법률방송이 단독 입수한 지환이의 진료 기록부 등을 통해 지환이에게 벌어진 일들을 되짚어봤습니다.

법률방송이 입수한 지환이의 진료기록부 등 의료 기록들입니다.

지난 2월 16일 일요일 저녁 무렵부터 지환이는 심한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합니다.

이튿날인 2월 17일 종합병원에 데려가 진료를 받게 했는데, 독감 검사에서는 음성이 나왔습니다.

'좀 쉬면 낫겠지' 했는데 지환이는 별 차도를 보이지 않았고, 화요일인 2월 18일엔 구토까지 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은 38.5도에 이르렀고 부모는 지환이를 인근 이비인후과로 데려가 진료를 받게 했습니다.

이비인후과 차트를 보면 주상병이 '감염성 기원의 기타 및 상세불명의 위장염 및 결장염', 부상병은 '상세불명의 복통'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위장염과 결장염, 복통은 있는데,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수액치료 등을 받았지만 증세가 호전되지 않자 부모는 지환이를 이튿날인 2월 19일 수요일 인근 소아·청소년과로 다시 데려갔습니다.

소아·청소년과에서는 "수액치료를 받았으나 이후에도 구토가 지속되고 심한 탈수증상을 보이고 있다",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의뢰 드린다"는 진료의뢰서를 작성해 지환이를 큰 병원으로 보냈습니다.

[곽재헌(41)·서지현(가명·41) / 지환이 부모]
"19일 새벽에 아이가 자다 깨서 또 구토를 했거든요, 몇 번. 그러니까 죽도 조금씩 먹고 못 먹고 이런 상태에서 구토를 하니까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아. 안 되겠다. 소아과를 가야겠구나' 동네에 있는 소아과를 갔죠. 아침에 문 열자마자 갔는데 이왕 수액을 맞을 거면 조금 큰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으면서검사를 해보시는 게 좋겠다..."

오전 10시 30분 부모는 지환이를  17일 한번 진료를 받았던 A종합병원 응급실로 데려갔고, 지환이는 수액을 맞으며 기다리다가 12시 소아과 의사 B교수에게서 진단을 받았습니다.

독감 검사 결과 음성이 나오자 B교수는 급성 간염을 의심할 때 하는 상복부 초음파를 찍고 체내 염증 수치를 확인하기 위한 혈액검사를 진행했습니다.

지환이는 오후 2시 일반 병동으로 이동했고, 지환이를 진료했던 B교수는 오후 휴진이어서 퇴근했습니다.

뚜렷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가운데, 지환이는 구토와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쥐어짜듯 '힘들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곽재헌(41)·서지현(가명·41) / 지환이 부모]
"오후에 병동으로 올라갔을 때는 아이가 계속 '하. 엄마 힘들어' 계속 왼쪽, 오른쪽 계속 자세를 바꾸더라고요. 그래서 '엄마 힘들어. 힘들어'. 막 '헉. 헉' 화장실 갈 때도 이렇게 가고 급하게 하는 거예요, 평소에는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는데..."

오후 2시 20분 상복부 초음파 결과는 '이상 없음'으로 나왔고, 간호사들은 "괜찮다" "큰 문제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곽재헌(41)·서지현(가명·41) / 지환이 부모]
"간호사들한테 '아이가 너무 급해 보이는데, 이게 정상이냐'고 그랬더니, '너무 힘들면 그럴 수 있어요'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막 '엄마 힘들어. 힘들어' 이런 것도 얘기했더니 '너무 힘들면 그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지환이는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기도 했고, 간호사들은 그래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곽재헌(41)·서지현(가명·41) / 지환이 부모]
"아이가 이렇게 있는데 '앞이 안 보인다'고 그러고, 간호사가 와서 '보이냐'고 그러니까 '엄마, 다시 보여' 이러더라고요. 그러면 그때라도 빨리 의사한테 전화를 하든가. 앞이 안 보인다고 하는데 간호사가 확인했는데 '다시 보인다'고 하니까 다시 가더라고요."

지환이와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나 보호자들이 보기에도 애가 너무 이상해 보였는데, 병원 측만 "괜찮다"며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보호자 / 지환이와 같은 병동]
"같이 입원했던 엄마들이 똑같이 얘기하시는 게 '왜 병실에 올라올 저기(상태)가 아닌데'... 깽깽거리고 '배 아프다'고 그러고 입술은 완전히 거의 검은색 비슷했었고요. 제가 봤을 때는 얼굴은 거의 하얬어요. 중환자실 사이즈였지 병실에 올라오는 건 솔직하게 아니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병원에서) 너무 아이러니하게 대처를 하시더라고요."

오후 5시, 혈액검사 결과 지환이는 백혈구 수치가 굉장히 높게 나오는 등 수치로도 이상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오후 5시 55분, 고통이 극에 달한 지환이는 소리를 지르고 발버둥을 치며 신음소리와 헛소리를 반복했습니다.

"괜찮다" "그럴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던 병원 측은 그제서야 B교수에게 전화연결을 시도했지만, B교수는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후 6시, 지환이에게 1차 심정지가 왔습니다.

[곽재헌(41)·서지현(가명·41) / 지환이 부모]
"막 헛소리를 하더라고요. 헛소리를 하고 나서 조금 있다가 눈이 이렇게 막 올라가고 정신이 잃은 것처럼 그렇게 보이더라고요. 그러니까 (아이가) 막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뭐 가져오라'고. 그러니까 그때서야 이제 막 산소포화도 검사하는 거 부착하고 이러면서..."

나중에서야 응급실 의사가 와서 심폐소생을 했지만, 담당 의사는 수차례 계속된 전화 연결 시도에도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곽재헌(41)·서지현(가명·41) / 지환이 부모]
"심폐소생술을 하기 전인가에 로라아티반을 주사를 했어요. 그게 신경안정제거든요. 정신과 환자들이 막 액팅을 할 때 놓는, 그럼 차분하게 내려주는 약이거든요. 그런데 그 약을 환자 상태도 보지도 않고 당직 의사가 처방을 내렸어요. 와서 본 것도 아니고 유선으로 오더를..."

오후 6시 45분 결국 병원 측은 더 큰 대학병원으로 이송을 권유했고, 저녁 7시 20분 지환이는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곽재헌(41)·서지현(가명·41) / 지환이 부모]
"그 정도 환자의 상태면 맥박을 측정하는 장비를 달고 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거든요. 왜냐하면 가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요. 이미 한 번 심정지가 온 아이니까..."

별다른 장비도 달지 않고 지환이를 이송한 병원 측은 앰뷸런스 안에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곽재헌(41)·서지현(가명·41) / 지환이 부모]
"앰뷸런스를 타고 갈 때 보호자는 조수석에 태웠어요. (처음엔 타지 말라고 그랬어.) 그리고 간호사 2명이 타고 있었어요. 그러고는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심정지가 왔는데, 간호사 2명은 무엇을 했냐는 것이죠. 차에 타고 있었으면 아이가 심정지가 왔으면 다시 심폐소생술을 하든 뭔가 했었어야 하잖아요."

대학병원에 도착한 지환이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는 건 "이미 심정지로 사망했다"는 사망진단이었습니다.  

그렇게 부모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지환이를, 꽃 피워보지도 못한 지환이를, 세상에 나온 지 11년 만에 영영 떠나보냈습니다. 

남은 건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야 할 슬픔과 트라우마입니다.

[곽재헌(41)·서지현(가명·41) / 지환이 부모]
"얼마 전에도 작은 아이가 형이 없어서 집에서 있기 힘드니까 놀이터 데리고 갔다가 넘어져서 병원을 가는데, 넘어져서 병원 가야 하는데도 아이는 '엄마 병원 갔다가 병원 가서 죽으면 어떡하냐'고..."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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