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조정기관 "딸이 채무 면탈 목적으로 아파트 상속지분 포기"
법률구조공단 "딸에게 아파트 상속지분 없어... 사해행위 아냐"

▲앵커= 오늘(12일) ‘법률구조공단 사용설명서’에선 ‘사해행위’ 얘기 해보겠습니다. 신새아 기자 나와 있습니다. 먼저 어떤 사연인지 들어볼까요.

▲기자= 2016년 3월 당시 84살이었던 김모씨는 남편과 사별했는데요. 남편이 유일하게 남기고간 재산은 살던 아파트였습니다.

김씨는 남편과 슬하에 3명의 딸을 두고 있었는데, 딸들은 아버지가 남긴 아파트에 대한 상속권을 주장하지 않고 어머니 단독 소유로 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같은 해 8월 어머니 김씨와 딸들은 아파트 명의이전을 위해 이런 내용으로 상속재산분할협의 계약을 맺고, 어머니 김씨 단독 명의로 이전등기도 마쳤습니다.

▲앵커= 여기까진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뭐가 문제가 된 건가요.

▲기자= 둘째 딸 박모씨의 ‘빚’이 문제가 됐습니다. 원금 1천900만원에 지연손해금 4천700만원을 더해 총 6천600만원의 카드빚이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둘째 딸은 자신 명의 부동산도, 별다른 소득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에 채무조정기관에서 어머니 김씨를 상대로 “둘째 딸 박씨가 자신의 상속분 권리를 포기한 것은 채무를 면탈할 목적의 사해행위”라며 사해행위 취소 소송을 제기하면서, 어머니 김씨에게로 불똥이 튄 겁니다.

▲앵커= 사해행위라는 게 정확히 뭔가요.

▲기자= 사해행위란 '채권자를 해(害)롭게 하는 채무자의 의도적 재산감소 행위' 등을 말하는데요. 한 마디로 빚을 진 사람이 빚을 갚지 않으려고 재산을 다른 사람 이름으로 빼돌린다든지 하는 의도적 또는 악의적인 재산 감소 행위를 말합니다.

이 사건에선 둘째 딸이 자신의 상속분을 포기한 것이 사해행위라는 게 채무조정기관의 주장입니다.

▲앵커= 박씨는 어떻든 빚을 졌으니까 그렇다 치고, 어머니 입장에선 그야말로 날벼락이네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법원에서 사해행위로 인정이 되면 둘째 딸이 포기한 상속지분만큼 아파트 상속권이 둘째 딸에게 돌아가게 되고, 이 경우 둘째 딸의 빚을 받아내기 위해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갈 수도 있는데요. 어머니 김씨 입장에서 딸이 진 빚 때문에 남편이 남겨준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아파트를 잃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겁니다. 

이에 84세의 고령에 별다른 근로능력도 없는 김씨는 법률구조공단의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법률지원을 받아 소송에 나섰습니다.

▲앵커= 공단은 어떻게 변론을 했나요.

▲기자= 네. 통상 이런 사해행위 취소 소송은 상속권 포기 등 사해행위의 객관적 구성만 충족이 된다면 사해 의사가 있는 것으로 추정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는 경향이 있는데요.

즉 이렇게 되면 어머니 김씨가 패소하게 되는 건데요. 공단은 아파트 형성에 대한 김씨의 ‘기여분’을 적극적으로 주장했습니다.

▲앵커=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주장한 건가요.

▲기자= 해당 아파트는 사망한 남편이 1991년쯤 1천500만원의 대출을 받아 산 아파트였다고 하는데, 남편은 일정한 직장이 없는 등 경제력이 좀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씨가 파출부나 청소 등 궂은일을 하면서 딸들과 남편을 부양하며 아파트 구입 대출금을 변제했다는 점을 집중 부각하는 한편, 딸과 오랜 기간 같이 살지 않아 딸에게 빚이 있는 지도 전혀 알지 못해 채권자를 해롭게 할 사해의사가 없었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앵커= 법원 판결은 어떻게 나왔나요.

▲기자= 법원은 김씨 손을 들어줘 상속재산분할협의가 사해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김씨와 남편의 혼인기간, 재산상태, 경제활동 내용 등을 고려할 때 해당 아파트에 대한 김씨의 기여분은 100% 인정된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입니다. 재판부는 이에 “애초 김씨에게 귀속되어야 할 기여분이 돌아간 것일 뿐, 둘째 딸이 상속된 재산을 다시 처분한 게 아니어서 애초 사해행위가 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소송을 맡은 공단 이기호 변호사는 “부부 중 한사람이 먼저 사망했을 때 자녀들이 일생동안 가정에 헌신해온 남은 부모에 자신의 상속지분을 이전하는 것은 우리사회의 도덕적 관념에도 부합하는 사례”라며 “이런 재산 이전을 사해행위로 보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앵커= 네, 합리적이고도 적절한 판결 같네요. 오늘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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