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신뢰 없이는 국가가 존립할 수 없다"
법제처 국민법제관 제도로 국민 목소리 확인

김형연 법제처장
김형연 법제처장

[법률방송뉴스]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란 말이 있다. '논어'에 나오는 말로 국민의 신뢰 없이는 국가가 존립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가 전대미문의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대응 사례가 국제사회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외국과 달리 도시 봉쇄, 강제 격리, 이동 제한 등이 아닌 자율적으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한 우리 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 덕분이다.

아울러 현장 전문가의 조언을 바탕으로 한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와 함께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처음부터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여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정부의 현장과의 소통, 대응의 투명성 및 이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국가 존립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법제처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하여 어린이부터 청소년,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국민과 소통하는 창구를 두고 있다. 먼저 초등학교 4∼6학년이 참여하는 어린이법제관과 중학생이 참여하는 청소년법제관 제도가 있다.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어릴 때부터 공동체의 민주시민으로서 법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학교 규칙을 직접 만들어 보거나 학교폭력이나 게임 등 평소 관심이 많은 분야의 법을 만들다 보면, 법이 더 이상 어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자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청소년법제관 활동을 했던 한 중학교에서는 학교 규칙을 개정하여 학생회장 입후보자의 결격 사유에 ‘학교폭력 가해학생으로 처분을 받은 자’를 추가했다. 학생들이 학교폭력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직접 학교 규칙을 고친 것이다. 이렇게 또래 학생들과 토론하고 협의하여 좋은 규칙을 스스로 만들다 보면, 법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고 준법정신이 성숙해질 것이다.

아울러 법제처는 풍부한 현장 경험과 전문 지식을 가진 국민을 국민법제관으로 위촉하여 입법과정에서 이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대학생, 회사원, 자영업자, 각 분야의 전문가 등 다양한 직업군으로 구성된 국민법제관이 정부의 입법과정에 참여하여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해 여권 분실 신고서 서식 개정을 위한 심사에 국민법제관이 참여하였다. 당초 서식에는 ‘분실 당시 목격자의 진술 가능 여부’를 여권 분실자가 직접 확인하여 적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신고서를 검토한 국민법제관은 여권분실자 대신 행정관청이 신고서 처리 과정에서 목격자의 진술 가능 여부를 조사하도록 하면 국민의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여, 해당 부분이 수정되었다. 또한 ‘여권을 2회 이상 분실한 점에 대한 의견 진술’ 칸에 대해서 이미 분실 경위를 서술하는 칸이 있으므로 불필요한 중복 기재라는 국민법제관의 의견에 따라 해당 부분이 삭제되었다. 이처럼 법령 심사 과정에 국민이 함께함으로써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신고서를 만들 수 있었다.

국민법제관은 국민에게 불편을 끼치는 법령을 정비하는 데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대안학교 교사로 재직하는 한 국민법제관은 국가공무원을 채용할 때 고등학교 졸업과 동등한 학력을 취득한 대안학교 졸업자의 응시기회가 제한받는 문제점을 지적하여, 지금은 대안학교 졸업자도 동등하게 국가공무원 경력경쟁채용에 응시할 수 있게 되었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창업 경험이 있는 한 국민법제관은 중증장애인이 기업을 창업하여 대표자가 될 때, 그 직업생활을 지원하는 근로지원인 서비스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였다. 이는 지원이 필요한 중증장애인 중에 사업자는 없고 모두 근로자일 것이라는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되었다.

국민이 주인인 정부를 지향하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어느덧 3년이 되었다. 직접 참여하여 목소리를 담아낸 법령보다 국민이 더 신뢰할 수 있는 법령은 없을 것이다. 정부의 법제업무를 총괄하는 법제처장으로서 보다 많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법령에 담아내어 국민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민무신불립’의 마음가짐을 되새기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로 인해 고통받으신 모든 분들께 깊은 위로와, 현장에서 헌신한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5월이 모두에게 행복한 가정의 달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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