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 "정당한 쟁의행위 아냐, 복구비용 들어" 재물손괴 유죄
김선수 대법관 "도로 효용 해치지 않아" 무죄 취지 파기환송
"문구내용, 사회적 평가 저하할 정도 아냐"... 모욕죄도 무죄

[법률방송뉴스] 회사의 부당노동행위에 반발해 노조원들이 사내 도로에 페인트로 ‘X새끼’ ‘구속’ 등 회사 대표를 비방하는 글을 썼습니다. 도로를 훼손한 특수재물손괴와 모욕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대법원 판결이 오늘(13일) 나왔습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입니다.

이모씨 등 유성기업 노동자 25명은 지난 2014년 10월 정문 입구 등 회사 내 도로에 페인트와 스프레이 등을 이용해 대표와 부사장을 모욕하고 비방하는 글을 써 도로를 망가뜨린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이씨 등은 재판에서 '도로 통행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원상회복하는 데 큰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지도 않았다'며 재물손괴 등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하지만 “정당한 쟁의행위의 일환으로 보기 어렵다”며 재물손괴를 유죄로 판단해 이씨 등 16명에게 벌금 200만원을, 강모씨 등 9명에겐 벌금 300만원을 각각 선고했습니다.

"피고인들의 행위로 인해 유성기업 공장 내부의 미관이 훼손된 점, 유성기업이 외부업체에 복구를 부탁해 90만원 상당의 수리비가 든 점을 종합해 보면 손괴죄에 해당한다"는 것이 1심 재판부 판단입니다.

2심 역시 "회사 내 도로는 물리적인 통행의 편의를 제공하는 용도로서는 물론이고 쾌적한 근로환경을 유지하고 회사의 좋은 인상을 위해 미적인 효용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며 재물손괴 유죄 1심 판단을 유지했습니다.

대법원(1부 주심 김선수 대법관)은 하지만 오늘 재물손괴에 대해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산업현장에 위치한 도로의 주된 용도와 기능은 사람과 자동차 등이 통행하는 데 있고 미관은 그다지 중요한 작용을 하지 않는다. 페인트 등으로 문구를 기재한 행위는 도로의 효용을 해치는 정도에 이른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시입니다.

대법원은 그러면서 "모욕적인 문구로 인해 불쾌감, 저항감 등을 느껴 이를 본래 사용 목적대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여러 문구 때문에 통행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지도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대법원은 또 모욕죄에 대해서도 “해당 표현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모욕적 언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한 1·2심을 확정했습니다.

오늘 재물손괴 무죄 판결을 내린 대법원 1부 주심 김선수 대법관은 사시 합격 이후 줄곧 노동과 인권 문제에 천착해온 노동인권변호사 출신 대법관입니다.

이번 일이 벌어진 유성기업은 노동계에선 이른바 ‘노조깨기’ 공작 등으로 악명 높은 기업으로 극심한 노사갈등을 겪은 곳입니다. 스프레이 경영진 비방 문구는 그 와중 벌어진 일입니다.

소액이지만 원상복구 비용이 든 점과 문구 내용에 동조하지 않는 직원들에게 불쾌감이나 차량 운전자 주의를 분산시켜 통행 안전에 지장을 줄 가능성 등을 감안해 도로 효용을 침해한 점이 인정된다는 1·2심 판결과, 그 정도로는 도로 효용이 침해됐다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

위에 열거한 점들을 다 감안하고 본다면 시청자들께서는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이고 맞다고 생각하실지 궁금합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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