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규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홍보실장
박한규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홍보실장

인간은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었고 그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 법을 만들었다.

최근 한화손해보험이 보육원에서 생활 중인 초등학교 6학년생에게 고액의 소송을 제기해 청와대 국민청원을 비롯한 네티즌들의 집중포화를 받고 사과문을 발표하고 소송을 취하한 일이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2014년 6월 한화손해보험 가입자였던 A군의 아버지는 오토바이 운행 중 자동차와 추돌해 사망했고, A군은 보험금의 40%인 6천만원을 수령했다. 이후 그 사고는 A군의 아버지와 자동차 운전자의 쌍방 과실로 판명되어 보험사가 자동차 운전자에게 지급한 치료비와 합의금의 일부인 2천690만원을 A군에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는 정당한 권리 행사다.

다만 보험금 수령권자인 A군의 어머니는 결혼이민자로 A군이 6살 되던 해 집을 나가 행방을 알 수 없고, 보험금 수령 사유가 발생했다는 사정을 모르니 현재까지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아 보험금의 60%인 9천만원을 보험사가 유보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충분히 알고 있으니 보험사도 A군에 총 구상금액의 40%만 청구했다. 사고 이후 돌봐줄 사람이 없는 A군은 현재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소송을 제기한 한화손해보험은 A군의 연령(12세)과 미지급 보험금 9천만 원을 보험사가 유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험금 수령자가 외국인이라는 것을(결혼이민자들이 한국식 이름으로 개명하는 경우가 적으니) 알 수 있었을 것이고, 또 보험금 수령 사유가 발생한 지 5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보험금의 청구가 없다는 사실에서 특별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추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5년 반 전 6천만의 보험금을 수령한 자에게 그 금액의 반에 해당하는 3천만원 정도를 청구하는 것이 무리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가 초등학생이고 보험금의 상당액(60%, 9천만원)이 미지급 상태라는 것을 아는 대기업이 상대방의 어려운 사정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거나 알고도 법에 의존에 이 건을 해결하려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인간은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회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 최소한을 법으로 정했다. 하지만 법을 지키는 것으로 삶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세상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겨우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정도 아닐까?

대기업인 한화손해보험이 법에 의존해 구상권을 확보하는 일이 과연 12살 고아가 겪게 될 고통을 무시할 정도로 중요한 일일까? 법은 무정(無情)하다. 그러니 법은 최후의 수단이다. 최고의 수단이 아닌 것은 고사하고 최우선 수단도 아니다. 법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 사람, 기업이 우선이다. 삶을 두려워하는 인간 중에는 '기업시민'도 포함된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들추어보면 이런 기계적 대응이 너나 할 것 없이 어디 한두 건일까.

거창한 사회공헌활동에 돈과 사람을 쓸 일이 아니라 기업 경영에서부터 사람과 사회를 우선할 일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지구가 들끓고 있는 중에도 시민의식을 잘 발휘하여 힘들게 버티고 있는 와중에, 이 일을 계기로 기업들도 한 단계 높은 ‘기업시민의식’을 생각해 보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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