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당사와 미문화원, 일본영사관... 대량구속과 선고유예, '점거시위' 격세지감
민정당사와 미문화원, 일본영사관... 대량구속과 선고유예, '점거시위' 격세지감
  • 유재광 기자
  • 승인 2020.04.02 1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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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사관 진입 대학생들 선고유예... 법원 "국민들도 공감"
재판부 "점거시위, 뜻 왜곡될 수도... 절차의 중요성 배워라"
80년대 '민주화 요구' 점거시위 참가자들 대량 구속의 기억

[법률방송뉴스] 지난해 일본의 경제보복에 반발해 아베 일본 총리의 사과를 요구하며 부산 일본영사관에 들어가 기습 점거시위를 벌인 대학생 7명에 대해 1심 법원이 모두 선고유예를 선고했습니다.

‘앵커 브리핑’, 점거시위 얘기해 보겠습니다.

권모씨 등 대학생 7명은 지난해 7월 22일 오후 2시 35분쯤 일본의 경제보복에 항의해 부산 동구 초량동에 위치한 일본영사관에 들어가 기습 점거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들 대학생들은 ‘일본의 재침략·경제도발 규탄한다’, ‘아베는 사죄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펼쳐들고 약 10분간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시위는 10분 만에 종료됐지만 권씨 등은 공동주거침입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이들은 재판에서 “대한민국 청년으로서 해야 할 정의로운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부산지법 형사4단독 부동식 부장판사는 오늘(2일) 권씨 등 대학생 7명에 대해 벌금 300만원의 선고유예를 내렸습니다.

선고유예는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유예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사건 자체를 없던 일로 해주는 판결입니다.

부동식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의 행동에 국민들도 공감했다. 사회 진출을 준비 중인 대학생인 점 등을 판결에 감안했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습니다. 

부동식 부장판사는 그러면서 "하지만 절차를 위반했고 이런 방식을 취하는 것은 후진적인 방식이어서 오히려 뜻이 왜곡해 전달될 수 있다“며 ”피고인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절차의 중요성을 배우게 되길 바란다“는 당부의 말을 남겼습니다.

부동식 부장판사는 같은 날 미래통합당 김무성 의원의 부산 중·영도구 지역구 사무실에 들어가 항의 점거시위를 벌인 대학생 9명 가운데 7명에 대해서 선고유예, 나머지 2명에 대해선 벌금 300만원을 각각 선고했습니다. 

김무성 의원은 문재인 정권의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 선언과 일본의 경제보복 관련 지난해 7월 “철지난 민족감정을 악용한 편 가르기”, “반일 감성팔이” 등의 발언을 해 비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에 이들 대학생들은 김무성 의원의 사무실에 들어가 “국익보다 친일 우선하는 김무성은 사과하라”는 등의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가 공동주거침입과 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부동식 부장판사는 대학생 9명 가운데 2명에 대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데 대해 “피고인들이 외친 내용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방식을 문제 삼는 것”이라며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부동식 부장판사 표현대로 어떻게 보면 “후진적인 방식”인 대학생들의 이런 점거시위의 효시이자 대명사 격은 지난 1984년 11월 14일 당시 전두환 정권의 집권여당이었던 ‘민정당사 점거 사건’ 아닌가 합니다.

민정당사 점거사건 당시 수사결과 경찰 발표문은 이렇습니다.

“11월 14일 하오 4시 30분 경당사 근린에 모여 있던 260여명의 과격 학생들이 '학우여 가자'라는 성대 이기호의 고함 신호에 맞추어 각목과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돌과 깨진 유리병을 던지면서 일제히 당사 정문으로 난입했다”,

"이들은 벽을 부수고 의자를 뒤엎는 등 난동을 부리면서 9층 회의실을 점거, 엘리베이터를 작동치 못하게 하고 회의실 내에 있는 의자 집기 등으로 출입문에 바리케이드를 설치, 출입구를 봉쇄한 후 구호와 노래를 부르면서 난동을 계속했다“,

"이들은 벽면에 '노동악법 개정하라', '전면해금 실시하라' 등의 플래카드를 내걸고 약 12시간 동안 난동농성 중 경찰의 자진해산 경고를 완강히 거부한 채 '투신자살하겠다'면서 사태를 고의적으로 극한상황으로까지 몰고 갔다"는 게 경찰 발표문 내용입니다.

시위라고 해봐야 대학교 안에서 유인물 몇 장 뿌리고 구호 몇 번 외치면 학내에 상주해 있던 경찰에 끌려나가는 정도가 고작이었던 당시, 민정당사 점거사건은 집권 여당은 물론 야당과 운동권에도 상당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후 이듬해인 1985년 5월엔 광주 민주화항쟁 관련 ‘금기어’였던 “양키 고 홈”을 공공연하게 외친 ‘미 문화원 점거사건’이, 같은 해 11월엔 전학련 소속 대학생 191명이 가락동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을 점거하고 개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점거시위가 이어졌습니다.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 점거시위 관련 당시 점거농성자의 절반에 가까운 82명이 구속됐습니다.  

시대도 다르고 규모도 다르고 취지도 다르지만 지난해 패스트트랙 처리 국면에서 대학생 20여명이 국회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실 점거시위를 벌였는데 단 1명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이마저도 법원에서 기각된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 경제보복에 항의해 일본영사관 점거시위를 벌인 대학생들에 대한 법원의 벌금형 선고유예 판결, “절차의 중요성을 배우게 되길 바란다”는 재판부 판시가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따뜻한 판결들이 더 많이 나오길 바라며 오늘 ‘앵커 브리핑’ 마치겠습니다.

 

유재광 기자 jaegoang-yu@law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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