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법령 4천400건 넘어... '행정기본법'으로 행정 원칙 체계화
"3월 6일 입법예고, 4월 25일까지 50일간 국민 의견 듣습니다"

김형연 법제처장
김형연 법제처장

카페나 미용실, 당구장과 같은 업종은 시설과 설비를 갖추고 시군구청에 필요한 서류와 함께 영업신고서를 내면 바로 영업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관련 법령에는 ‘신고하여야 한다’는 의무와 절차만 규정되어 있고 ‘영업할 수 있다’는 효과와 권리에 대해서는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국민 입장에서는 신고 후에 영업을 바로 시작해도 되는지 혼란이 생길 수 있다. 문제는 수많은 법령 어디에도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행정은 그간 양적·질적 성장을 거듭하면서 각 영역에서 개별적으로 법령을 만들어왔다. 원칙과 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후죽순 생겨난 행정법령은 현재 전체법령 중 90% 이상, 개수로는 4천400여건이 넘는 상황이 되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제도가 개별 법령에 따로 규정되어 있다 보니 규제 개선을 하려면 수백 개의 법률을 일일이 정비해야 하는 비효율도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행정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간 판례로 정립되어 왔던 행정의 원칙을 명문화하여 행정집행에 준거가 될 수 있도록 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행정법령 가운데 유사·공통 제도를 솎아내어 체계화하는 작업도 하였다. 한편, 국민권익 보호의 측면에서 입법 공백이 있는 부분은 보완함으로써 완성형 법치행정의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간 일부 법령에 도입되어 국민권리 향상에 기여하고 있는 제도를 전체 행정에 확산하는 것도 시도한다. 처분의 당사자가 이의를 신청하면 처분청은 정해진 기한 내 결과를 통지해야 하는 ‘이의신청 제도’의 일반적 근거를 도입하여, 국민이 보다 간편한 불복 절차를 통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일정기간이 경과하면 행정청이 영업정지와 같은 제재처분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제척기간’ 제도도 건설산업기본법 등 일부 법령에서 운영되던 것을 행정 일반으로 확대하여 국민의 법적 지위에 관한 안정성을 보호하고자 한다. 그 밖에도 인허가 의제의 절차와 방법, 과징금·이행강제금의 부과·징수절차 등 행정에 관한 일반적인 기준을 규정하여 눈에 보이는 행정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정부와 학계, 법조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행정기본법’ 제정의 필요성과 법안의 내용에 대해 연구·검토해왔다. 지난해 9월부터는 정부, 학계, 법조계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로 구성된 ‘행정법제 혁신 자문위원회’와 함께 우리 행정 실정에 맞는 기본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3월 6일 입법예고안을 공고했고, 4월 25일까지 50일간 국민의 의견을 듣는다.

정부가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와 개선사항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예정이다.

요리마다 황금 레시피가 있다. 이 레시피에 따르면 복잡한 요리도 쉽게 따라할 수 있고 맛도 보장받을 수 있다. 행정의 황금 레시피는 바로 행정기본법이다. 행정이라는 요리를 고객인 국민에게 대접하기 위해, 요리사인 공무원이 쉽게 따라할 수 있는 특급 레시피로 행정기본법을 만들 예정이다. 국민 또한 이 레시피에 따라 행정을 적극 이용할 수 있고, 누가 따라 하더라도 국민의 입맛에 딱 맞는 깊고 풍부한 행정의 맛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레시피를 공개한다. 국민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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