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사태,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판사의 '망탈리테'와 법원의 판사 길들이기

[책으로 읽는 法과 세상] 양선응 변호사(법률사무소 인선)가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이슈를 책을 통해 통찰하고, 그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봅니다. 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양 변호사는 "글을 통해 법의 대중화, 법의 상식화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편집자 주

 

양선응 법률사무소 인선 변호사

두 얼굴의 법원 / 권석천 지음

변론기일이 끝나고 법정 문을 열고 나올 때, 나는 항상 몸을 돌려 판사가 앉아 있는 법대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곤 했다. 누군가의 강요나 조언은 당연히 없었지만, 법정에 처음 출석했을 때부터 그렇게 했다. 공손하게 인사를 하지 않고 나오면 판사가 무례하다고 생각해서 재판 결과에 악영향을 줄까 봐 그랬을까. 물론, 아니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하여 법관의 독립을 선언하고 있다. 나는 헌법과 법률이라는 추상적 명제가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라는 인격을 통해 구체화된다고 생각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누구도 억울하지 않은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했던 것이다.

언론보도를 통해 사법농단 사태를 접하면서 나는 계속 인사를 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재판을 해야 하는 법원에서 재판을 정치적 거래의 대상으로 이용하거나 일신 영달의 수단으로 삼는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적지 않은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대법원장을 비롯한 판사들이 저지른 사법농단 행위에 대해 형사재판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역시나 1심에서 줄줄이 무죄가 선고되면서 과연 법원이라는 같은 조직에 몸담고 있는 판사가 판사를 제대로 심판할 수 있을까 하는 일반적인 의구심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만이 확인되고 있다. 

특히 재판개입 행위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최근 담당 재판부는 그 행위가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로서 재판에 개입한 위헌적 행위’인 것은 맞지만, 헌법 제103조에서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보장하고 있어서 누구도 법관의 재판에 개입할 직무권한은 없으므로 직권을 남용한 것은 아니라며(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으므로 직권을 남용할 수도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선고하였다. ‘없는 직권’을 ‘남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헌법 제103조가 선언하고 있는 법관의 재판상 독립이 오히려 재판 개입 행위에 대한 무죄의 근거로 사용된 것이다. 설득력 낮은 논리이고, 헌법의 오용이다.

재판 결과에 절망만을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이 시점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사법농단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하는 것이다. 그 사회적 논의의 단초를 법률전문 기자인 권석천의 '두 얼굴의 법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법농단, 그 진실을 추적하다’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저자는 사법농단 사태의 발생 원인, 경위, 배경을 집요하고 세세하게 그려 보인다.

저자가 보기에 사법농단 사태의 원인은 판사들의 망탈리테(mentalité)와 판사들을 길들이는 법원의 시스템에 있다.

판사들은 기본적으로 인정 욕구가 강하다. 학창시절부터 법원에 들어오기까지 판사의 삶 자체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점철되어 있다. 능력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선발에 대한 갈망이 판사들의 근원적인 심성을 형성하고 있다. 법원의 수뇌부는 이런 욕망과 갈망을 체계적으로 이용해서 판사들을 길들인다. 판사들은 법원 내의 평판과 근무평정을 생명처럼 여기게 되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존재의 소멸과 동일시하게 되며, 작은 인사 불이익도 치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제 판사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실현하기 위한 헌법 기관이 아니라 법원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일개 조직원으로 전락한다. 그 필연적 귀결이 사법농단이다.

법관은 법원이라는 조직의 일개 조직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법관은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법관들이 조직원 신분이라는 예속을 깨고, 이런저런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아니한 채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재판을 할 때에만, 사법농단 사태로 만신창이가 된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제정한 헌법과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제정한 법률에 따라 재판을 하는 것만이 사법부가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존립의 근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사법농단 사태에 대해 법의 엄정한 심판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그리고 사법부가 다시금 신뢰를 회복하여 누구나 법정 문을 나설 때면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으며 법대를 향해 진심을 담아 인사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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