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에 한국민 200여명 '강제 격리'... "베트남과 정부 협의 있었나, 무능함에 참담"

 

29일 인천국제공항 도착층에 나온 시민들이 베트남 정부가 이날 오전 한국발 여객기의 하노이 공항 착륙을 불허해 아시아나 여객기가 긴급 회항했다는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인천국제공항 도착층에 나온 시민들이 베트남 정부가 이날 오전 한국발 여객기의 하노이 공항 착륙을 불허해 아시아나 여객기가 긴급 회항했다는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법률방송뉴스] 한국 국민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72개 국에서 입국금지와 격리 등을 당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항공사들이 베트남에서 발이 묶인 승객들을 빈 항공기를 보내 데려오기로 했다.

베트남 정부가 29일 오전 갑자기 한국발 여객기의 자국 공항 착륙을 금지하면서 이미 인천공항을 출발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긴급회항하는 일이 벌어졌는데도,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자 민간 항공업체들이 국민들 수송에 나선 것이다.

외교부는 지난 28일 오후 강경화 장관이 베트남의 한국민 무비자 입국 불허 조치에 대해 팜 빙 밍 베트남 부총리 겸 외교장관과 전화 통화를 하고 “신남방 정책의 핵심 파트너인 베트남이 한국인에게 과도한 입국제한 조처를 하고 있어 한국 내 실망감이 매우 크다”고 항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사전 통보도 없는 여객기 착륙 금지를 당했다.

이날 항공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오후 7시30분 인천발 하노이행 OZ733편을 승객들 없이 승무원들만 타고 가는 ‘페리 운항’을 한 뒤, 하노이발 인천행 OZ734편에 승객 151명을 태워 돌아오기로 하고 하노이 공항당국의 승인을 받았다.

오후 6시45분 인천발 다낭행 OZ755편, 오후 6시55분 인천발 푸꾸옥행 OZ772편, 오후 7시25분 인천발 호찌민행 OZ735편도 모두 페리 비행을 한 뒤 베트남 현지에서 승객들을 태우고 돌아올 예정이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현지에서 발이 묶인 승객들을 위해 인천 출발 베트남 편을 페리로 운항하기로 결정했다"며 "승객들을 목적지로 안전하게 모시기 위해 전사적으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대한항공도 이날 인천을 출발해 하노이, 사이공, 다낭, 푸꾸옥, 냐짱(나트랑)에 각각 도착할 예정이던 항공편 6편을 승객 없이 페리 운항하고 베트남 현지를 출발해 인천으로 오는 항공편은 정상 운항하기로 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인천발 여객기에 탑승한 승무원 역시 현지에 체류하지 않고 바로 퀵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는 베트남 정부가 이날 오전 갑자기 한국-하노이 노선에 대해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 대신 하노이에서 차량으로 3시간가량 떨어진 꽝닌성 번돈공항을 이용하도록 한 데 따른 것이다.

베트남 당국은 이같은 조치를 현지시간 오전 8시 15분(한국시간 오전 10시15분)부터 시행한다는 내용을 오전 8시30분쯤이 되어서야 각 항공사에 전화로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베트남 당국의 조치에 앞서 이날 오전 10시10분 승객 40명을 태우고 인천에서 출발한 하노이행 아시아나항공 OZ729편이 이륙 후 40분이 지나 인천공항으로 회항했다.

베트남 당국은 29일 0시를 기해 한국인에 대한 무비자 입국을 불허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 2004년 7월 한국인에게 15일간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기 시작한 이후 1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아시아나항공은 3월 1일 오전 출발하는 하노이행 OZ729편은 결항 조치했고, 예정돼 있던 나머지 4편의 베트남행 항공편에 대해서는 현재 결항 여부 등을 논의 중이다. 대한항공도 이후 베트남 항공편에 대해 내부적으로 논의한 뒤 추가 결항 여부 등을 정할 예정이다.

두 항공사 모두 이미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베트남 노선을 상당부분 감축 운영하기는 했지만, 이번 조치로 당분간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항공편 운항을 사실상 중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 항공사들은 물론 저비용항공사(LCC)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미 베트남 노선 운항을 대부분 중단한 터라 오히려 베트남의 갑작스러운 조치에 피해를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부는 베트남의 이런 조치에 대해 대처 방안이나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박용찬 미래통합당 대변인은 이날 베트남 정부가 한국발 여객기의 하노이 공항 착륙을 불허한 것에 대해 논평을 내고 "문재인 정부가 초기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했더라면 이런 식으로 면박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베트남행 국적기의 회항 소식에 정부의 무능함에 참담함을 느낀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야당 대표 회동에서 중국인 입국금지를 ‘우리가 입국금지 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난했다.

김정현 민생당 대변인은 “외교부가 베트남이 착륙 불허 결정을 내린 경위나 제대로 파악했는지 의문이다. 우리 정부와 협의가 없었다면 중대한 문제”라며 "이런 사태가 빈발하니 중국 눈치를 본다느니, 우리 정부의 외교력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베트남에 한국민 200명 이상 이틀째 '강제 격리'

베트남 하노이 공항을 통해 지난 28일 입국한 한국민 가운데 200명 이상은 이틀째 공항과 병원 등지에 강제로 격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베트남 당국이 입국을 금지한 대구·경북 거주자나 최근 14일 내에 이곳을 방문한 사람이 아니어서, 발열 등 증상이 없으면 원칙적으로 자가격리를 하게 돼 있지만 사실상 강제로 발이 묶인 것이다.

29일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전날 하노이 공항으로 입국한 한국민 130∼140명이 하노이 외곽에 있는 군부대 의료시설과 병원 등지에 격리돼 있고, 하노이 공항에도 71명이 격리된 상태다.

호찌민 한인회는 전날 밤 호찌민 공항으로 입국한 한국민 약 200명 가운데 19명은 격리를 우려해 곧바로 귀국했고, 나머지는 지역 보건소에서 검역을 받은 뒤 자가격리 처분을 받아 행선지로 떠났다고 밝혔다.

인천에서 지난 28일 오후 2시 25분(현지시간) 하노이 공항에 도착한 A(21·여)씨는 29일 국내 언론에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압수 당해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면서 "지금 한국인 60∼70명이 공항 내 별도 공간에 격리돼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자가격리로 알고 입국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아직 검사도 받지 못했다. 무조건 방치된 상태라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지난 28일 오전 11시쯤 하노이에 도착해 공항에 격리된 B(42)씨는 "어린아이들은 힘든 상황을 견디지 못해 토하기도 했다"며 "군부대로 이동한다면서 군용트럭에 태웠다가 군부대에 시설이 부족하다며 다시 하차시켰다. 여성과 어린이들이 몹시 불안해했다"고 전했다.

◆ 한국인 입국제한 국가 72곳으로… 34곳은 아예 ‘입국 금지’

베트남처럼 한국 내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을 이유로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국가는 급속히 늘고 있다.

29일 오후 2시 기준 한국발 여행객의 입국금지 등 조치를 취한 나라는 모두 72곳으로 급증했다. 이는  전날 65곳보다 7곳이 증가한 것이다. 유엔 회원국 193개국 기준 3분의 1이 넘는 국가들이 한국발 입국자를 제한하는 것이다.

외교부는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노력 등을 설명하며 입국금지 등의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런 국가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국발 입국자에 대한 전면적 혹은 부분적 입국금지를 하는 국가는 34곳이다. 전날 31곳보다 3곳이 늘었다.

입국은 허용하더라도 검역이나 격리조치를 강화해 사실상 자국에 간 한국민들의 발을 묶어놓는 국가도 38곳으로 전날 34곳보다 4곳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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