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의 산하Law] 화제의 영화, 드라마, 대중음악 등과 관련해 관객과 시청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법적 쟁점을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들이 칼럼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편집자 주

 

김장천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김장천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하여 전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는 가운데,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의 확산에 따른 혼란상에 관하여 과학적 고증을 바탕으로 현실성 있게 그려낸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2011년 영화 '컨테이젼(Contagion)'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개봉 당시 기네스 팰트로, 맷 데이먼, 주드 로, 마리옹 꼬띠아르, 케이트 윈슬렛 등 호화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 '컨테이젼'은, 제작진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자문을 바탕으로 한 역학적 근거와 함께 실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실감나게 그려냈다고 하여, 일반 관객을 비롯해 영화계와 과학계로부터 호평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는 감염병으로 인한 공포와 그에 따른 각종 사회적 혼란을 묘사하였는데, 사건 발생 2일차부터 시작되는 영화는 백신이 순차적으로 공급되는 사건 발생 133일을 기점으로 사태가 소강되면서 마무리되지만, 등장인물들은 마지막까지 바이러스의 원인을 밝혀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마지막 1분 30초간 사건 발생 1일차로 돌아가 아무런 대사 없이 바이러스의 발생 원인을 설명하는데, 그 발생 원인은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생 원인으로 추정되는 경로와 유사합니다.

감염병의 발생 경로부터, 그 확산의 경과와 그로 인한 공포, 손을 잘 씻어야 한다는 교훈까지, 이 영화의 내용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우리의 상황과 오버랩되어 더욱 생생히 다가옵니다.

영화에서는 현실보다 훨씬 빠른 바이러스 확산의 여파로 절도는 물론 강도살인, 인질강도와 같은 각종 중범죄가 발생하는데, 그 중 주드 로가 연기한 ‘앨런 크럼위드’의 행위는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허위사실 유포 행위를 떠올리게 합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앨런은 개나리꽃이 감염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립니다. 앨런의 유언비어는 공포에 휩싸인 시민들에게 효과적이었는지, 개나리액을 판매하는 약국에는 줄 선 사람들의 끝이 보이지 않고, 수량이 부족하다는 안내가 있자 이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앞다투어 앞으로 나가면서 폭력을 휘두르는 등 약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됩니다. 앨런은 개나리의 치료 효과를 알리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이는 관계자를 규탄하는 시위로 이어지는 등 혼란이 가중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유행과 함께, 특정 지역의 대형마트 쓰레기통에서 중국 국기가 새겨진 피 묻은 마스크가 발견되었다거나, 우한에서 박쥐탕을 먹은 확진자가 특정 아파트에 거주한다거나 하는 글이 인터넷에 유포되고 이로 인한 논란이 발생하여, 방통위에서 이러한 글들을 심의를 거쳐 삭제하는 조치를 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허위사실 유포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가령 확진자가 특정 점포나 병원에 방문하였다는 허위의 내용이라면 업무방해죄가, 확진자가 아닌 특정인이 다중 이용시설에 지속적으로 출입하였다면서 개인정보를 퍼뜨리는 내용이라면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허위사실 유포의 구체적인 모습에 따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나 사기죄 등의 성립을 생각해볼 수 있는 사안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법(또는 정보통신망법)의 규정이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각종 문제를 모두 규율하지는 못할 것이고, 감염병의 확산 사태와 같이 전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는 상황에서 이미 유포된 허위사실은 급속도로 확산되는 반면 이를 교정하기는 상당히 어려우므로, 허위사실 유포행위 자체에 대한 일정한 제재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단순 허위사실 유포에 대하여 과거에는 처벌이 가능하였으나, 현재는 방통위가 이를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내용’으로 판단하여 시정을 요구하고 정보 삭제 또는 접속 차단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통위의 제재 조치가 통신환경의 발달로 인한 허위사실의 전파 속도를 따라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단순 허위사실 유포를 처벌하지 못하게 된 것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행위를 처벌하는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범자인 국민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허위의 통신’ 가운데 어떤 목적의 통신이 금지되는 것인지 고지하여 주지 못하고 있으므로 표현의 자유에서 요구하는 명확성의 요청 및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 결정의 주된 근거였습니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감염병과 관련한 허위사실 유포의 경우에는 형사처벌과 같은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됩니다. 허위사실 유포행위 일반에 대한 처벌 규정의 위헌적 요소를 고려하더라도, 개별 특별법에서 감염병에 관련한 명백한 허위사실을 처벌하는 근거를 두는 방안은 논의해 볼 가치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즉 이미 다수의 처벌 조항을 두고 있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불명확하고 추상적인 공익 개념은 배제하고 감염병에 관하여 객관적으로 명백한 허위의 사실을 가공하여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과 함께 이에 대한 벌칙 규정을 마련한다면,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보호와 형벌법규의 명확성 원칙을 재확인하고 있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에 반하지 않으면서도 감염병 확산과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영화 '컨테이젼'에서 앨런의 행위는 감염병 확산 상황에서의 허위사실 유포가 야기할 수 있는 혼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한된 정보와 생명의 위협으로 인하여 일반 국민에게 명확한 사리분별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에서는, 허위사실의 유포가 영화에서의 혼란을 넘어선 다양한 형태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 보호와 감염병에 따른 사회적 혼란의 방지라는 양 법익의 충돌 상황에서, 감염병 관련 허위사실 유포행위를 어떻게 규율하여야 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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