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어떤 종류의 재판개입도 죄가 안 된다는 면죄부 준 '기념비적' 판결"

▲신새아 앵커= '재판개입'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위헌적이지만 직권남용은 아니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LAW 인사이드' 선고 현장을 취재한 장한지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우선 임성근 부장판사가 받는 혐의부터 볼까요.

▲장한지 기자= 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근무하던 2015년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재판에 개입한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임 부장판사가 법원행정처 요구에 따라서 담당 재판장인 이동근 부장판사에게 판결 선고 이전에 "재판 과정에서 '세월호 7시간 행적'과 관련한 기사가 허위라는 것을 정리를 해주고 가는 게 좋겠다"는 등 직권을 남용해 개별 재판에 개입했다는 것이 검찰 공소내용입니다.

공소장에 따르면 임 부장판사는 이 부장판사로 하여금 판결을 선고할 때는 "가토 전 지국장에게 법리적인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되 적절한 행동은 아니다"라고 질책하도록 하는 등 구체적으로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민변 소속 변호사들의 불법 집회 관련 재판장인 최창용 부장판사에게 양형 이유 중 민감한 표현 2~3곳을 지적하며 "톤 다운하라"고 수정하게 한 혐의 등도 받고 있습니다.

▲앵커= 재판부는 검찰 공소사실에 대해 어떻게 판단했나요.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송인권 부장판사는 일단 검찰이 파악한 사실관계 자체는 대부분 사실로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산케이신문 사건에 대해서는 "이런 행위는 구체적인 특정 사건의 재판 내용이나 결과를 유도하고 절차 진행에 관여한 것으로 재판에 개입하고, 헌법에 규정된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민변 사건에 대해서도 "양형 이유를 수정하는 건 해당 재판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고 결과를 변경하는 것으로 재판 개입에 해당된다. 위헌적이고 형사소송법을 위반한 위법 행위"라고 질타했습니다.

재판부는 30분가량 판결문을 낭독했는데 "재판개입 맞다" "위헌적이다"라고 하는 등의 판결문 낭독이 이어지면서 '유죄'가 나려나 싶었는데, 후반에 반전이 일어나면서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재판개입을 한 것은 맞고, 위헌적이지만, 직권남용은 아니다"는 게 재판부 결론입니다.

▲앵커= "재판개입은 맞지만 직권남용은 아니다"는 판결은 어떻게 나온 건가요.

▲기자= 네, 판결문을 읽어내려가던 판사는 본인도 속이 타는지 물을 두 번 정도 마셨는데요.

"피고인의 행위가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한다고 해석될 여지가 없고, 오히려 지위나 개인적 친분관계를 이용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반전이 시작됐습니다.

"피고인의 각 재판관여 행위는 서울중앙지법의 형사수석부장판사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로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는 있지만, 직권남용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가 밝힌 무죄 법리입니다.

'직권 없이 남용 없다'는 직권남용 법리를 설시한 것인데요.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고인의 행위가 위헌적이라는 이유로 직권남용의 형사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불리하게 죄의 구성 요건을 확장 해석하는 것으로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앵커= '지위를 이용해 법관 독립을 침해했지만 직권남용은 아니다' 잘 이해가 안 가는데요. 재판부가 뭐라고 더 설명한 게 있나요.

▲기자= 네, 직권남용은 직권을 남용해 상대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을 때 성립하는데요.

오늘 재판부는 임 부장판사가 재판에 관여한 그 재판부의 판사들에 대해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직권남용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얘기도 했습니다.

임 부장판사의 지시대로  판결문 내용이 수정되긴 했지만, 이것은 각 재판부가 법리에 따라 합의 과정을 거쳐 판단한 결론일 뿐, 의무 없는 일을 한 게 아니라는 것이 재판부 판단입니다.

"합의부의 사건은 합의에 따라 심판하므로 재판장의 의사와 독립된 것이다. 각 사건 재판장은 피고인의 요청을 무조건 따르지 않고 독립적으로 합의해 결정했다"는 게 재판부 판시입니다.

한마디로 지위를 이용했지만 직권을 남용한 건 아니고, 결과적으로 임 부장판사가 해당 재판장들의 의사에 반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결입니다.

▲앵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이거 뭐 어떻게 봐야 하나요.

▲기자= 검찰 관계자는 "직권남용죄의 보호법익은 국가기능의 공정성"이라며 "이제 어떠한 종류의 재판개입도 죄가 될 수 없다는 면죄부를 준 기념비적 판결"이라고 오늘 판결을 비꼬았습니다.

"법원 고위관계자가 후배 법관에 '이번 재판은 이렇게 하는 게 어떠냐'고 하고, 후배 재판장이 그 지시나 제안을 수용해 판결을 내려도 '법과 양심에 따라 자율적으로 판결했다'고 하면 이제 어떤 재판개입도 처벌할 수 없다. 이게 말이나 되는 판결이냐"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성토입니다.

"법리를 떠나서 이런 결론을 납득하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나, 사법부 차원에서 우려스러운 판결이다"는 비판들이 많습니다.

반면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과 어제 있었던 신광렬, 조의연, 성창호 부장판사 무죄 선고와 오늘 판결을 연결지어서 "검찰이 애초 직권남용 성립 범위를 지나치게 넓혀 수사하고 기소를 했다. 논리를 비약해 무리하게 기소한 결과가 잇따른 무죄 판결로 이어지고 있다"는 반박도 있습니다.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 제대로 보여줬다", "검찰 기소가 무리했다"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앵커= 어떤 의미에서든 기념비적 판결은 기념비적 판결이 될 것 같은데 임성근 부장판사 반응은 나온 게 있나요. 

▲기자= 네, 임 부장판사는 바로 앞 재판 피고인들이 서서 선고를 듣는 바람에 임 부장판사도 재판장 맞은편에서 '차렷' 자세로 30분 동안 서서 재판부의 판결문 낭독을 들었는데요.

방청석 쪽으로 등을 돌린 상태여서 얼굴은 볼 수 없었는데, 선고가 끝나고 몸을 돌릴 때 보니까 얼굴이 붉어져 있었습니다.

임 부장판사는 사법연수원 17기로, 27기인 송인권 부장판사의 10기 선배인데 무죄를 선고받긴 했지만 10기 후배 법관에게 "법관 독립을 침해했다. 징계 사유다"는 등의 질타를 듣고 얼굴이 붉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선고 뒤 법정을 나온 임 부장판사에게 "한 마디만 해달라", "위헌적 행위라는데 할 말이 없나"는 등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입을 꾹 다문 채 법관 통로를 통해 본인의 서울고법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앵커= 네, 법관 독립을 침해한 위헌적 행위지만 직권남용은 아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해선 또 어떤 법리로 어떤 판결을 내릴지 궁금하네요. 오늘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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