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들이 흔쾌히 응해... 카풀·대리운전 강요한 적 없어"
사적인 목적으로 후임 군무원 이용... 감봉 3개월 징계처분

[법률방송뉴스] 부하직원에게 수시로 출퇴근 카풀이나 술 마신 뒤 대리운전을 요구한 군무원이 있습니다. 징계 사유가 될까요. 된다면 어느 정도의 징계가 적당할까요. ‘판결로 보는 세상’입니다.

육군 모 부대 소속 7급 군무원 A씨는 2016년 11월부터 2018년 2월까지 9급 군무원 B씨에게 4~6차례의 카풀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2년 동안 대여섯 차례 요구면 크게 과해 보이지는 않는데 문제는 B씨한테만 요구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A씨는 또 다른 후임 군무원 C씨에게 퇴근길 카풀을 요구하고, 이튿날 출근길에는 또 다른 군무원 D씨에게 오전 6시도 전에 4~5번씩 카풀을 해달라고 전화를 했지만 D씨가 받지 않자 C씨에게 다시 전화해 카풀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A씨는 회식 후엔 후임 군무원들에게 전화해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지시한 뒤 대리운전도 시켰는데, A씨의 이같은 ‘카풀 갑질’은 부대 특별진단 설문 중 후임 군무원들의 진술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후임 군무원들은 설문에서 “A씨가 카풀 하는 동안 차에서 담배를 피우고 다른 사람들 흉을 봐 불쾌했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당사자로서는 언제 A씨 전화가 걸려올지 몰라 스트레스가 심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합니다.

국방부 훈령은 군무원이 사적인 목적으로 후임 군무원에 지시를 하는 경우 직무상 의무 위반으로 징계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에 A씨 소속 부대는 인사위원회를 열어 지난 3월 감봉 3개의 징계처분을 내렸고, A씨는 징계에 불복해 소송을 냈습니다.

재판에서 A씨는 “카풀은 당사자들이 흔쾌히 응한 것으로 회식 후 대리운전도 술을 마신 나를 대신해 선뜻 운전해 주겠다고 한 것이지 카풀과 대리운전을 강요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했다”는 후임 군무원들의 진술과는 확연한 온도 차가 느껴지는 주장입니다.

A씨는 또 “카풀 지시가 비위 행위에 해당하더라도 감봉 3개월은 지나친 징계처분으로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1심(춘천지법 행정1부 성지호 부장판사)은 그러나 A씨가 부대장을 상대로 낸 '감봉처분 취소' 소송에서 A씨의 주장을 기각하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오늘(21일) 밝혔습니다.

"원고보다 직급이 낮은 군무원들이 혹시 모를 인사상 불이익을 감수하고 진술서를 작성한 것으로 매우 구체적이고 신빙성도 있다. 비위 유형이 직권 남용은 아니더라도 성실의무 위반 사유에는 해당한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입니다.

재판부는 이에 "부하직원들에게 상당기간 여러 차례 업무와 관계없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카풀·대리운전을 요구했다. 불이익 걱정에 원고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원고의 비위가 가볍지 않고 징계 처분이 무거워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언제 전화가 걸려올지 몰라서 스트레스가 심했다”는 후임 군무원과 “흔쾌히 선뜻 카풀·대리운전을 해줬다”는 선임 군무원. 발 딛고 있는 곳이 다르면 같은 일에도 이처럼 입장과 생각이 다른 게 세상엔 비일비재할 거라 생각합니다.

상대가 딛고 있는 곳에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봐라. 역지사지(易地思之)는 그래서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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