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공동소유 플랫폼'의 민법상 권리관계, 그리고 블록체인
'미술품 공동소유 플랫폼'의 민법상 권리관계, 그리고 블록체인
  • 현소진 한국은행 변호사
  • 승인 2020.01.29 1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에도 미술품 공동구매 시스템 등장... 구매자들의 권리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현소진 한국은행 변호사
현소진 한국은행 변호사

예술품 시장 인덱스 중 하나인 '아트프라이스 100'(Artprice 100)은 지난 2000년 이후 360% 상승하였고, 국내 미술시장을 살펴봐도 저금리 기조에서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의 규모는 증대하고 있으며 미술 전시회 수요 역시 늘어나는 추세다. 경제위기로 투자심리가 위축돼도 미술품의 가치는 금융시장의 충격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안전자산으로 분류돼 투자자들의 꾸준한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작품 하나가 기본 수천만원을 호가하기에 미술품 투자의 진입장벽은 높다. 이론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하나 사두면 수익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미술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알 것이다. 하지만 그 유명한 작품을 일반인의 월급 수준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인가? 부동산 재테크 방법을 물어보면 "강남 아파트 하나 사두면..."이라는 말을 들을 때의 답답함이라고나 할까.

작품을 많이 보다 보니 사고 싶은 것인지, 사고 싶으니 많이 보게 되는 것인지의 선후관계는 뒤로 하고 전시를 보거나 아트페어에 참석하고 나면 꼭 작은 그림이나 도록 하나가 나의 손에 들려있다. "돈만 조금 더 많았다면 더 큰 걸로 샀을 텐데..."

그 순간 비슷한 크기의 작품들을 손에 들고 미술관을 나서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럴 거면 돈을 다 같이 모아서 진짜 작품을 살 수 있으려나?"

이러한 마음을 읽기라도 하는지 2017년부터 미국과 유럽에서는 미술품 공동구매 시스템이 구축됐다. 고가의 미술품을 한 사람이 아닌 다수가 공동으로 구매하여 분할소유권의 형태로 소유하고, 수익이 발생하면 되팔 수 있도록 '미술품 공동소유 플랫폼'이 등장한 것이다.

2017년 설립된 미국의 마스터 웍스를 시작으로 모네와 앤디 워홀의 작품이 지분으로 판매되었고, 스위스의 소셜커머스 업체 코카는 200만 달러(약 22억원)짜리 피카소의 유화 ‘소총병의 흉상’(1968년 작)을 2만5천명의 고객이 50달러씩을 내고 공동구매해 화제를 모았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8년 말 미술품 공동소유 플랫폼 아트투게더가 피카소 작품의 지분을 판매하였고, 비슷한 시기 아트앤가이드가 김환기 작품 '산월'의 지분을 판매하였다. 지난해 1월 말에는 프로라타아트가 조지 콘도의 작품 'The Antipodal Explorer' 지분을 판매하는 것으로 미술품 분할소유 서비스를 시작했다.

앤디 워홀 작품의 주인이 될 수 있다니, 비록 미미한 지분일지라도 내가 작품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거대한 감동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유명 미술품의 지분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하물며 땅 한 조각을 여러 명이 사도 우리 민법은 제262조부터 제278조까지 공유관계가 어떻게 정의되고, 공유지분의 처분과 공유물의 사용수익 등의 법률관계에 관하여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수천억원이 넘는 작품 위에 자리하는 권리자들의 이해관계는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이론적으로는 민법 제268조에 따라 미술품을 공유물로 보고 각 분할소유권에 대해서 반환을 청구하고 지분 간 매매도 가능하다. 지분 간 매매는 분할소유권의 매매 합의 및 보관 계약과 그에 따른 등록미술품에 대한 반환청구권의 합의를 모두 포함하는 법적 효력을 내포하여 거래의 안정성이 보장된다.

하지만 최근에 뱅크시 작품의 지분을 구매하려고 했던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미술품 지분 보유의 법적 권리관계보다도 내가 향후 지분을 사고 파는 게 자유로운지, 이 작품이 진짜인지, 이 어려운 플랫폼을 믿어도 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로 다가왔다.

국내외 미술품 공동소유 플랫폼 및 운영사들은 나와 비슷한 구매자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개별 소유권의 안정적인 거래를 통한 유동성 확보, 작품의 진위 확인 등을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블록체인은 정보의 위‧변조 방지를 위해 암호화 방식을 이용한 정보기록 기술이다. 블록체인이라는 말에서 그 원리를 생각해보자면, 일정 시간마다 새로운 거래내역을 담은 신규 블록(block, 컴퓨터 파일과 유사)이 형성되어 기존 블록에 계속 연결(chain)되는 데이터 구조를 블록체인이라고 명명한다.

블록은 거래기록의 위‧변조 방지와 관련해 보안성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정 시점의 거래기록은 일정한 방식(hash, 연산값)으로 기록확정되고 우연적 요소를 기록확정 요건의 하나로 함으로써 해커들이 정보 조작에 성공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지연시키게 되어 아무리 많은 지분소유자가 존재하더라도 그들 간의 거래내역이 위변조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구매한 작품의 소유권을 블록체인에 기록하고 매 거래를 기록하거나 애초에 작품의 지분에 대한 증빙을 토큰과 같은 암호자산으로 표시하게 되면 아무리 많은 지분소유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분의 매매, 이전 등의 모든 사항이 투명하게 기록되어 미술품 공동소유 플랫폼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또한 작품의 진위 판단 및 감정을 위해서도 블록체인 기술이 활용된다.

이미 크리스티 경매회사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프로비넌스(작품 설명과 시장거래 관련 이력)를 기록하고 영구적으로 보증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각 블록에 작품의 판매기록, 소유자의 목록을 기록하여 복제품이 의심될 때 소유권을 추적하여 진위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기존 미술시장의 불투명한 거래 구조와 진입하기 어려운 가격장벽을 해소하기 위한 미술품 분할소유의 발상은 기발하다.

하지만 여전히 기계와 기술로 온전히 대체할 수 없는 미술품 감정과, 플랫폼에서 거래되는 작품이 고가의 유명한 작가에만 집중되지 않는 다양성을 확보하는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 현재까지 블록체인 기술로 확보된 거래의 투명성에 더해 판매 작품의 다양성까지 확보된다면 미술시장의 문턱은 낮아지고 특정 집단의 공간으로 인식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자신이 투자한 작품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현소진 한국은행 변호사 ltn@lawtv.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