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예술창작자의 인격권 침해... 재산상 손해보다 정신적 손해가 더 커"

[법률방송뉴스] 국회 전시회에서 ‘더러운 잠’이라는 제목의 박근혜 전 대통령 누드 풍자화를 훼손한 해군 예비역 제독들이 작가에게 그림값에 더해 위자료까지 물어줘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앵커 브리핑’입니다.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가 1863년에 그린 '올랭피아'입니다.

몸을 파는 여인 올랭피아를 통해 당대 프랑스 파리 상류층의 위선과 가면 속 얼굴을 벗은 몸으로 정면으로 쏘아보고 있는 ‘풍자화의 원조’ 같은 그림입니다.

이 올랭피아를 패러디해 이구영 화가는 ‘더러운 잠’이라는 제목의 박근혜 당시 대통령 누드 풍자화를 그렸습니다.

그림은 최순실 국정농단, 세월호 7시간, 사드 배치 논란, ‘선글라스의 박정희’로 상징되는 음습한 공작정치, 권력의 충견들 등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총체적 풍자로 채워졌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이런 취지에도 불구하고 2017년 1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시국 비판 풍자 전시회에 해당 그림이 전시됐을 때 여성단체에선 “여성의 몸을 대상화, 관음화했다. 풍자가 아닌 여성 혐오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등 큰 논란이 됐었던 그림입니다.

급기야 2017년 1월 24일 예비역 제독 심모(66)씨와 목모(61)씨가 전시장에 들어가 ‘더러운 잠’ 그림을 벽에서 떼어낸 후 바닥에 내동댕이친 뒤 액자 틀을 부수고 그림을 구기는 등 훼손했습니다.

이에 그림을 그린 이구영씨는 그림값 400만원과 그림 훼손에 따른 정신적 충격에 대한 위자로 1천만원 등 모두 1천400만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1심은 그림값 400만원을 물어주라고 판결했지만 “화가 이씨에게 정신적 손해가 발생했다고는 인정할 수 없다”며 위자료 청구는 기각했습니다.

2심(서울남부지법 민사항소2부 송영환 부장판사)은 오늘(15일) 정신적 피해를 인정해 위자료 500만원을 더해 총 9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먼저 “피고들의 행위는 예술작품이 표상하고 있는 예술창작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공개적으로 작품을 훼손했기 때문에 심한 모욕과 경멸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이에 “그림값만으로 정신적 손해가 회복된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고 오히려 재산상 손해보다 정신적 손해가 더 크다”며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로 500만원을 인정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파리 살롱 출품 당시 그 풍자성과 불편함으로 즉각 평단을 포함한 파리 상류층의 엄청난 혹평과 비난을 받으며 혐오의 대상이 됐습니다.

‘나는 고발한다’를 쓴 당대의 지식인 에밀 졸라 정도만 “지금 다른 화가들은 ‘비너스의 거짓’만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마네는 스스로 물었다. 왜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왜 진실을 얘기하지 않는지”라고 당대의 위선과 거짓에 일침을 가하며 마네를 옹호했습니다.

세월호 7시간과 최순실 국정농단. ‘왜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왜 진실을 얘기하지 않는지’.

150년도 더 전의 에밀 졸라의 일침과 ‘더러운 잠’ 그림 속의 주인공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어의 몸이 돼 구치소에 있는 현실이 겹쳐지면서 씁쓸하고 착잡한 마음이 듭니다.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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