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핵심기술 명목, 정보공개 여지 원천 차단... 오로지 삼성 이익 차원 악법"

[법률방송뉴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반일 감정이 들끓던 지난해 8월, 국회의원 206명의 찬성으로 반대는 단 1명도 없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이 있습니다.

바로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인데요. 다음달이면 이제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 시행일인 2월 21일에 맞춰 시민단체들이 산업기술보호법에 독소조항이 숨어있다며 해당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고 합니다.

산업기술을 보호하자는 취지의 법안에 시민단체들이 왜 이렇게 반발하며 헌법소원까지 내겠다는 걸까요. 신새아 기자가 전말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논란이 되는 법안은 산업기술보호법 제9조의2와 14조8입니다.

제9조의2는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및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은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를 공개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14조8 '산업기술의 유출 및 침해행위 금지 조항'은 적법한 경로로 취득한 정보라도 산업기술정보를 제공받은 목적 외의 다른 용도로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모두 지난해 8월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신설된 조항으로 다음달 21일 시행됩니다.

산업기술보호법 관련 조항들은 모두 산업기술 보호를 빙자한 사실상의 ‘삼성 보호법’이라는 것이 삼성 반도체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들의 주장입니다.

사건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숨진 지난 2007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삼성 반도체 피해자들 모임인 ‘반올림’은 황유미씨 사망 이후 삼성을 상대로 이런저런 소송을 내며 삼성과 맞서 싸워왔습니다.

그런 소송 가운데엔 삼성 반도체 공장의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나 ‘작업환경 보고서’를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청구 소송도 있습니다.

삼성 반도체 공장 관련 보고서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내린 '전부 비공개' 결정에 불복해 낸 소송들입니다.

삼성 측도 재판에서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공개하면 안 된다는 취지로 주장했고, 1심 법원은 삼성 주장을 받아들여 사실상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항소심에선 판단이 달라졌습니다.

서울고법과 대전고법은 지난 2017년 10월과 2018년 2월 '근로자 이름을 빼고 전부 공개하라'는 등 사실상 원고 승소로 판결했습니다.

“보고서들 내용 대부분이 영업비밀이라고 할 만한 생산기술 정보와는 무관하다. 설령 일부 그러한 정보가 있다 하더라도 노동자와 지역주민의 생명·건강에 관한 정보로서 공개될 필요가 매우 크다”는 것이 항소심 재판부 판단입니다.

삼성의 패소 항소심 판결이 나오고 노동부가 작업환경 보고서를 공개하기로 결정하자, 엉뚱하게 법원이 아닌 산업자원부와 국회에서 묘한 움직임이 감지됩니다.

2018년 3월 삼성은 산자부에 ‘작업환경 보고서’에 대해 ‘국가핵심기술 여부를 판정해 달라’는 신청을 하고, 산자부는 같은 해 4월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된다고 판정합니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자유한국당에서 반올림 등 시민단체들이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하는 산업기술보호법 제9조의2 조항을 신설하는 개정안을 제출합니다.

결과적으로 해당 조항이 담긴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삼성 반도체 관련 보고서를 공개할 수 있는 여지가 법적으로 아예 차단이 된 겁니다.

[이상수 활동가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아하, 이건 정말... 그동안 사실 반올림이 삼성과의 알권리 싸움에서 굉장히 어쨌건 저희가 노력해오면서 아주 더디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진전돼 왔었는데 이걸 완전히 한 방에 다시 무로 돌리는 이런 법안이어서 너무 사실 허탈했고...”

그리고 2018년 7월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산자부의 ‘국가핵심기술 판정’을 사유로 노동부의 ‘작업환경 보고서 공개' 결정을 취소했고, 반올림은 다시 해당 취소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지난한 법정 싸움에 들어갔습니다.

국가핵심기술 판정에서 작업환경 보고서 공개 취소 결정,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 통과까지 정부와 국회가 삼성과 이른바 짜고 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냐는 것이 반올림의 주장입니다.

이 과정에 이런 내용을 모르고 일본 경제보복과 반일 감정 분위기에 휩쓸려 눈 뜨고 당한 국회의원들도 많다고, 나아가 그런 분위기와 타이밍을 이용한 거라고 반올림은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상수 활동가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그 과정에 이제 사실 반올림과 협조해서 함께 목소리를 내주셨던 분들도 많은데 특히 국회의원들도 많으신데, 이 분들도 이 내용을 거의 모르고 이제 통과되는 과정도 좀 많이 허탈했고요...”

국가핵심기술 유출 금지와 함께 '적법하게 취득한 정보라도 산업기술정보를 제공받은 목적 외의 다른 용도로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를 금지'한 조항도 독소조항으로 꼽힙니다.

내부 근로자들이 작업 수행 중 위험성을 알게 돼도 외부에 알릴 수 없어 내부고발 여지를 원천 차단하고, 시민단체 등의 문제제기도 일단 다 산업안전보호법 위반으로 몰릴 소지가 다분한 악법 조항이라는 주장입니다.

[이상수 활동가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뭐 산재를 목적으로 취득한 정보를 봤더니 ‘작업장이 위험해서 밖에다가 알리겠다’ 이러면 이것도 처벌할 수 있고 그러니 사실이 산업기술보호법은 오로지 기업의 이익이라는 차원에서, 그것도 되게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수준의, 전 세계적으로도 좀 사례를 찾기 힘든 수준의 법이...”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시민단체들은 법 시행일인 다음달 21일에 맞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계획입니다.

‘국가핵심기술’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이의 지정이 너무 자의적이어서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명백하게 반한다는 겁니다.

[임자운 변호사 / 법률사무소 지담]

“법률 내용상으로도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라고 되어있기 때문에 관련성 판단의 범위가 되게 추상적인 거죠. 기준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소관 부처나 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사업장의 일방적인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질 위험이 너무 크다. 그래서...”

조항의 모호함에 더해 정보공개법 취지와 충돌하며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등 위헌 소지가 명백하다는 지적입니다.

[박경신 교수 / 고려대 로스쿨]

“가장 큰 문제는 헌법적 권리인 알권리의 보호 범위를 행정기관의 장이 자의적으로 정할 수 있게 만든 점에 있다고 봅니다. 이미 ‘영업비밀법’이 있거든요. 영업비밀보호법이 있고 그래서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것만 보호하면 됩니다. 청구하는 사람이 ‘이게 경제적 가치가 없다라는 걸 입증하면 그러면 공개하겠다’ 이런 식으로 했기 때문에 국민의 알권리 이것을 너무 제약하는...”

반올림과 시민단체는 해당 조항에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한편 국회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법률안 취지에 맞게 다시 개정하든지 삭제할 것도 아울러 요구했습니다.

이런 배경과 경과, 시민단체들이 제기하는 염려되는 부작용을 국회가 알게 되면 어떤 반응과 대응을 할지 주목됩니다. 

법률방송 신새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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