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도수 건국대 교수·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
황도수 건국대 교수·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

21대 총선이 100일 남았다. 다가오는 4월 15일이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이제 정당과 국회의원들은 표를 달라고 주권자 국민들을 쫓아다닐 것이다. 드디어 국민들이 ‘갑’이 되는 사년장(四年場) 짧은 선거시장이 다시 열린다.

과거 총선에서 국민들은 정당을 기준으로 투표했었다. 총선 결과는 항상 절묘했다. 대통령을 새로 뽑은 뒤 총선에서는 여당을 적극적으로 밀어줘서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지했다. 군사정권, 부패정권, 독재정권, 무능정권을 견제해야 할 때에는, 반대 야당을 밀어줘서 여소야대를 만들었다.

국민들이 정당을 중심으로 투표한 이유는 분명했다. 정당이 대안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국민을 위해서 정치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먹고살게는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치권력자들은 국민들이 정당 중심으로 투표하는 것을 악용하고 오용했다. 정치권력자들은 국민이 주권자라는 헌법 제1조를 무시했다. ‘국민은 어쩔 수 없이 정당을 골라서 찍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을 모르는 존재’라면서, 국민을 무시했다.

그들은 정당을 자기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당실세의 입맛대로 정당을 갈아치우기 일쑤였다. 10년 된 정당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은 5년 된 정당이고, 자유한국당은 2년 된 정당이다. ‘비례한국당’, ‘비례민주당’ 등 꼼수정당을 만들겠다는 말도 뻔뻔스럽게 서슴지 않는다. 국민의 뜻을 모으고, 국민의 뜻을 실현해야 하는 정당의 본질은 국민을 현혹할 때나 쓰는 말이 되었다.

정당 국회의원들로 가득찬 국회가 그동안 한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주권자 국민이 법률을 직접 만드는 직접민주제에 대하여, 국회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반대했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대통령이 제안한 헌법개정안에서도 직접민주제는 허울뿐이었다. 국회의원 선거의 비례대표제를 구상할 때, 비례대표의 순번을 국민들이 정하는 제도(가변명부식 비례대표제)가 가능한데도, 국회는 정당실세가 순번을 결정하도록 하는 고정명부식 비례대표제를 고수했다.

이런 정치구도 속에서 정치세력가들은 인재를 찾아나서기보다는 정치지망생들을 줄 세웠고, 정치나방들은 정치세력가에게 줄을 서서 출세를 도모하였다. 정치나방들은 정당실세들로부터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이 된 뒤, 그들을 뒤따라서 정당실세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공천만 받으면, 국민이 표를 찍어줄 것이니, 국민을 존중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공천권을 쥐고 있는 정당실세를 따라다니는 것이 그들의 정답이었다.

20대 국회의 성적표에 국민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민생을 위한 법률 개정은 미뤘다. 국민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하여 무능하거나 무관심했다. 부동산 가격은 연일 올랐다. 서민들을 위한다는 말은 풍성하나, 실제로 나아진 것은 없다. 여당과 야당이 서로를 비난하면서 책임을 회피할 뿐이었다.

국회의원의 권한을 늘리거나, 자신들의 세비를 늘리는 법률안에 대해서는 여야 의원이 일치하여 찬성표를 던졌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을 논의할 때에는, 국민의 뜻보다는 각 정당의 의석 수만을 계산하고 있었다. 심지어 다선 의원들은 정치세습을 시도하고 있다. 자칫 이번 총선을 그르치면,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에서와 같은 귀족정치가 전개될 수도 있다.

이번 총선의 상황은 아주 특별하다. 이런 정당과 국회의원의 본성을 국민들이 돌아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마땅히 선택할 정당이 없어서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조국(曺國)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들은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탄핵된 대통령을 지지하는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 과정을 통해서 의석 수 늘리기에만 급급했던 정의당도 믿을 수 없고, 그밖에 마땅히 지지할 정당이 눈에 띄는 것도 아니다.

국민은 정당 그 자체를 의심하고 있다. 정당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정당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정당 지지자로서의 ‘나’가 아니라, 주권자로서의 ‘나’를 깨닫는 상황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황에 당황하고 있는 정체성 위기의 순간이다.

하지만 위기는 늘 기회이다. 변화의 시간이다. 정당과 국회의원들을 국민 앞에 무릎 꿇리는, 탈바꿈하는 기회이다. 국민은 국회의원이 4년 동안 한 행동을 알고 있다. 지금까지 참아왔던 국회적폐를 청산할 기회이다.

이번 선거를 탄핵투표의 촛불을 드는 시간으로 만들자. 무능하고, 빈둥대고, 으스대던 정치실세들을, 줄대기로 공천받은 정치인을 투표로 탄핵할 기회로 삼자. 지금까지 참아왔던 국회적폐를 청산할 기회이다.

이번에 정당을 청산하는 데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다. 기존 정당에 대한 환상, 미련, 고정관념 깨기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지금까지의 정당은 소신이 같은 정치인들이 모여서 만든 이념정당이 아니었다. 정치실세에게 줄서서 만든 이합집산의 모임이었다. 정당의 수명이 10년을 넘지 못하는 현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탄핵투표를 하면 된다.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국회의원들이 쌓여서 그들이 이념정당을 제대로 만들어낼 때까지 국회의원을 갈아치우면 된다. 그것이 세대교체이고, 판갈이다.

원래 국민이 주권자이고 주인이다. 국민이 ‘갑’이다. 국민이 갑이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리 국민은 특별한 주권 감각을 갖고 있다. 현직 대통령을 촛불로 탄핵시킨 국민이다. 결정적인 시점마다 스스로 주권자임을 선언해 왔던 국민이다.

이제는 국회의원 탄핵투표이다. 이번 총선은 우리 국민에게 위기이자,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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