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블랙리스트 폭로... 법원 나와 공익변호사로 변신
"법원·검찰 불신 최고조, 사법개혁 핵심은 투명성 확보"

[법률방송뉴스] 2019년 기해년 마지막 날입니다. 한 해를 마감하며 올 한해 법조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 누가 있을까 고민하다 '이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2년 전 '판사 블랙리스트'를 알리면서 사법농단의 실체를 드러내며 사법개혁 불길의 단초를 제공한 이탄희 전 판사입니다.

현재는 공익변호사와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탄희 변호사를 만나 사는 얘기들을 들어봤습니다. 법률방송 송년 인터뷰, 장한지 기자가 이탄희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리포트]

"사법개혁 목소리를 내야 할지, 공익인권 목소리를 내야 할지 고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난 9월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 세계변호사대회(IBA)에서 만난 이탄희 변호사가 법률방송 취재진에 털어놓은 일종의 진로고민이라면 진로고민입니다.

다음날 이 변호사의 제2기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 합류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3개월여 만에 다시 법률방송 취재진을 만난 이탄희 변호사는 당시 발언을 쑥스러워하면서도 "고민을 끝냈다"기보다는 "고민을 멈췄다"는 알 듯 모를 듯한 화두를 던졌습니다.

[이탄희 변호사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오지랖 넓게 별말을 다 했네요. 고민을 끝냈다기보다는 고민을 멈췄어요. 그리고 그냥 상황이 요구하는 대로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자, 그런 마음이에요. 그게 어떻게 보면 약간 판사 물이 덜 빠져서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게 고민을 해서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에 따라서 행동하고..."

"판사 물이 덜 빠졌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판사를 하며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이탄희 변호사는 애초 판사를 천직으로 생각했던 '천생 판사'였습니다.

하지만 엘리트 판사 코스로 가는 법원행정처 부임 뒤 맞닥뜨린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 업무'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고 '판사'라는 긍지와 사명에 되돌릴 수 없는 금을 냈습니다.

[이탄희 변호사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그때 당시에 했던 생각은 저는 원래는 판사로 정년을 쭉 가는 게 제 목표였거든요. 워낙 판사직을 좋아했고. 그런데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고 결국 나오게 됐는데, 나오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제 인생이 백지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탄희 변호사는 결국 지난 2월 11년간 몸담았던 법원에 사표를 내고 나왔고, 지난 5월부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 합류해 공익변호사 길을 걷고 있습니다.

돈 안 되는 일을 선택한 건 역설적으로 돈을 받고 법률 지식을 팔 수는 없다는 일종의 자존심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탄희 변호사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판사를 10년 넘게 했는데 '공적인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몸에 뱄던 거예요. (수임료 받고 변호하는) 그런 일 하기는 우울하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그러면 20대 때 정말 젊었을 때 제가 하고 싶었던 일, 그게 사실은 공익 변호사였거든요."

엘리트 판사였지만 변호사로는 몇 개월밖에 안 되는 새내기 이탄희 변호사는 판사와 변호사의 차이를 이렇게 말합니다.

[이탄희 변호사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판사는 내려다보잖아요. 위에서 사람을 내려다본다는 게 일단 기본적으로는 거리를 두고 보는 것이거든요. 같은 입장이라는 느낌이 없어요, 사실은. 이해해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어디까지나 앉아있는 위치가 다르다는 것인데 변호사를 하면 눈 맞춤이라고 하는 게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 판사들이 다 변호사를 오래 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법원 바깥으로 나오고 나니 비로소 안에 있을 때는 안 보이던 법원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이탄희 변호사.

법원은 지금 '사법 불신'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 이 변호사의 진단입니다.

[이탄희 변호사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법원에 대한 불신이 굉장히 최고조에 올라가 있는 것 같아요. 2년마다 한 번씩 OECD 회원국 전체 국민들을 대상으로 해서 사법기관에 대한 신뢰도 조사를 하거든요. 가장 최근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꼴찌를 했다'고 하는 자료를 제가 본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통해서 드러나는 국민들의 마음이라는 게 법원과 검찰 참 더 이상 믿기가 어렵다, 이런 마음인 것 같아서 안타깝죠."

사법농단에 연관된 법관들 대부분이 별다른 징계 없이 아직 법원에 그대로 남아있는 실태를 지적하는 대목에선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이탄희 변호사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많이 주고 비판을 받으면서도 계속해서 법관직을 유지한다는 것을 보면 그만큼 법원은 여전히 철옹성인 거 아니냐, 그리고 저 사람들은 직무라고 하는 것을 공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본인의 사적인 소유물처럼 생각하는 거 아니냐, 자기들이 공부 잘했고 사법시험 붙어서 판사가 됐으니 이거 내놓지 않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냐, 이런 느낌을 주기 때문에..."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합류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과 판사로서 지낸 경험이 사법개혁 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이탄희 변호사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사법개혁이라고 하는 게 법원에 있는 판사들을 위한 개혁이나 아니면 젊은 검사들을 위한 개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법기관의 권력 행사의 대상이 되는 국민들을 위한 사법개혁이 돼야 하거든요. 그래서 국민들의 관점에서 이익이 되는 또는 조금 더 신뢰할 수 있는 그런 제도개혁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은데..."

공익 변호사로서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본 검찰은 개별 사건에 대해 판사로 본 검찰과는 또 달랐습니다.

[이탄희 변호사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법원보다 검찰이 조금 더 심한 부분은 그 '일사불란함'이 훨씬 더 심한 것 같아요. 제가 느끼기에는 약간 전시동원체제다, 이런 느낌도 받았어요. 지휘부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이 있으면 거기에 인력을 집중해서 동원해서 투여하고 그게 지휘부가 인사권이나 배당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수뇌부에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검찰과 법원 모두 이탄희 변호사가 보는 개혁의 요체는 첫째, 둘째, 셋째도 '투명성' 확보입니다.

그래야 예측이 가능하고 과정이 공정하고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고 이탄희 변호사는 강조합니다.

[이탄희 변호사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법원개혁의 핵심, 검찰개혁의 핵심도 다 마찬가지인데 첫째도 투명성, 둘째도 투명성, 셋째도 투명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재판이나 사법행정 이런 것들 굉장히 불투명한 편인데 그것을 투명하게 만들어서 국민들이 최소한 왜 저런 결과가 나왔는지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는 그런 제도가 돼야 할 것 같아요."

판사로서 양심과 자긍을 팔지 못했던 것도, 돈 안 되는 공익 변호사 길을 선택한 것도, 사법개혁이라는 험한 길에 동참한 것도.

이탄희 변호사를 움직이게 한 그 근원과 원동력으로 이 변호사 본인은 '책임감'과 '소명 의식'을 꼽았습니다.

[이탄희 변호사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사법농단 촉발 이후) 저는 책임을 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서 '판사를 포기하더라도 끝까지 가겠다' 이런 마음으로 법원에서 활동을 했던 것이고 이 일이 내 개인의 일이 아니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중요한 일이고 그렇다고 하면 이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이 되도록 내가 내 책임을 피하면 안 된다는 책임감이 되게 컸던 것 같고 어찌 보면 그 책임감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공익 변호사로서,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묻자 "눈이 되게 높다"는 생뚱맞은 답변이 돌아옵니다.

[이탄희 변호사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제가 되게 눈이 높아요. 그래서 제가 보람을 느끼려고 하면 뭔가 크게 제도가 하나 바뀌어서 단지 하나둘 사건이 아니라 큰 제도가 바뀌어서 아주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 그런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그런 것까지는 못 찾은 거 같아요. 조금 더 노력하겠습니다."

이를 위한 그의 바람과 목표는 2020년 새해엔 '판사 물'을 조금 더 많이, 가능하면 완전히 빼는 것.

그래서 주변에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탄희 변호사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판사로서의 명예는 이제 그냥 내려놓고 싶어요.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내 앞에 펼쳐지는 상황, 거기에 충실하게 활동하는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판사 물이 조금 더 많이 빠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조금 같은 하나의 세상에 일부로서 다른 사람들과 연결돼 있다는 그런 느낌 속에서 어울려지는 삶, 그런 느낌으로 살고 싶어요."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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