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파기환송심 "관련 서적들은 양질의 저서... 불온서적 지정은 표현의 자유 등 침해"

[법률방송뉴스]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8년 국방부로부터 ‘불온서적’이라는 낙인이 찍힌 책을 출판한 출판사와 저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1년 만에 국가 배상 판결을 받았습니다. ‘앵커 브리핑’입니다.

허영철의 '역사는 한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보리), 한홍구의 '대한민국사'(한겨레출판사), 김진숙의 '소금꽃나무'(후마니타스).

지난 2008년 국방부가 영내 반입 금지와 제거를 지시한 23권의 ‘불온서적’ 명단에 포함된 책 제목들입니다.

불온서적 명단엔 신자유주의 비판 명저로 전 세계 20여개 나라에서 출판된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안인들’ 같은 책들도 포함됐습니다.  

국방부는 당시 "불온서적 무단 반입시 장병의 정신전력에 저해요소가 될 수 있어 수거를 지시하니 적극 시행하라"는 지시를 일선 부대에 하달했습니다.

이에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씨나 ‘여성 최초의 용접공’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민주노총 지도위원 출신 김진숙씨 등 저자와 후마니타스, 보리 등 출판사가 국가를 상대로 표현의 자유 침해와 명예 훼손 등을 사유로 손해배상소송 냈습니다.

1·2심은 하지만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불온서적 지정이 원고들의 언론·출판의 자유 등을 과도하게 제한했다거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고, 명예훼손 또는 모욕적 표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1·2심 재판부 판단입니다.

대법원은 하지만 국방부 손을 들어준 원심 판결을 깨고 재판을 다시 하라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 책들은 국가 존립 안전과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해치는 책으로 볼 수 없고, 오히려 사회 일반에서 양질의 교양 도서로 받아들여지는 책들이 포함돼 있다"는 게 대법원 지적입니다.

대법원은 이에 "국방부 장관이 불온 도서에 해당하지 않은 서적들까지 일괄해 '불온도서'로 지정한 조치는 위법한 국가 작용이다. 이 서적 중 불온서적에 해당하지 않는 서적이 있는지, 국가 배상 책임이 성립하는지 가려보라"며 사건을 파기환송했습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민사8부(설범식 이재욱 김길량 부장판사)는 오늘 “출판사와 저자 일부에게 각 200만∼5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습니다.

"관련 서적들은 양질의 교양·학술 도서로 평가받는다. 충분한 심사를 거치지 않은 채 불온서적으로 지정해 군대 내 반입을 금지한 부분은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 것이다"는 게 재판부 판시입니다.

재판부는 또 "불온서적 지정은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만한 내용이므로, 저자 내지 출판업자들의 명예를 침해한 위법 행위다"고 판시했습니다.

재판부는 다만 “'핵과 한반도' 등 3권에 대해서는 북한 체제를 옹호하고 북한 주장에 동조하며 이를 선동하는 내용을 담았다"며 불온서적 지정이 위법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불온, 사전적으론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음‘ 정도의 뜻입니다.

불온서적 지정 헌법소원이나 헌법소원을 냈다가 강제전역을 당한 군법무관의 복직 소송 등 관련 소식을 전해드리며 몇 차례 언급했는데 ‘불온’(不穩)이라는 단어는 일제 때 일제 말을 듣지 않는 조선인들, 예를 들면 독립운동가 등을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지칭한데서 온 말입니다.

이제는 ’불온‘이라는 단어 자체를 관에 넣어 땅속에 묻고 과거의 유물로 돌려보내야 할 때가 한참 전에 지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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