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사건 '성인지 감수성' 등 한국사회를 바꾼 대법원·헌법재판소 판결

[법률방송뉴스] 해마다 이맘때면 늘 하는 말이긴 하지만 이른바 조국 사태와 검찰개혁 패스트트랙 법안 갈등 등 2019년 기해년 법조계는 정말 말 그대로 다사다난한 한 해였습니다.

그런 중에도 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선 세상을 변화시키거나 어느 한쪽으로 급속한 쏠림에 제동을 거는 의미 있는 판결들이 이어졌습니다.

법률방송 선정 ‘2019년 7대 판결’을 ‘카드로 읽는 법조’ 신새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서울고법 형사3부는 올해 1월 관세법 위반 및 특가법 횡령 등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받은 A씨 등에게 무죄 또는 면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검찰의 모호한 압수수색 영장 내용을 지적하며 모호한 영장으로 광범위하게 압수해간 증거들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입니다.

해당 판결은 대법원 파기환송심 취지에 따라 내려진 판결로 앞으로 다른 하급심 법원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됩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일부러 모호하게 영장을 쓰고 제멋대로 압수수색을 해온 수사기관의 잘못된 관행에 제동을 건 의미 있는 판결입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월 손해배상액 산정의 기준이 되는 육체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정년을 기존 60세에서 65세로 상향 조종한 판결을 냈습니다.

지난 1989년 육체노동자 가동연한을 55세에서 60세로 5년 올린 뒤 꼭 30년 만에 다시 5년 더 상향된 겁니다.

대법원 이번 판결로 보험과 연금제도 운용 및 퇴직금이나 손해배상액 산정 등 산업계와 노동계 전반에 큰 변화와 파장이 일 것으로 보입니다.

“낙태죄 처벌 형법 조항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해 위헌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낙태죄 처벌 형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에 따라 1953년 형법 조항에 삽입된 낙태죄 처벌 조항은 66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헌재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국회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임신 몇 개월 이하 낙태를 어떤 경우에 허용할 것인지 등 후속 입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66년 만에 폐지된 낙태죄, 헌재의 손을 떠난 낙태죄는 이제 국회의 시간이 됐습니다.

지난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무정자증 남성이 결혼 생활 중 자신의 부인이 낳은 아들의 친자관계를 끊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혼인 기간 중 남편의 동의를 얻어 다른 사람의 정자로 인공 수정해 태어난 자녀는 추후 아버지가 친생 관계를 부인해도 친자식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대법관 다수의견입니다.

민유숙 대법관은 다만 “외관상 명백한 다른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친자관계를 끊어줘야 한다”는 별개 의견을 냈습니다.

그럼에도 대법관 다수 의견은 “자녀의 법적 지위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쉽게 파탄 낼 수 있도록 하면 안 된다”는 취지로 가족관계에 대한 신뢰 보호 필요성을 강조한 판결입니다.

낳은 정과 기른 정 모두 다 소중하다는 ‘가족’의 의미를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판결 아닌가 합니다.

연초부터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미투’ 사건 관련 대법원이 ‘비서 성폭행’ 혐의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해 징역 3년 6개월을 확정했습니다.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로 엇갈렸는데 핵심 쟁점은 통상 성폭행 피해자가 보이는 행동과 다른 행동을 보인 김지은씨의 성폭행 피해 진술을 신뢰할 수 있느냐 였습니다.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입니다.

충남지사에 유력한 대권 주자라는 안희정 전 지사의 지위만으로도 김지은씨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수 있고, 명시적 반항이 없었어도 성폭행이 인정된다는 취지의 판결입니다.

성범죄 유무죄 판단에 있어서 피해자의 시선으로,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한 판결로 성범죄에 대해 법원이 한층 엄격한 잣대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판결입니다.

지난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마약 혐의로 기소된 48살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습니다.

재판에선 A씨로부터 필로폰을 건네받은 혐의를 받는 B씨가 법정 증언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B씨의 검찰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느냐가 쟁점이 됐습니다.

대법원은 B씨의 증언 거부가 정당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검찰 진술조서만으로 유죄의 증거를 삼을 수는 없다며 무죄로 판결했습니다.

자백 위주의 검찰 수사관행에 제동을 걸고 공판중심주의와 피고인의 방어권을 두텁게 보장한 판결이라는 평가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하루 전 23일, 대법원에선 ‘유니온 숍’의 효력을 제한한 첫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기존 노조와 회사가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경우 해고할 수 있도록 단체협약을 맺었더라도, 기존 노조가 아닌 별도의 소수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의 해고는 부당해고라는 판결입니다.

‘유니언 숍’이라는 이름으로 일부 기득권 노조나 사측 어용노조의 방패막이로 이용된 측면이 있는 유니언 숍 제도의 효력 범위를 제한해 근로자의 고용과 노조 선택의 자유, 소누 노조의 단결권을 보장한 전향적인 판결입니다.

2019년 기해년은 저물고, 2020년 경자년의 새해가 밝아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소수자, 약자를 위한 법원의 전향적 판결이 많이 나와 세상이 좀 더 따뜻해졌으면,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이 되길 바라봅니다. ‘법률방송 카드로 읽는 법조‘ 신새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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