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法과 세상] 양선응 변호사(법률사무소 인선)가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이슈를 책을 통해 통찰하고, 그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봅니다. 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양 변호사는 "글을 통해 법의 대중화, 법의 상식화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편집자 주

 

양선응 법률사무소 인선 변호사
양선응 법률사무소 인선 변호사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지음, 김명철 옮김

출판인 44명을 대상으로 '2010년대의 책 베스트 10'을 묻는 한 일간지 설문조사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200만부가 넘는 이례적인 판매고를 올렸으니 가장 주목할 만한 책으로 꼽히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2010년대의 핵심 키워드로는 '정의', '공정', '평등'이 두 번째로 많이 꼽혔다고 한다. 이 책의 판매고와 2010년대의 키워드는 우리사회가 정의를 진지하고 강렬하게 희구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촛불 민심으로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고, 당시 우리는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믿음은 원래 배신당하게 마련이라고는 하지만, 2019년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이른바 '조국 사태'는 이런 믿음을 너무도 처참히 짓밟았다.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진보 대 보수의 대립으로, 이념의 문제로, 진영의 논리로 오도되면서 이 사태의 본질이 흐릿해졌지만, '조국 사태'의 본질은 한 마디로 우리사회에서 정교하게 작동하고 있는 '합법적 불공정'의 문제다.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태의 원인 제공자라 할 문재인 대통령은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짚었다. "불법적인 반칙이나 특권뿐 아니라 합법적인 제도 속에 내재한 불공정까지 모두 다 해소해 달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였다."

이 언명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 합법적인 제도의 틀 내에서 이루어지는 합법적인 행위라고 하더라도 불공정할 수 있다. 둘째, 제도를 만드는 자들이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서 결과적으로 불공정을 낳는 제도를 교묘하게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샌델은 정의 이론의 고전인 존 롤스의 '정의론'에 기대서 인간이 특정한 사회적 위치를 갖고 태어나는 것 자체는 부당하지 않으나 정의냐 부정의냐는 사회적 제도가 그러한 사실들을 다루는 방식으로부터 생겨난다고 말한다.

가족의 지원과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사회적 경쟁에서 확실히 유리할 수밖에 없으므로, 형식적인 제도적 기회균등의 보장만으로는 불공정을 막을 수 없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계층이나 가정환경에 관계없이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만 실질적으로 공정한 능력주의 사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조국 사태 이후 우리는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의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합법적 불공정을 넘어서서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옳은 일이 무엇인지를 물을 필요가 있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의미 있는 지침서가 될 만하다.

2020년대에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자취를 감추기를 바라며, 2010년대의 끝자락에서 이 책을 다시 펼쳐 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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