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노동자 안전 관련 법규정 자체가 없어... 새로운 장비 사용도 못해"

[법률방송뉴스] 법률방송에서는 고공 외벽 작업 노동자들의 보기만 해도 아찔할 정도로 위험한 작업 실태와 이에 대한 개선책을 모색해보는 기획보도를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 실효적인 안전대책 마련이나 실행이 안 되고 있는 걸까요. 안 하는 걸까요, 못하는 걸까요.

그 단초와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현장 고공 외벽 작업 노동자들의 생생한 발언을 전해드립니다.

법률방송 현장기획 '아찔한 고공 노동자' 장한지 기자가 고공 외벽 작업자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올해 43살의 한상필씨.

한씨는 현장에선 '로프를 탄다'고 표현하는 고층빌딩이나 아파트 청소·도색 작업 등을 수행하는 고공 외벽 노동자입니다.

올해로 로프를 탄 지 6년째, 한씨의 작업은 언제나 작업줄과 구명줄, 두 줄의 '생명줄'을 단단히 묶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한상필 / 경력 6년차 고공 외벽 작업자]
"내가 이것을 걸어줌으로써 작업자가 만약에 보통 달비계를 탈 때 사고가 많은 것 중 하나가 앉을 때 사고가 많이 나는 편인데 처음에 타기 전에 이것만 걸어주고 타더라도 내가 미끄러졌을 때 몸을 잡아줄 수가 있어요. 바로 추락사고로 이어지진 않는데..."

하지만 알면서도 현장에선 구명줄이나 다른 추가 안전 장비를 하지 않고 작업줄 하나만 매고 작업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안전과 작업 속도가 정확히 반비례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상필 / 경력 6년차 고공 외벽 작업자]
"보조바 같은 경우에도 흔히 일반적으로 사용을 안 하는 이유가 가격이 보통 저렴하게 저단가에 수주가 되다 보니까 저단가에서 우리가 이윤을 남기려면 그만큼 하루에 많은 양을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고 그 작업량을 맞추기 위해서 조금 더 빠른 시간 안에 조금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그렇게 해도 최저가 입찰은 기본, 하도급에 재하도급을 거치며 이른바 '가격 후려치기'가 워낙 심해 막상 실제 작업자들이 손에 쥐는 일당은 '쥐꼬리'라는 게 한씨의 설명입니다.

[한상필 / 경력 6년차 고공 외벽 작업자]
"로프를 타면 돈을 많이 번다더라, 이야기를 그렇게 들었다 보니까 시작을 했어요. 그래서 일단 배웠는데 실질적으로 제가 일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생각보다 많이 벌지를 못하는구나.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차라리 인력사무실을 나가고 말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비용이 적은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한 푼이라도 더 돈을 많이 벌려다 보면 이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안전 확보부터 포기하게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한상필 / 경력 6년차 고공 외벽 작업자]
"그렇게 됐을 경우에는 내가 조금 더 쉬지 않고 조금 더 많은 양을 해야지 그날 가져가는 금액이 많다 보니까 그럴 때는 더 안전을 멀리하게 되고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내가 조금 더 많이 일을 해야지, 이렇게 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고공 외벽 작업자들의 추락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배경이자 이유입니다.

[한상필 / 경력 6년차 고공 외벽 작업자]
"저희가 주변에서 가까운 분도 돌아가신 분도 계시고 주변에서 계속 돌아가신 분들 많이 소식이 들어오는데 그런 부분이..."

하지만 사람이 떨어져죽는 추락사가 발생해도 그때만 잠깐 반짝, 법·제도적으로 달라지거나 개선되는 건 없습니다.

올해 하반기에도 아파트 외벽 도색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수십 미터 지상으로 추락해 숨지는 참변을 당했습니다.

옥상에 안전관리자를 배치해야 하는 2인 1조 작업원칙은 지켜지지 않았고 작업 시간에 쫓겨 구명줄도 보조 안전 로프도 없이 작업줄 한 줄에만 의지해 작업을 하다 일어난 참극이었습니다.

[한상필 / 경력 6년차 고공 외벽 작업자]
"우리가 비용적인 부분도 있지만, 안전과 관련해 사업주 입장에서도 '나는 안전에 대해서 책임을 안 져도 돼'라는 생각을 많이들 하시는 것 같아요. '너희들 와서 비용은 이것 받고, 안전도 다 챙겨. 사고 나면 너희들 탓이야' 이런 식으로 업주분들께서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재발방지책 등 후속 대책을 마련한 게 있냐"는 법률방송의 질의에 해당 도장업체 측은 '산재처리 해줬으면 다 된 거 아니냐'는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옵니다.

[A 도장업체 관계자]
"산재처리 다 했는데, 유가족 합의금 주고 이런 거밖에 없어요. (그 이후에 미비점이 조금 더 강화되거나 교육이 강화되거나 이런 게 있나요 혹시?) 그런 것 딱히 모르겠는데..."

업체도 정부도 국회도 우리 사회가 고공 노동자들의 안전이나 생명에 언제 큰 관심이 있었냐는 게 고공 외벽 노동자 협회 관계자의 자조 섞인 한탄입니다.

[이동화 한국산업로프협회 교육팀장]
"가장 힘든 점은 안전이 제대로 챙겨지지 않는다는 부분이 가장 안타깝고 저희가 외벽 작업자라고 하면 TV나 이런 매체에서 나오는 사람들로만 알고 있는데 그런 분들이 다 저희의 이웃이고 가족이고 친구입니다. 한손으로는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장비를 이렇게 쓰면서 일을 하십니다. 되게 불안하게..."

없는 사람, 투명인간 취급하지 말아 달라는 하소연인데, 제대로 된 안전지침이나 규정이 언제 만들어질지, 만들어지기는 할지 기약은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죽지 않고 작업하게 해달라는 게 무엇이 그렇게 복잡한 일인지, 이 팀장의 말에선 안타까움과 속상함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이동화 한국산업로프협회 교육팀장]
"처음에 저희들도 안전 가이드 지침 좀 만들어 달라, 저희가 찾아가서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고용부는 조금 어렵다고 해서 저희가 민원도 넣어보고 이렇게 했는데 그게 쉽게 바뀌지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정확히 저희들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구명줄 같은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 문제를 노동자 개인이나 회사의 선택이나 의지가 아닌 제도적이고 구조적으로 강제해 달라는 것이 고공 외벽 작업자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입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안전지침을 개선하고 안전 규정 실행 여부를 단속하고 강제해 작업 현장에서 실제로 안전이 확보될 수 있게 해달라는 어떻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요청입니다.

[이동화 한국산업로프협회 교육팀장]
"일단 장비 부분에서 고용노동부에서 달비계 안전지침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지침 이외의 것들은 현장에서 쓸 수가 없어요. 새로운 장비나 좋은 장비가 있어도. 왜냐하면 안전관리자들이 자기들이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 자기들이 정해진 장비만 사용하려고..."

[한상필 / 경력 6년차 고공 외벽 작업자]
"인사사고가 발생하면 '우리에게도 엄청 큰 불이익이 닥치는구나' 그러면 (업체에서도) '내가 어쨌든 사람들이 작업자가 안전을 고려해서 작업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비용 산출을 해서 작업이 진행돼야 되는구나'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 부분이 다른 것보다도 법적으로 강화가 돼야지 그게 가능하지 않을까..."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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