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의 하도급화 "100만원짜리 공사 44만원에 하는데, 안전이고 뭐고..."

[법률방송뉴스] 법률방송에서는 고층빌딩 외벽 청소나 고층아파트 도색 작업 등 고공 작업 노동자들의 아찔한 작업 실태와 대안을 모색해보는 기획 보도를 해드리고 있는데요.

보도가 나가고 그런 질문들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니 왜 노동자 스스로 구명줄을 안 하고 작업줄만 매고 위험하게 작업을 하냐. 결국 위험을 자초하는 거 아니냐" 하는 지적입니다.

일견 맞는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질문을 거꾸로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고공 노동자들이 왜 스스로의 목숨까지 위험에 처하게 하면서 구명줄을 매지 않고 작업을 하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그 기저엔 역시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가 있었습니다. 

법률방송 현장기획 '아찔한 고공 노동자', 오늘(12일)은 최저가 입찰과 '하도급의 그늘'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장한지 기자입니다.

[리포트]

구명줄도 매지 않고 안전모도 쓰지 않고 작업줄 하나에 의지에 고층 빌딩 외벽을 타는 사람들.

고공 외벽 노동자라고 불리는 특수 건설노동자들입니다.

산업안전보건규칙엔 구명줄을 매고 작업을 하라고 돼있지만 현장에선 안 지켜지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단속이나 벌금보다 더 무서운 게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비용과 수지타산, 돈 문제입니다.

구명줄을 매고 작업을 하면 일단 좌우 작업 반경이 3분의 1로 줄고 작업 속도가 훨씬 늦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작업줄이나 구명줄이 고공 외벽 노동자들에겐 말 그대로 생명줄입니다.

"스스로 원해서 생명줄을 매지 않고 작업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는 것이 고공 외벽 작업자들의 반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면엔 최저가 입찰과 하도급이라는 한국사회 건설노동 현장의 고질적인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A 도장업체 관계자]
"견적을 발주처에서도 산출을 해요. 공사를 할 때 어느 정도 비용이 들겠다는 것을 미리 사전에 다른 데이터들을 뽑아서 그 금액에 맞게끔 최저가 입찰을 붙이는 건데..."

법률방송 취재 결과, 2014년에서 2017년까지 4년간 건설공사 입찰가 대비 최종 확정 낙찰가격은 87% 정도였습니다.

즉 100만원에 공사를 하겠다고 입찰가를 적어내면 87만원 정도에서 최종 공사가격이 정해진다는 얘기입니다.

입찰을 받기 위해 가능한 적은 금액을 써냈을 것임을 감안하면 말 그대로 마른 수건을 한 번 더 쥐어짜는 셈입니다.

[아파트 관리업체 관계자]
"입주민 입장에서는 그것이 맞는 것은 맞죠. 적은 비용으로 해야 하는 것은 맞는데 회사 입장에서는 고품질의 결과를 내려고 하면 적당한 가격을 받으면서 하는 것은 맞는데 그게 안 되니까 최저입찰제로..."

거기다 애초 계약 내용엔 없는 이런저런 추가작업을 요구하는 것도 현장에선 다반사입니다.

부당해도 '을' 입장에선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A 도장업체 관계자]
"사실은 사업자 측에서 그 비용이 부당하다 싶으면 안 하면 되는데 무엇이 문제가 되냐 하면 기존에 '시방서'대로만 공사를 하면 문제가 안 되는데, 공사를 하고 나서 새로 추가되는 부분들이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이죠. 현장에서 보다 보면 페인트 작업만 하는 게 아니라 '페인트 작업 외에도 이 부분 추가해서 해줄 수 없냐' 이런 여러가지 요구하는 것들이 있어요 또..."

최저 입찰 '가격 후려치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공사 발주를 받은 원청이 하청에 하도급을 넘기는 과정에 후려친 가격 또 후려치기, 깎은 가격 다시 깎기가 대놓고 벌어집니다.

고공 외벽 작업 하도급 업체 등으로 구성된 대한전문건설협회가 지난해 내놓은 전문건설시장 경쟁실태 보고서입니다.

보고서엔 원도급 공사금액 대비 하도급 공사금액 수준과 관련한 자료가 있습니다.

2017년 기준 민간공사의 경우 원도급 업체가 받기로 한 공사금액 100%를 기준으로 하도급 업체가 90% 이상을 받는 경우는 13.5%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하도급 업체 32.9%는 50% 이하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도급 업체 3분의 1은 원도급 업체가 받기로 한 공사금액의 절반 이하를 받고 공사를 해준다는 얘기입니다.

쉽게 예를 들면 원도급 업체가 고심 끝에 100만원에 공사를 하겠다고 입찰가를 적어내면 최종 공사가격은 평균 87만원에 결정됩니다.

이 금액을 가지고 하도급을 주면 하도급 업체 3분의 1은 44만원도 안 되는 돈을 받고 공사를 한다는 계산입니다.

넉넉하다 할 수 없는 100만원짜리 공사가 그나마 하도급업체로 가면서 44만원에 진행되는 겁니다.

[최금섭 /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울산지부 노동안전국장]
"공사 제대로 하려고 하면 10억이 들어요. 10억이 드는데 어쨌든 덤핑과 출혈경쟁을 하니까 이것을 8억에 낙찰을 받아요. 수주를 받아요. 그러면 8억 받고 하면 손해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낙찰받은 업체는 자기들이 공사를 안 해요. 지들은 1억 남기고 재하도급을 줘버려요. 그럼 7억이 되어 버리는 거예요. 근데 7억에 하도급받은 업체도 일부는 자기가 하면서 또 말 그대로 또 불법 재하도급을 줘버리는 것이죠. 그러면 맨 밑에서 실제로 공사하는 사람이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는 뻔하잖아요. 안전이고 뭐고..."

공공공사도 민간공사에 비해 더하면 덜했지 결코 덜하지 않습니다.

원도급 업체 수주 공사금액의 90% 이상을 받는 업체는 단 5%에 불과하고 하도급 업체 35.6%는 원도급 업체 공사금액의 절반 이하만 받고 공사를 하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이른바 '위험의 하도급화' 구조입니다.

[정욱철 / A 시공사 과장]
"결국에는 하도급은 30만원에 공사를 하는 것이지, 80만원짜리 공사를. 왜냐하면 중간에 수주자가 있고 하도의 하도가 있잖아. 그 사람들도 마진을 봐야 하잖아. 실질적으로 공사하는 사람들은 인건비가 줄어들고 그렇다 보니까 공사하는 게 너무 힘든 것이지. 열흘 할 거 5일에 끝내야 하고 그래야지만 돈이 되니까..."

이런 부담과 압박은 고스란히 현장 고공 외벽 노동자에게 전가됩니다.

[A 고층건물 외벽 도색 노동자]
"솔직히 힘든 거 많죠. 금액이 다 틀립니다. 받는 금액에 비해 적어요."

[B 고층건물 외벽 도색 노동자]
"돈은 많이 못 법니다. 요즘도 많이 힘들지 일은. 전부 열심히 안 하면 퇴출, 퇴출. 그래서 열심히 해야 해요. 누가 해라 마라 눈치 볼 것 없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야 이런 작업이라도 일거리가 있지..."

이 때문에 고공 외벽 노동자들이 한 푼이라도 더 벌고 받기 위해 구명줄을 안 매고 작업하는 악순환이 끊어지지 못하고 있고, 고공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사망 추락사고도 끊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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