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에 가담한 공범이지만 그렇기에 내부고발자 될 수 있어"
"비리 전모 드러내... 내부고발자 보호해야 사회 더 깨끗해져"

[법률방송뉴스] 수백억원대 대법원 전자법정 입찰 비리에 가담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내부고발자로 돌아선 장비공급업체 직원을 항소심 법원이 선고유예로 선처하며 풀어줬습니다. ‘앵커 브리핑’입니다.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에서 전산주사보로 일했던 남모(47)씨는 지난 2007년 부인 명의로 전산기기 납품 관련 회사를 차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법원에서 실물화상기 도입 등 무려 총 400억원대의 사업을 따냈습니다. 

물론 뒷배가 있었습니다. 

대법원 전자법정 구축사업 실무를 맡았던 강모(53) 전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 과장 등 법원 공무원들이었습니다.

강 과장과 손모 전 법원행정처 사이버안전과장, 유모 행정관 등은 남씨 업체에 수백억원대의 계약을 몰아주고 유흥주점 접대 등 향응을 포함해 수억원의 뇌물을 받아 챙겼습니다.

강 과장 등은 남씨가 말한 사양에 맞춰 법원 전산화사업 입찰 제안을 하는 등의 짬짜미를 통해 지난 2011년부터 무려 7년간이나 남씨와 관련된 업체에 계약을 몰아줬습니다.

국민 세금으로 진행된 법원 전자법정 사업이 특정 업체와 깨끗하지 못한 법원 공무원들의 배를 불리는 데 악용된 겁니다. 

법적으로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공여와 수수 등 혐의입니다. 

이 과정에 가담했던 장비공급업체 직원 이모씨는 이후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이같은 내용을 언론에 제보하고 국회의원실에도 알렸습니다.   

1심은 하지만 이씨에 대해서도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습니다.

하지만 항소심(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김세종 송영승 부장판사)은 이씨에 대해 징역1년의 선고를 유예하는 최대한의 선처를 베풀었습니다.

선고유예는 비교적 경미한 범죄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형의 선고는 하지 않고 2년이 지나면 선고를 면제해 처벌을 없던 것으로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선고를 유예하며 재판부는 먼저 이 사건에 대해 “내부고발자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고 운을 뗐습니다.

"이씨가 범죄행위를 언론에 제보하고 의원실과 소통하면서 공론화에 노력한 결과 이 사건의 전모가 세상에 드러났다”는 것이 재판부의 평가입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씨가 비록 범행에 가담한 공범이긴 하지만 그렇기에 내부고발자가 될 수 있었다“고 내부고발의 역설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공익제보자라고 표현되는 내부고발자는 언제가 깨끗하고 착한 사람만은 아니다. 가담했기에 범행사실도 알고 제보할 수 있다“고 재판부는 말했습니다.

재판부는 이어 “이런 내부고발자를 사회가 보호해야 하고 형사재판에서도 그 취지를 충분히 참작해야 사회가 더 깨끗해진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씨의 언론 제보가 없었다면 범죄 행각은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내부고발 덕분에 전산 관련 사법행정이 향후 투명하게 이뤄질 수 있는 계기가 된 점을 참작했다”는 것이 재판부가 밝힌 선고유예 양형 사유입니다.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구치소에 수감됐던 이씨는 오늘 선고유예로 풀려났습니다.

특가법상 뇌물수수와 입찰방해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던 강 과장과 손 과장은 각각 징역 8년으로, 유 행정관은 징역 6년에서 1년 감형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뇌물을 공여한 남모씨도 1심 징역 6년에서 4년으로 감형됐습니다.

일부 입찰방해죄를 무죄로 판단했고, 이들의 범죄가 재판과는 관련이 없어 양형기준상 일반직 공무원에 적용하는 형량을 고려했다는 것이 재판부 설명입니다.       

비리에 가담해야 비리를 알 수 있는 내부고발의 역설. 과와 공이 함께 있지만 재판부 말처럼 우리 사회가 좀 더 깨끗해지려면 내부고발자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전향적인 판결들이 더 많이 나오길 바라보겠습니다.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