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납 2위 전두환 전 대통령서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으로 교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사망해 세월호 추징보전금 한푼도 안 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2005년 6월 14일 출국 5년8개월 만에 베트남 하노이에서 인천공항으로 귀국하면서 검찰 관계자들에 의해 연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2005년 6월 14일 출국 5년8개월 만에 베트남 하노이에서 인천공항으로 귀국하면서 검찰 관계자들에 의해 연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법률방송뉴스] 지난 9일 83세를 일기로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한국 고도성장기의 영욕을 함께한 거인에 대한 추모 움직임 한편으로, 고인의 17조원이 넘는 추징금 환수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추징금은 범죄자 개인에 부과되는 것으로 당사자가 사망하면 소멸되지만, 김 전 회장의 경우 공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직 대우그룹 임원들에게 연대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전 회장은 41조원대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 9조9천800억원대 사기대출과 외환 불법반출 혐의 등으로 지난 2006년 11월 항소심에서 징역 8년6개월과 벌금 1천만원, 추징금 17조9천253억9천862만원을 선고받았다. 추징금은 한국은행과 재경부에 신고하지 않고 해외로 송금한 돈과 해외로 도피시킨 재산에 해당하는 금액을 추징 당한 것이다.

김 전 회장의 상고 포기로 판결이 확정된 이후 현재까지 14년째 김 전 회장은 추징금 미납 순위 1위를 지켜왔다. 김 전 회장은 2008년 특별사면을 받았지만 추징금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추징금 미납 2위는 2,205억을 선고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으나 지난 2013년 1,672억원을 자진납부하면서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에 2위 자리를 내줬다. 최 회장의 추징금은 1,962억원이다.  

추징금은 범죄행위에 관련된 물건을 몰수할 수 없을 경우 범죄인이 불법하게 소유하는 물건을 돈으로 되받아내는 것이다. 범죄에 대한 형벌이 아니기 때문에 추징금을 내지 않는다고 강제노역을 시킬 수는 없다. 집행시효도 3년에 불과해 범죄자들이 돈을 내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난 2015년 기준 국내 추징금 미제율은 99.72%에 이른다. 유병언 일가에 내려진 추징보전금액은 1천157억원에 이르렀지만 유병언 전 세모그룹회장이 사망 하면서 실제로 추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은 사면 이후에도 베트남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추징금을 납부하지는 않았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의 은닉 재산을 일부 찾아 추징하면서 3년마다 시효를 연장해왔지만 집행 실적은 미비했다. 지금까지 검찰이 김 전 회장 측으로부터 추징한 금액은 892억원. 전체 추징금 대비 집행률은 0.498%에 불과하다. 그나마 집행 초기에 비하면 '좋은 성적'이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검찰이 김 천 회장의 은닉 재산을 찾아내 추징한 금액은 3억2천만원에 불과했다.

김 전 회장이 별세하면서 그에게 직접 추징금을 거둬들일 방법은 사라졌다. 추징금은 일신전속적 성격을 띠고 있어 상속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의 17조원 미납 추징금이 소멸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 추징금은 분식회계 사건 당시 공범으로 유죄 판결이 확정된 전직 대우그룹 임원들이 연대해 내도록 돼 있어 그들에게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김 전 회장이 해외도피 중이던 지난 2005년 5월 강병호 전 대우 사장 등 임원 7명에게 추징금 23조358억원을 선고했다. 김 전 회장은 이들과 공범으로 묶여있어 추징금을 연대 부담하게 돼있다. 각자 범죄 혐의와 환율 등 차이로 선고된 금액은 다르지만 사실상 같은 추징금을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전직 대우 임원들을 상대로도 얼마나 더 추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 전 회장은 지방세 35억1천만원, 양도소득세 등 국세 368억7천300만원도 체납했다. 자신의 차명주식 공매대금을 세금 납부에 먼저 써야 한다며 한국자산관리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다. 추징금과 달리 세금에는 연체료가 붙는다는 이유였다. 대법원은 2017년 캠코 손을 들어줬다.

만 30세이던 1967년 대우실업을 창업한 이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1999년 그룹 해체 직전까지 자산규모 국내 2위의 대기업으로 키워내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추앙받았지만, 외환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를 부도내면서 추락하는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던 김 전 회장.

김 전 회장은 그룹 해체 후 과거 자신이 시장을 개척했던 베트남에서 머물며 동남아 인재양성 사업인 '글로벌 청년 사업가' 프로그램에 주력했다. 지난해 8월말 하노이 교육현장을 방문하고 귀국한 이후 건강이 안 좋아져 통원 치료를 하는 등 대외활동을 자제했지만 증세가 악화, 사재를 털어 설립한 아주대병원에서 장기 치료를 받고 있었다.

지난 9일 밤 11시50분 숙환으로 세상을 떠난 그의 마지막 유언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그의 뜻에 따라 부인과 자녀, 손주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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