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분분해... "양형 힌트" 의혹부터 "기업경영에 판사 월권" 비판도
"이 부회장의 뇌물죄 시인 여부, 피고인으로서의 태도 판단 위한 것"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3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3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률방송뉴스] 지난 6일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3차 공판에서 정준영 부장판사가 이 부회장 측에 "정치권력의 뇌물 요구 차단에 대한 삼성그룹 차원의 해결책을 제시해 달라"고 주문한 것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재판장이 양형에 대한 힌트를 준 것 아니냐는 의혹부터, 최고경영자가 판단해야 할 기업경영 사안에 대한 판사의 월권이라는 비판까지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형벌보다는 재발 방지를 중시하는 정 부장판사의 '회복적 사법'에 대한 소신에서 비롯된 단순한 훈시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만은 힘들다는 반론도 있다. 정 부장판사의 주문이 특검과 삼성 측이 다투고 있는 사건의 핵심, 즉 국정농단 사건 ‘뇌물의 성격’에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8월 이 부회장이 최순실에게 제공한 36억원짜리 말 등은 뇌물이 아니라고 본 항소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파기환송심 양형 다툼이 시작된 이날 3차 공판에서 이 부회장 측은 뇌물 공여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제공한 수동적 행위였다”며 “청탁한 사실이 없고 특혜 지원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이에 대해 “이 부회장은 회사의 이익도 아닌 기업승계라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박 전 대통령 측에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했다”며 “심지어 7조원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회사 돈을 횡령해 개인의 이익을 꾀했다”고 팽팽하게 맞섰다. 

정 부장판사는 재판 말미에 “또다른 정치권력에 의해 향후 똑같은 뇌물 요구를 받더라도 기업이 응하지 않을 수 있는 삼성그룹 차원의 답을 다음번 기일 전까지 재판부에 제시해 달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 측과 특검이 뇌물 제공의 성격에 대해 정치권의 압박에 의한 수동적 행위였는지, 개인의 이익을 위한 적극적인 제공이었는지를 놓고 형량과 직결되는 문제인 죄질을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데, 재판부가 이 부회장 측에 향후 유사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과제’를 낸 것이다.

이 부회장 측이 이에 따를 의무는 없지만 사실상 양형 판단권을 쥐고 있는 판사의 요구를 거절하기는 힘든 입장이다. 다음 기일까지 어떤 형태의 답변이든 제출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 부장판사가 이런 과제를 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부장검사 출신으로 건국대 로스쿨 형사법 교수를 지낸 김영철(사법 연수원 7기) 법무법인 대종 대표변호사는 “일단 (정 부장판사의 )월권 행위는 아닌 것 같다”며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에서 나온 정 부장판사의 발언은 삼성그룹 경영에 관련된 사안으로 재판과 관련없는 돌출발언으로 볼 소지도 있지만, 이번 발언은 양형 판단을 위해 질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부장판사는 앞서 지난 10월 25일 열린 첫 공판기일에서 이재용 회장의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삼성 신경영 선언'을 거론하며 삼성 측에 준법감시제도를 주문하고 "이제는 이건희 회장이 삼성 신경영 선언을 했을 때의 나이와 같은 51세가 된" 이재용 부회장에게 삼성의 새 비전 제시를 요구했다.

김영철 변호사는 정 부장판사의 이번 주문에 대해서는 “이 부회장이 자백하고 뉘우치는지 아닌지를 에둘러 물어본 것 같다”고 해석했다. 김 변호사는 “뇌물 사건은 기업 경영에서 미묘하고 민감한 부분이다. 삼성은 모든 정권이 지원을 바란다, 그런 대기업 총수로서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기 힘들 것"이라며 "그러나 재판장으로서는 양형을 판단하려면 피고가 죄를 시인하고 ‘후회한다, 다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겠다’며 뉘우치는지, 아니면 죄를 부인하는지 먼저 가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권력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소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했다'는 주장은 사실상 무죄 취지의 주장이라는 것이고, 재판부로서는 거기 대한 명확한 판단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김 변호사는 “이 부회장 측은 뇌물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면 양형에서 정상참작을 받지 못하게 될 우려가 있고, 그렇다고 인정하자니 앞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위험이 있어 모호한 태도로 일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판사로서는 ‘자백 여부’ 및 ‘피고인의 태도’를 판가름할 명확한 판단 밑자료가 필요하지 않았겠나”라고 덧붙였다.

정 부장판사의 이 부회장에 대한 잇단 이례적 '주문'을 양형 힌트라고 보는 것은 "다소 과도한 시각"이라고 말한 김 변호사는 "삼성 측도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입장이 정리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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