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사각지대에 놓인 목숨... 고공작업 안전의자 '달비계' 관련 법규조차 없어"

[법률방송뉴스] 혹시 '달비계'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고층 건물에서 작업을 할 때 작업자들이 이동할 수 있도록 매단, 일종의 작업용 임시 통로나 계단 또는 발판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언뜻 생각해도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층 아파트나 빌딩 외벽 청소나 도색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걸터앉는 작업용 의자도 현장에선 '달비계'라고 한다고 합니다.

언뜻 이해가 잘 안 가는데 법률방송 현장기획 '아찔한 고공 노동자', 오늘(9일)은 그 3번째로 고공 외벽 노동자들의 안전과 관련한 법·제도 문제를 짚어봤습니다. 장한지 기자입니다.

[리포트]

외벽 도색 노동자가 작업줄 한 줄에 의지해 안전모도 없이 간이의자 같은 것에 걸터앉아 아파트 외벽 도색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작업자가 앉아 있는 간이의자는 현장에서 '달비계'라고 불립니다.

[울산 B 아파트 외벽 도색 노동자]
"여기 앉아서 하는 안전대, 안전깔판..."

원래 달비계는 건축공사 현장 상부에서 매단 작업용 비계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비계는 '날 비(飛)'에 '계단 계(階)' 자를 써서 말 그대로 허공에 떠 있는 계단, 여기에 '달려있다'의 '달'이 접두사처럼 붙어 '달비계'라는 단어가 된 것입니다.

쉽게 말해 작업자들이 이동하며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철골 들보에 체인, 와이어로프 등으로 단단히 고정하고 그 위에 발판을 깔아 고정한 구조물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마치 그네를 타듯 좌우로 움직이며 작업을 하는 외벽 도색 작업자들이 앉아 있는 간이 의자, 달비계는 엄밀히 말하면 달비계의 원래 용도와 뜻과는 거리가 멉니다.

[정진우 교수 /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달비계라고 외벽 도장 작업할 때 그분들이 '그네식'으로 앉아서 하는 거 있잖아요. 그것은 달비계가 아니거든요. 달비계가 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비계라는 것은 작업 발판이에요."

구명줄과 달비계라 불리는 간이 의자는 고공 노동자에게는 생명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고공 노동자에게 로프와 간이 의자와 관련한 법은 없습니다. 말 그대로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겁니다.

일단 달비계와 관련된 조항은 산업안전보건규칙 제63조와 64조에 규정돼 있습니다.

제63조 '달비계의 구조'를 보면 '비계가 흔들리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연결하거나 고정시킬 것, 보의 접속부 및 교차부를 철선 등을 사용하여 확실하게 접속시키거나 단단하게 연결시킬 것'이라고 돼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달비계는 고정해놓고 쓴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정작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건설 현장 달비계나 아파트 도색 작업 달비계나, 달비계는 어차피 비슷한 것 아니냐"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합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
"발판이 있으면 거기에 앉아있든 서 있든 그것은 발판에서 할 수 있는 내용 아닌가요. 다만 이제 달비계에 있어서 외벽 도장이라든지 그런 부분들은 지금까지 달비계에 포함을 시켰는데..."

크레인 작업이나 고층 아파트 이삿짐 운반, 승강 설비 작업 등 위험도가 높은 고공 작업의 경우 별도의 안전 관련 조항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고층 아파트 도색이나 빌딩 청소 노동자들만 관련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최금섭 /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울산지부 노동안전국장]
"비상상황이면 이렇게 위험을 세이프 로프라든지 이런 게 제대로 묶여져 있고 문제가 없는지 작업 중에 줄이 꼬이는 게 없는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하지만 산업안전보건규칙은 고공 외벽 작업자들의 달비계 안전과 관련해 하등의 상관없는 내용들로만 채워져 있습니다.

[정진우 교수 /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고용노동부하고 안전공단에서는 이것을, 달비계에 대한 이해를 개념에서부터 이해를 잘못해서 외벽 도장 작업 하시는 분들이 앉아서 하는 발판 같은 거, 그거를 달비계로 오해를 해서 산업안전보건규칙에 나오는 달비계 규정을 거기다가 적용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다가 적용을 하면 오히려 위험을 조장합니다. 안 맞아요. 맞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위험을 조장하는 꼴이 되는 것이거든요."

산업안전보건규칙 제63조 10항은 '근로자의 추락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달비계에 안전대 및 구명줄을 설치'하라고 돼 있습니다.

그나마 외벽 작업 노동자의 달비계 안전과 관련된 사실상 유일한 조항입니다.

하지만 별도의 처벌조항이 없어 구명줄을 설치하라는 조항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현장에선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진우 교수 /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고소 로프 작업 별도 규정을 만들어야 하고, 만들어서 각종 여러가지 안전과 관련된 대책이 법령에 반영이 되어야겠죠. 사전에 특별교육을 해야 한다, 그 다음에 줄이 충분한 길이를 확보한다든지 등의 많은 안전조치들이 규정이 돼야 해요."

이런 지적에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해당 작업에 특화된 안전규칙 마련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
"최근에 고공 로프 작업에 대해서 조금 더 심도있게 세분화된 내용을 적시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내년도에 한 번 검토를 해볼 예정에 있는 것이고요."

자조적으로 "목숨 걸고 페인트칠 한다"며 간이 의자에 몸을 맡기고 수십미터 허공에서 아파트 외벽 도색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

이들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관련 법제도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